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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한해 100권 정도는 우습게 책을 읽는 사람이지만, 감상문을 쓰는 작품이 적은 이유는 주로 출퇴근길 전철 안에서 독서를 하는 까닭에 70% 가량이 읽기 쉽고 시간이 빨리 가는 무협, 판타지 장르의 소설이기 때문이다.

 

(전철안에서 피곤한 몸으로 움베르토 에코 나 앙드레 지드 를 읽는다면 절로 멀미가 나고 10분만에 잠이 들 것이니까 @.,@)

 

어쨌든 그렇게 읽은 무협, 판타지 소설이 매년 수십 수백권이 되지만, 그중에 이렇게 감상문을 쓰는 작품은 정말 재미있게 읽거나 감독적이었기 때문이다.

 

이번에 읽은 "표류공주" 라는 작품은 처음 제목만 보고서는 무슨 여자 공주가 주인공인 소설인 줄 알았으나 한문 표기인 "漂流空舟(홀로 떠내려가는 빈 배)" 라는 글자를 보고 나서 작품의 심오함을 예감했다.

 

이 작품에는 명문정파의 후기지수, 절대 미남과 절세 신공, 악당을 물리치는 영웅...이런 것들은 등장하지 않는다.

 

주인공 "모진위"태어날 때부터 등이 굽고 팔다리가 뒤틀린 데다가 추악한 외모를 가지고 태어나 요절할 운명을 타고났으니, 불행한 시작부터가 찝찝한 마음을 가지게 한다.

 

장애로 인해 어릴때 죽어야 할 운명의 "모진위" 는 모자란 진원지기를 이어가기 위해서 태어나자 마자 무위조식의 권법인 "용무권" 을 죽어라 익히고, 소년일 때는 굳어가는 몸을 살리기 위해 기예단(연극단)에 들어가 유연함의 무공인 "비연류" 를 익히고, 연극을 위해 "추혼십이절" 을 익혔으며, 죽지 않기 위해 살수들에게 살인기술을 배웠으며, 목숨을 빚진 댓가로 "천지신공" 을 억지로 배우게 된다.

 

결과론적으로 보면 그는 시한부인생의 불구의 추남에서 환골탈태한 절대고수가 된다.

 

하지만 이 모든 과정은 주인공 "모진위"원하거나 스스로 선택해서 배우고 익힌 것이 아니라 자신의 신체적 약점과 환경 때문에 억지로 떠받게 된 것이다.

 

 

이러한 신체적 일신상의 변화를 가지고도 "표류공주" 의 제목이 뜻한 바가 표현이 되지만, 결정적인 것은 모진위의 성장과 감정변화에 따른 주제의식의 표출이다.

 

이 소설의 플롯과 전개는 "비극의 서사" 이다.

 

그에게 삶을 연명하게 기회를 준 것은 아버지의 원수인 "하상곤" 이었다.

 

그에게 의술을 베푼 "황경", 용무권을 가르쳐준 사부 "도학정", 최고의 무공 추혼십이절을 전수한 사부 "구노인", 내공으로 새생명으로 태어나게 해준 천지신공을 전수한 사형제 "희노애락 사괴", 황궁의 절예를 사사한 "유진목"...

 

비웃음과 학대와 고난과 슬픔으로 얼룩진 "모진위" 의 인생에서 몇 안되는 호의와 사랑을 보여준 이들은 모두 죽었다.

 

그것도 직접적으로 "모진위" 를 감싸거나 돕다가 죽게 된다.

 

그에게 유일하게 인간의 감정인 "사랑" 을 느끼게 한 여인 "채경령"은 악당들의 조종으로 꼭두각시처럼 그녀의 아버지를 살해하게 됨으로써 불구대천의 원수가 되어 버렸고, 어릴적 부터 유일한 친구였던 "목선민" 은 적대세력으로 만나 생사결판을 내게 된다.

 

 

주인공의 인생이 흘러가는 것을 작가는 1인칭과 3인칭 시점을 번갈아 가면서 때로는 무미건조하게...때로는 절절한 감정을 묘사하면서 서술해 간다.

 

그것을 따라 읽다 보면 독자의 마음은 먹먹해지고 가슴은 답답해져 온다.

 

"모진위" 는 왜 살아야 하는가?

그 구차하고 구질구질하고 주변사람들을 불행하게 만드는 삶을 왜 이어가야 하는가?

 

이 물음이 궁극적으로 독자와 작가가 직접 물어보고 토론하고 싶지만 "모진위" 라는 비루한 인간의 비통한 삶을 통해 인생의 불가역성을 관조하고자 하는 것이 작가의 의도였을 것이다.

 

하지만...그냥 그렇게 서술을 따라가기에는 너무 슬프고 아프다.

 

마지막 사부이자 사형제인 "희노애락 사괴"가 각자 "기쁨, 분노, 슬픔, 즐거움" 을 재료로 "천지신공" 의 완성을 꾀하지만 결국 실패하고 불구에다가 오성도 떨어지고 내공도 없는 "모진위" 만이 천지신공을 완성하고 환골탈태를 이루게 된다.

 

그가 천지신공을 완성할수 있었던 이유를 "모진위" 자신도 모르고 사형제도, 작가도, 독자도 모른다.

 

아니, 모른척 한다.

 

4부에 해당하는 복고맹과 채가장의 싸움에서 맹목적으로 "채경령" 을 돕고자 자신의 수명을 줄어들게 하고, 목숨까지 걸면서 초인적인 힘을 발휘하는 "모진위" 의 모습에서 사람들은 "희노애락"의 4가지 성정 이외에 "사랑" 이라는 단서를 유추할 수 있다.

 

하지만 작가는 "표류공주" 라는 한 개인의 힘으로 어찌 할수 없는 흐름에 따른 인생사를 보여주고자 하는 척 하면서 너무도 잔인하게 사건에 개입하여, 결국은 최후의 주제인 "사랑"이 이루어지지 못하는 슬프고 비극적인 결말을 만들어 낸다.

 

이 재수없는 작가놈...

 

평생을 자기 뜻대로 살지 못하고, 구박받고 멸시받고 고생만 한 불쌍한 모진위를...

 

그리고 채경령을...

 

 

어쨌든 이 소설은 한국 무협계에서 흔치 않은 주제와 완성도를 가진 작품이고, 발간 10년이 넘어서도 신무협 팬들에게는 다섯 손가락 안에 꼽는 명작이니 아직 읽어보지 못한 사람은 꼭 찾아 봅시다!!!

Posted by DreamSE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