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6. 16. 1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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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 영화를 찾아보진 않지만 그래도 자주 보는 편이기는 한데, 멀티플렉스 시장이 자리잡은 한국에서는 극장에서 보기는 애초부터 글러먹은 일이라~ 주로 집에서 혼자 보는 것을 즐겼었다.
물론 인디 영화들은 제작비의 한계와 스케일의 제약 때문에 구도와 촬영, 편집 등에서 농도 짙은 집중력을 보여주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에 큰 극장 스크린의 감동 보다는 조용하고 밀폐된 공간에서 혼자 충분히 음미하는 것이 더 효율적인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홈 시어터로 보는 것도 나쁜 일은 아니다.
문제는 세계 10위권에 드는 영화 소비국이면서도 제작과 수입 측면에서 지나치게 메이져 편향적이라는 꼴사나운 모습을 하고 있는 한국의 영화 산업계 때문에 골치가 아픈데, 일전에도 아카데미 수상작들을 한국 전체에서 5개관 개봉, 혹은 개봉예정 없음...이어서 어이가 없던 적이 있었다.
(참고1: 세계 영화시장 규모 순위)
(1. 미국/ 2. 영국/ 3. 일본/ 4. 프랑스/ 5. 독일/ 6. 스페인/ 7. 이탈리아/ 8. 호주/ 9. 한국/ 10. 인도)
오늘의 영화인 "Boy A" 또한 독립영화 상영관인 광화문의 "씨네큐브"에서 단관개봉 한데다가 2차판권 또한 팔릴 리가 없으니, 한국에서 이 영화를 보고 싶은 사람은 전국 어디에서건 서울 광화문으로 올 수 밖에 없다.
이것이 세계 9위의 영화 소비력을 가진 한국의 현실이다.
어쨌든 이 영화를 보고 싶어하는 지인이 있어서 나도 광화문 씨네큐브에서 보게 되었다.
1993년에 영국에서 실제로 일어났던 10세 소년 2명의 2세 소녀 살해사건을 바탕으로 해서 완성된 동명의 소설 "BOY A"를 원작으로 하고 있다는데, 물론 읽어보진 못했지만 소설로서의 원작도 훌륭하다고 한다.
하지만 영화로 보았을 때 영화 자체로는 매우 높은 점수를 주고 싶지만, 각본에 대해서는 소재의 특수성 만큼의 점수를 주기는 힘들다.
이름을 버린 소년 "잭"이 일반인의 세상에 다가가는 모습들은 그의 직장, 일상, 친구, 애인...등 다양한 에피소드들을 통해 매끄럽게 그려지고 있다.
하지만 극의 전개상 (위기-절정-결말)이 필요하기 때문에 극단적인 무리수가 배팅된 것 같은데 그게 좀 노골적이어서 아마츄어틱한 어설픔이 조금 아쉽다는 말이다.
예를 들어 복선으로 등장하는 2가지.
1. 조용히 살아가던 "잭"이 얼떨결에 교통사고 장소에서 어린 여자아이를 구하고 영웅이 되면서 매스컴의 주목을 받음.
2. 보호관찰사인 "테리"의 백수 아들의 등장.
1번의 경우는 인지하고 긴장을 이어나갈 수 있는 브릿지 형식의 단계적 복선중에 하나라고 생각할 수 있다면, 2번째는 확실히 노골적인 배치이기 때문에 이질감이 나타나는 것이다.
먼저 "잭"이 나쁜 길로 빠지게 된 계기가 부모의 무관심에서 온 가정파괴였다고 묘사되는데, 중반부에서 "테리"와 그의 아들이 보여주는 교감과 가정의 재구성은 "잭"의 과거에 대한 비교를 하게 한다.
그러나 "테리"와 아들과의 관계는 후반부로 갈수록 변화되어 "범죄자지만 착실히 살아가는 잭"과 "평범한 성인이지만 집에서 놀고 먹고 사는 백수 아들" 사이의 대비가 심해지게 된다.
