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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5.09.12 공자님의 마을- 공부
  2. 2015.09.12 공자님의 사당- 공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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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묘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공자님의 후손들이 모여 살던 집성촌인 "공부(孔府)" 가 있다.

 

역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선정된 곳으로, "성부(聖府)" 라고도 한다.

 

공자님의 자손은 예로부터 학문으로 유명했고 황제가 인정한 어느정도 귀족적인 지위를 지녔었다.

 

송나라에는 "연성공" 이라는 직책으로 공부에서 관의 업무를 대대로 보기도 하였다.

 

현재까지도 152채의 건물에 480개의 방이 있는 대단한 규모로서, 다 돌아보려면 시간이 많이 걸리니 대충 중요한 곳만 보는 것이 좋다.

 

 

2000년의 역사를 가진 곳 답게 그간 수많은 나라의 흥망성쇠를 같이 했고, 수많은 전란을 거쳐야 했다.

 

그때 피해서 숨었다는 피난탑이다.

 

 

공자님때 부터 사용했다는 우물.

 

 

시간 없는 사람은 "공부" 에 가서 이것만 보고 오자!!!

 

사실 별로 보잘것 없는 벽일 뿐이지만, "노벽(魯壁)" 역사적 가치는 천금을 주고도 구할 수 없을 것이다.

 

B.C213년 천하를 통일한 진시왕은 실용학문을 제외한 모든 유학을 제거하고자 했는데, 세상의 책들을 모두 불태우고 유학자들을 산채로 땅에 묻었다는 "분서갱유(焚書坑儒)" 가 바로 그것이다.

 

유학의 대가였던 공자님의 학문과 집안 모두 겁화를 피할수가 없었는데, 차후에 B.C154년 한무제때 건물들을 재건하는 공사중에 허물어진 벽에서 <논어(論語)>, <춘추(春秋)>, <예기(禮記)> 등 10여개의 고문서가 발견된다.

 

이것은 공자님의 9대손인 "공부"가 분서갱유 당시에 몰래 숨겨 놓았던 것이라고 한다.

 

당시 세상에는 한나라 이후의 문자로 된 책들밖에 없었는데, 이 책들에서 고문(古文)이 발견되어 학문적으로도 대단히 중요한 일이었다.

 

뜬금없이 등장한 "서태후" 가 하사한 글씨 족자.

 

꽤 큰 크기인데, 1000만녕이 소모된 서태후의 환갑연에서 공자의 76대손인 "공영의" 부부가 환갑연회상을 만들었다고 한다.

 

어쩄든 수많은 황제들이 방문하던 곳이라 많은 흔적들이 남아 있다.

 

 

ㅋㅋ 깃털로 만들어진 고풍스런 먼지털이개가 보여서 사진을 찍어 보았다.

 

 

공자님은 어떤 사람이었나...

 

 

공자님의 초상화.

 

 

공자님의 제자중에 가장 유명한 사람 한명, "자공(子貢)" 이 직접 심은 나무가 2000년의 세월을 거쳐 아직 남아있다고 한다.

 

믿을수 있을까???

 

 

마지막으로 공묘, 공부의 화장실...

 

옆사람, 앞사람과 얼굴 보고 대화도 나누고 변을 잘 보는지 까지 확인이 가능한 개방형 구조이다.

 

10년전 까지만 해도 중국 곳곳의 화장실이 대부분 저런 모습이었다.

 

베이징 올림픽을 기점으로 대대적으로 현대화 되었다고 하니까 요즘은 바뀌었기를...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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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학연수 프로그램 중에 가장 중요한 일정이 3박4일간의 산동성 여행이었다.

 

이유는 대학 전공 특성상 꼭 가서 찾아보아야만 하는 공자님의 흔적 때문이다.

 

산동성 곡부(曲阜,취푸) 는 북경에서 550Km정도 떨어져 있는 곳인데, 이곳에 공자님의 묘와 사당, 그의 일족들이 살던 "공부" 라는 마을이 남아있다.

 

너무 먼 곳이라 당일치기는 어렵고, 2002년 당시에는 고속철도가 없어서 일반기차로 하루 종일 가야 했기 때문에, 우리는 아예 밤에 출발하는 침대칸 기차를 타고 가서 다음날 도착하였다.

(기차칸 여행은 앞에 포스팅 했다)

 

가장 먼저 공자님의 사당이 있는 "공묘" 에 갔는데, 이 곡부라는 도시 자체가 1994년인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선정되어서 공자님 하나로 먹고 사는 도시가 되었다.

 

 

 

공묘 앞에서 단체사진 한장.

 

우리 한의대 사람들과 중국어과 학생들이 함께 있다.

 

 

 

사당까지 가는 길에 수많은 석문이 서 있다.

 

모두 사연이 있을텐데, 무슨 왕이 와서 지은 문...이런 식이다.

 

 

진짜 공묘의 입구인 "성시문(聖時門)" 이다.

 

 

공묘의 중심인 "대성전(大成殿)" 앞에서 다시 단체사진을 찍었다.

 

공자님 께서는 B.C551년 ~ B.C479년 까지 살았던 노나라 사람인데, 한나라부터 공자님을 기리는 제사를 지내기 시작해서 2000년 넘게 황제들이 인사를 드리던 곳이다.

 

현재 대성전은 1724년 옹정제가 재건한 건물이라고 한다.

 

 

고풍스런 건물이다.

 

 

사당 내부의 모습이다.

 

다시한번 말하지만 2002년 당시에는 핸드폰 카메라는 커녕 흑백 화면이었고, 디지털 카메라도 중국에선 볼수가 없을 정도로 대중화되지 않아서 문화재 실내에서 사진 찍는 것도 제지당하는 일이 없었다.

 

 

 

곳곳에 많은 현판이 걸려 있는데, 이것들은 공묘를 방문한 역대의 황제들이 직접 쓰거나 하사한 것들 이다.

 

 

건물 밖에 있던 비석.

 

 

 

9마리의 용이 조각된 기둥이다.

 

앞서 자금성 포스팅에서 말했지만, 중국에서 용 문양을 쓰는 것은 엄격히 금지가 되었었는데, 더군다나 9마리의 용은 황제를 상징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사용하면 대역죄에 해당한다.

 

그러나 공자님은 황제가 고개를 숙이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향후에 9룡이 허락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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