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이후로 블로그 재정비를 하느라 영화 감상문을 업데이트 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오늘 본 영화 한편이 돌연 다시 펜을 잡게 하였다.
영화광은 아니지만 영화를 좋아해서 많은 영화를 보려고 하고, 특히 한국영화는 상업 영화던지 독립영화던지 개봉작은 대부분 챙겨보려고 하는 편이다.
최근 볼만한 영화가 없어서 뒤적거리던 중에 언젠가 담아 두었던 "무게" 라는 영화를 무심코 보게 되었다.
아...
무겁다...
인물이 무겁고, 그의 삶이 무겁고, 그의 굴레가 무겁고...
주변 사람들이 무겁고, 그들의 삶이 무겁고, 세상이 무겁다...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 순간까지 먹먹하게 화면을 바라 보다가 등장인물들의 배역을 나타내는 하얀 글자들에 주목해 보았다.
꼽추, 노파, 인질극 남자, 이발소 여주인, 미친여자, 목사내연녀, 매춘부, 중년동성애자, 마약남, 사채업자...
그리고 시체, 시체, 시체....
꼽추이면서 시체를 염하는 장의사 일을 하는 정씨(조재현)와 그를 둘러싼 인물과 환경의 모습들이 정말 무덤덤하고 무미건조하게 나열된다.
충분히 신체적 장애와 직업적 굴레로 인해 비천하고 비루한 삶을 상징하는 주인공만 해도 보기에 버거운데, 영화는 더 저열한 세상의 삶을 보여준다.
꼽추의 배다른 동생은 호모인데 성기를 수술할 돈이 없다.
시체가 된 인기여배우나, 시체를 찾아오는 숫총각 불구자 코끼리남자, 목사내연녀 등의 군상은 각자의 굴레와 더러움을 보여준다.
그리고 길가다가 만나게된 미친년은 이놈 저놈에게 강간 당하고 있다.
저 미친년은 자기가 누군지 뭐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세상 사람들은 우리를 괴물, 벌레라고 부른다.
아니, 벌레인지도 모르기도 한다.
영화는 그러한 건조한 전개 속에서 비루한 현실을 벗어나고자 하는 주인공 꼽추의 판타지를 보여준다.
꽃이 핀 들판을 자전거를 타고 달리고, 시체들과 함께 우아한 왈츠를 추고...
하지만 현실은 나락이다.
모든 비루한 삶이 맞이하는 것은 죽음이다.
그 괴리감을 표현하는 장면이 포스터의 장면이자 세번째 사진이다.
(사진상에서 꼽추는 보이지 않는 파랑새를 환상속에서 바라보고 있는데 뒤의 길가에서는 미친 소녀가 덩치남자에게 강간당하고 있다).
그리고 시체 염을 하는 장의사가 죽은 배다른 동생을 끌어안고 스스로 관에 들어가는 엔딩은 묵직한 쇠망치가 가슴을 후두려 치는 것 처럼 먹먹하다...
이 영화는 무척이나 우울하고 무겁고 메스꺼운 영화이다.
불구,피,시체,시간,강간,섹스,동성애...이런 것들이 실제 성기와 함께 화면에 날것으로 흩뿌려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슴에 뭔가가 남는다.
감독인 "전규환" 씨의 이름을 보고 문득 예전에 보았던 2009년작 "애니멀 타운" 이라는 영화를 보았음이 기억났다.
전자발찌를 찬 소아성애자와 그에게 딸을 잃은 파괴괸 가정의 가장...
여기서도 더러운 성기와 섹스가 적나라하게 보여졌었고, 무언가를 내가 느꼈다기 보다는 한국 영화에서도 이런 표현이 가능하구나...라는 놀라움으로 기억되는 장면들이었다.
다시 2012년작 "무게" 로 돌아와 보자.
일상의 나열은 "홍상수" 를 떠올리게 하고 날것의 적나라함은 "김기덕" 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다.
세상은 "전규환" 감독에게 베니스영화제 퀴어사자상, 인도 국제영화제 감독상, 고아 국제영화제 감독상, 판타스포르토 영화제 특별상, 브졸 국제아시아영화제 심사위원대상, 몬트리올 판타스틱영화제 남우주연상....등 많은 트로피를 대가로 건네 주었다.
물론 감독이 영화제를 타겟으로 영화를 만들지는 않았겠지만 외국 영화제에서 좋아할 만한 과격성, 예술성, 작품성 등이 제대로 평가 되었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작품 또한 한국에서는 CGV 압구정, 메가박스 코엑스...단 두군데 영화관에서 단관 상영밖에 못하였다.
찾아보기 힘들지만 그래도 볼만한 가치가 있는 영화라고 생각한다.
앞서 보았던 "애니멀 타운" 은 "전규환" 감독의 타운 3부작 중의 하나라고 한다.
아직 보지 못한 "모차르트 타운, 댄스 타운" 또한 보고 싶은 마음이 가득한데 찾을 수가 없다!!!
어쨌든 경고한 대로 잔인하고 선정적인 영화지만 나름 명배우이자 각종 영화제 심사위원장으로 활동한 "조재현" 씨가 혼쾌히 주연을 맡았을 정도로 작품성 또한 어느정도(보는 사람마다 감수성이 다르겠지만) 보장 되므로 한번 찾아서 보시길 추천드려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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