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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는 만화 관련 글을 쓰지 않았는데, 근래 읽은 책 중에 간만에 소장 욕심을 불러일으키는 책이 있어서 오랜만에 글을 쓰게 되었다.

만화방에 갈 때마다 이상하게 손이 안가는 책들이 있다.

그림체, 소재, 표지...
여러가지 이유로 끌리지 않는 경우인데, 이러다가 불현듯 손에 잡고 감격하여 소장하게 되는 경우가 왕왕 있었다.

"사형수042, 레인보우 2사6방의 7인, 데드맨스 원더랜드, 범털, 뺑끼통, 평양여감방..." 죄수와 사형수를 소재로 한 많은 만화가 있었지만 현실세계에서 논란이 되는 "사형제도의 정당성과 존속문제" 류의 화두를 본격적으로 제시한 만화는 없었다.

그런 면에서 "사형수042"가 선택한 소재는 굉장히 색다르면서 의미있는 시도라고 볼 수 있겠다.

만화 속의 세계에서 사형제도가 폐지되면서 사형수들의 뇌에 칩(흥분하면 폭발하여 죽음)을 장착하여 일반 세상에 적응하도록 훈련시켜 공공노동에 노역시키고자 하는 제도가 시험적으로 행해지는데, 그 첫번째 case가 7명을 살인한 "타지마"였다.

그는 시내의 한 고등학교 소사가 되어 꽃에 물을 주고 청소를 하면서 사회 적응 훈련을 받게 되는데, 그 도중에 여러가지 에피소드를 통해 주변사람들에게 동화되고 착한 사람이 된다는 아름다운 내용이다.

하지만 이 내용이 그리 간단하지만은 않은데 이유는 아래와 같다.

1. 자연친화.

주인공은 학교에서 근무하면서 생전 처음 흙을 만져보고, 꽃이 피는 신기를 보고, 지렁이를 보고 감동한다.
물건의 소유와 행동의 자유가 제약된 그가 유일하게 소유하도록 허락되는 것도 꽃 화분 하나이다.
주변 사람들과 급격히 친해진 계기는 버려진 토끼를 주워서 키울 사람을 찾으면서 부터이다.

살인자에 사형수이지만 자연을 사랑하는 순수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 전제를 깔려는 것일까?

2. 약자계층.

주인공에게 가장 먼저 호감을 가지고 접근하여 말을 거는 사람은 학생인 "유메"인데, 그녀는 눈이 보이지 않는 맹인이다.
그리고 그런 맹인 학생을 도와주기 위해 학교에서 점자 번역 자원봉사를 하는 "아야노"는 남편과 오래 떨어져 있는 30세의 유부녀이다.

작가는 의도적으로 "선입견"이 없는 상황에서라면 살인범도 좋은 사람이고, 훌륭한 남성일 수 있다고 역설하는 장치를 마련한 것 아닌가?

3. 감시자,관리자의 동조.

"시이나"는 냉철한 심리분석가로 사형수 재활용 사업에 초기부터 관여했고, 최초의 현실 적응 케이스인 "타지마"를 시각,청각적으로 감시하는 기구의 우두머리이다.
그런 그를 비롯하여 그의 부하직원들, 그리고 국정 비서실 홍보관 or 관방장관 보좌관인 사람, 간수와 경찰들...
그런 사람들이 3년의 시간을 "타지마"와 같이 보내면서 친구가 되고, 같이 울고, 같이 웃는다.

이 제도의 목적과 의도를 가장 잘 알고 있고, 살인범에 대한 냉철한 사고가 확립되어 있던 주변인들이 하나, 둘씩 착한 살인범에 동화되어 갈등하고 친해지는 모습...


위의 3가지 장치는 속이 뻔히 보여서 유치하기까지 한 "작가의 의도적 장치"이다.

작가는 사형제도에 있어서 중립적 입장을 지키는 듯 보이지만, 실은 이미 "살인범 재활용"제도의 시행을 전제로 만화를 그리고 있다는 점에서 사형제도를 반대한다고 볼 수 있다.

살인범도 인격이 있고, 감정이 있고, 변할 수 있다는 전제가 있다는 가정하에 드라마를 그려내려 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정형성의 담보"를 위해 위의 뻔한 3가지의 장치를 통해 "살인범이지만 착하고 멋진 남자"를 만들어 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심지어는 주인공이 7명을 살인하게 된 동기와 어린시절의 과거를 특별하게 설정하여 "이러이러한 사정때문에 살인범이 된 것이지 원래 나쁜 놈은 아니에요~"라는 말을 간접적으로 하는데 이것은 약간 아마츄어같은 설정으로 비난받을 수도 있는 부분이다.

하지만 작가가 그렇게 바보도 아닌 것이, 그것들을 직접 화법으로 말하지 않고 갖가지 에피소드를 통해 설명하고 있는 데다가 "완벽한 비교대조군"을 만들어 놓았기 때문에 모든 살인범을 옹호하는 우를 범하지는 않는다.

"살인범 재활용" 제도의 시험 케이스로 지목된 두번째인 "023호"는 본능적인 쾌락살인마의 전형으로 결국 그는 본성과 충동을 억누르지 못하여 실패하고, 세번째인 "053호" 역시 무난한 사회 적응은 했지만 사회에 동화되거나 감정의 변화를 얻어내진 못한 채 죽고 만다.

결국 작가는 "살인범042호=타지마"특별한 살인범이라는 것으로 타협하여, 그 개인의 드라마를 통해 간접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바를 돌려 말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만화는 충분히 재미있고, 슬프고, 감동적이다.

작가의 유치함에 놀아난다고 해도, 소재의 특별함과 내용의 감동 때문에 가치가 있는 것이다.

어쨌든 1400권을 넘어 정채상태에 있는 나의 만화 서재에 새로이 자리잡게 된 친구이니 재미는 확실히 보증한다!!!
Posted by DreamSE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