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시절, 허리 위까지 내려오는 장발을 가지고 있던 나를 보고 많은 친구들이 락밴드에 들어갈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푸진 情에 끌려 풍물패에 가입했고, 막걸리를 마시며 6년의 학창시절을 보내다 보니 부쇠와 민요부장을 지내면서 추억을 쌓았다.
중요무형문화재인 "호남 좌도 필봉굿" 을 배우면서 방학때는 전주 필봉에 있는 전수관에서 전국에서 몰려온 풍물에 빠진 대학생들과 낮에는 쇠, 장구를 치고 밤에는 막걸리에 민요를 부르며 날을 보내었다.
(막상 "진주난봉가"는 경상도 민요지만^^;;)
거기서 "산도깨비, 화투가, 애수의 가을밤..."등 많은 민요를 배웠는데 그중에 술자리에서만 딱 한번 들어봤던 노래가 바로 "진주난봉가" 였다.
싸부님들도 가르쳐 주시지 않았는데, 그 슬픈 내용과 충격적 결말 때문에 전수관에서는 금지곡이라고 하였다.
그런데 졸업하고도 몇년이 흐른 어느날,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어느 분이 초대해주신 공연에 가게 되었는데 거기서 낯익은 노래를 듣게 되었다.
바로 금지곡인 "진주난봉가" 를 피아노 반주와 50명의 합창단원이 부르는 현대 뮤지컬로 만나게 된 것이다!
대한민국 예술의 중심이라는 "예술의 전당", 3000석 규모의 콘서트 홀에서 펼쳐진 공연은 아마츄어 합창 단체인 "음악이 있는 마을"에서 2007년부터 준비해서 만든 순수 창작 뮤지컬의 초연이었다.
일단 그 구슬프다는 민요 "진주난봉가"의 원곡 가사를 보자.
-울도 담도 없는 집에서 시집 삼 년만에
시어머니 하시는 말씀, 얘야 아기 며늘아가
진주 낭군 오실 터이니 진주 남강 빨래 가라
진주 남강 빨래 가니 산도 좋고 물도 좋아
우당탕탕 빨래하는데 난데없는 말굽 소리
고개 들어 그 곳 보니 하늘 같은 갓을 쓰고
구름 같은 말을 타고서 못 본 듯이 지나간다.
울도 담도 없는 집에서 시집살이 삼 년 만에
흰 빨래는 희게 빨고 검은 빨래 검게 빨아
집이라고 돌아와 보니 사랑방이 소요하다.
시어머니 하시는 말씀, 얘야 아가 며늘아가
진주 낭군 오시었으니 사랑방에 들어가라.
사랑방에 나가 보니 온갖 가지 안주에다
기생첩을 옆에 끼고서 권주가를 부르더라.
울도 담도 없는 집에서 시집살이 삼 년 만에
이것을 본 며늘아기 아랫방에 물러나와
아홉 가지 약을 먹고서 목매달아 죽었더라.
이 말 들은 진주 낭군 버선발로 뛰어나와
내 이런 줄 내 몰랐다 사랑 사랑 내 사랑아
화륫정은 삼 년이요 본댁정은 백 년인데
내 이럴 줄 내 몰랐던가 사랑 사랑 내 사랑아.
너는 죽어 꽃이 되고 나는 죽어 벌나비 되어
남녀 차별 없는 곳에서 천년 만년 살고지고.
어화둥둥 내 사랑아 어화둥둥 내 사랑아.
보면 알겠지만 착한 며느리가 한양에 공부하러 간 남편만 기다리며 모진 시집살이를 견디고 있었는데, 남편은 술집 기생년이랑 바람나서 금의환향하고 며느리는 독약을 먹고 자살한다는...
그런 충격적인 비극이 그려져 있다.
뮤지컬 에서는 짧은 민요에는 없는 다양한 내용을 추가로 삽입하였는데, 원작이 너무 슬프기 때문인지 추가 씬들은 대부분 재미있게 각색된 흥겨운 노래들 이었다.
그리고 결말 부분 또한 원래의 것과 함께 해피엔딩도 보여주어서 흥겹게 마무리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원작의 의미는 역시 원작 그대로일 때 가치가 있는 것인데...
비극이 가진 의미와 가치를 희석시킬 것이라면 그냥 밝은 내용의 흥겨운 민요를 찾아서 뮤지컬로 만들 것이지...
그렇지만 다른 뮤지컬과는 다르게 무대장치, MR 혹은 오케스트라 없이 넓은 콘서트 홀에서 50명의 합창단이 만들어 내는 화음을 배경음악으로 펼쳐지는 멋진 음악들은 그래도 높게 평가 받을만 하다.
오히려 원작 민요에 대한 정보나 애정이 없는 일반인들이 본다면 그 자체만으로도 흥겹고 재미있게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는 기회였을테니 이것도 의미는 있으니까...
어쨌든 옛날 학창시절의 추억도 생각나고, 좋은 공연을 좋은 장소에서 보게 되니 오랜만에 몸과 귀가 호강한 느낌이다.
다시한번 초청해주신 인터넷 XXX 커뮤니티의 "언젠간신부"님께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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