결국 "테리"는 범죄자인 "잭"을 아들이라고 부르고, 진짜 아들에게는 "잭"과 비교하여 잔소리를 하게 되는데 아들은 그에 대한 반감에 결국 일을 저지르게 된다는 스토리인데 이런 결정적인 캐릭터의 등장과 역할이 너무 작위적이랄까...극에 녹아들지 못한 듯한 느낌을 받은 것은 나 혼자인지 모르겠다.
영화에서 가장 큰 사건은 익명으로 남아있던 "소년 A"가 "잭"이라는 것이 밝혀지는 것인데, 그걸 까발리는 역할을 맡을 사람으로 과연 그가 적합한가?
그리고 한사람의 인생을 망가뜨릴 것을 뻔히 알면서 일을 저지를 정도의 이유가 되는가?
일부러 독자와 관객들에게 어이없음과 분노를 일으키게 할 목적이었다면 그 목적을 100% 달성한 것이지만, 그런 의도가 아닌 단순한 배치였다면 상당히 어설플 뿐이다.
또한 극의 전제가 되는 "살인사건"을 설명하기 위해 병렬 전개 식으로 재구성 되는 주인공 "잭" 어린시절에 대한 표현에 있어서 너무 많은 면죄부를 주는 것 또한 독자와 관객을 무시하는 행위일 수 있다.
불우한 가정환경, 학교에서의 냉대와 이지메, 불량배지만 주인공을 이해해주는 친구, 우발적인 살인...
결국 커다랗게 빵~빵~ 터트려서 던져놓은 "살인범의 과거"는 너무 많은 물타기 끝에 인상적이지 못하다.
독자, 관객의 주인공에 대한 감정 이입과 동정심을 유발하고자 하는 의도는 알겠지만,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는 사실이 무색할 정도로 비현실적인 느낌은 어쩔 수 없다.
또한 Stereo type을 보여주기 위해 등장하는 직장 동료와 여자친구도 그렇다.
영화의 주제가 "범죄자의 낙인"이고 "그것을 알게된 후의 주변인들의 변화" 를 통해 보여져야 하기 때문에 몇몇 장치들이 필요한 것이다.
1. "널 위해선 뭐든지 할 수 있어, 곤란한 일이 있으면 말만 해" 라고 말해놓고 뒤통수 치는 직장 동료이자 친구.
2. 좋아해서 먼저 대쉬해 놓고 뒤돌아서는 냉정한 여자친구.
참 낯뜨거운 장면 설정과 에피소드 전개, 그리고 대사들... ㅡ.,ㅡ
주인공에게 결정적 위기감과 배신감을 느끼게 하는 위의 2명의 캐릭터 이외에 가장 중요한 role을 맡고 있는 "테리"는 그 중요한 순간에 등장하지 않는다.
"테리"는 보호관찰사이기 때문에 이미 "잭의 과거를 알고 있다.
때문에 "위기의 확대"와 "배신과 고립감의 주동행위자"가 될 수가 없기 때문에 종반에 그 역할을 다하지 못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가 "잭"의 전화를 받지 못하고, 그의 위기를 곁에서 도와주지 못하게 되는 상황은 관객들에게는 꽤 그럴듯한 떡밥으로 작용한다.
중요한 순간에 나타나지 않고 뒤에 남은 "테리"로 인해 극의 "안타까움"이 더욱 커지게 되는 것이다.
이제 반해서 영국의 암울한 하늘과 함께 보여지는 조명과 화면은 매우 dry하게, 관조적으로 사건들을 보여주면서도 감정을 자극하여 인상 깊었다.
그리고 저예산 영화의 특징인 절제된 Sound와 의도적인 시청각적 공백의 활용은 감독의 기지와 재량으로 매우 멋지게 시간을 채우고 있으니, 책이 아닌 영화 자체로서의 가치로는 매우 훌륭하다고 할 수 있겠다.
어쨌든 세계 3대 영화제를 수상한 영화니까...^^
(아래는 이 영화의 수상내역)
2008 베를린국제영화제 스페셜 심사위원상 수상
2008 영국아카데미시상식 남우주연상, 감독상, 편집상 수상
2008 디나르영화제 각본상, 촬영상, 작품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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