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나온 "공지영" 씨의 작품중에 "도가니" 가 영화화 되고 나서 너무너무 보고 싶었다.
하지만 나의 조심스러운 성격상 좋다고 맘놓고 무턱대고 달려들지는 않지...
마침 "공지영" 씨가 출연했던 "무릎팍도사" 를 시청하였기 때문에 그녀의 패미니스트적인 성향과 강박적인 자유로움에 대해서 수박 겉핥기 식으로만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녀의 초기작 부터 찾아보기로 하였고, 그래서 고른 것이 데뷔작 부터 시작해서 단편, 중편 소설들을 모아 놓은 "인간에 대한 예의" 였다.
"인간에 대한 예의" 는 총 9편의 작품이 수록되어 있는 모음집인데, 작품들이 너무나도 전형적으로 그녀의 사상을 나타내고 있어서 유기적인 어울림이 있다.
소설들의 배경은 거의 다 1990년대의 현대이고, 주인공이 꾸는 꿈이나 추억이나 회상은 모두 1980년대의 단면들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소설집의 제목인 "인간에 대한 예의" 와 몇몇 작품에서 공통으로 등장하는 여주인공인 "정화" 는 1980년대 민주화 운동을 거쳐 현대의 대규모 잡지사에 근무하는 현대 여성으로 설정되어 있는데, 역시 작가인 "공지영"의 분신이라고 볼수 있겠고, 그녀의 패배주의와 우울함이 작품 전체에 퍼져 있다.
"얍삽하게 빨리 빠져나온 인간들" 인 그녀와 대기업이나 자영업으로 돈을 벌어 잘 살고있는 사람들이 전형적인 민주투사였던 "정석" 의 소식을 매개로 과거를 회상하는 형식인데, 그 죄책감과 패배의식에 대한 자위와 억지 반전이 진부하게 서술되어 있다.
책의 내용을 그대로 인용하자면 이런 식이다.
"너는 도망친 사람이니 입을 다물라고 누군가가 말한다면 나도 입을 다물지도 모르지만,
무서워서 도망친 비겁자라고 욕한다면 진심으로 그들에게 나의 비겁함에 대해 사죄할 용의도 있지만,
그렇다고 해도 나 역시 80년대의 아들이며 딸이었다.
80년대의 아들이며 딸들은 어떤 상황이라 하더라도 옳으면 승리한다는..아아..너무도 단순했지만 너무도 굳게, 결국은 정의가 승리한다는 믿음을 먹고 자란 사람들 이었다."
하지만 곰곰히 생각해 보면 실제 80년대를 보낸 사람들에게 퍼져있던 공공의 정서를 그렸다는 점에서 분명 진부하긴 하지만 그 나름대로 내러티브는 시의적절하고 풍부하다고 할 수 있겠다.
(80년생인 내가 평가할 깜냥은 못되지만...)
그것은 80년대를 지나왔다며 잊고 자위하던 주인공이 70년대와 싸우다가 무기수로 수감되었던 "권오규" 를 만나고 그의 책(책속의 책) "인간에 대한 예의" 를 돌이키면서 상대적인 자괴감에 빠지는 순환관계로 화해를 이루려고 한다.
작가이자 화자이자 주인공은 소설 속에서 이를 "시대와 역사와 인간에 대한 예의를 지킨 사람" 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70년대 실패한 반독재 민주화 운동 때문에 감옥에서 죽고 장기수가 된 사람들...
그들을 바라보는 80년대 노동운동에서 도망친 현대인들이 느끼는 죄책감...
이정도로 책은 요약될 수 있겠다.
어쨌든 별로 유쾌하거나 재미있는 책은 아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책을 읽으면서 비슷한 본질론적 고민을 다룬 미국 락밴드인 "Killers" 의 노래 Human 이 생각났다.
(뭐, 듣는 사람에 따라서는 책이랑 노래가 별 상관이 없다고 느껴질 수도 있지만 ㅡ.,ㅡ)
능동적으로 시대와 역사와 현상에 맞서 싸우고 대응하는 존재...
그것이 바로 "인간" 이라고 말한다는 점에서 나는 소설을 읽자 마자 이 노래가 생각이 났던 것이다.
I did my best to notice
when the call came down the line
up to the platform of surrender
I was brought but I was kind
(나를 부르는 신호가 왔을 때 난 알리려고 최선을 다했지.
난 굴복의 연단 위로 올라가야 했지만 인간다움을 잃지 않았어)
and sometimes I get nervous
when I see an open door
close your eyes, clear your heart, cut the cord
(활짝 열린 문을 보면 가끔은 불안할 때도 있어.
눈을 감아, 마음을 비워, 그리고 줄을 끊어!)
Are we human or are we dancer
my sign is vital, my hands are cold
and I’m on my knees looking for the answer
are we human or are we dancer
(우리는 인간인가, 아니면 꼭두각시 인가?
내 육신은 살아있지만, 내 두손은 차가운걸
난 무릎을 꿇고 해답을 찾고 있어
우리는 인간인가, 아니면 꼭두각시 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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