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2. 6. 23:33
336x280(권장), 300x250(권장), 250x250, 200x200 크기의 광고 코드만 넣을 수 있습니다.
(2008년 8월 19일에 작성된 글입니다).
(이 글에는 스포일러성 내용이 매우 많이 포함되어 있으니 주의하세요)
그래, 결국 보고야 말았다.
그래도 조금 영화에 관심이 있는 사람으로서, 감독의 의도와 의중을 100% 이해하고자 IMAX로 보아야만 한다는 압박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래서 서울에서 단 한곳 있는 용산CGV에 예매를 하려고 대기중 이었는데 3일 전이나 되어서야 예매가 풀렸다.
게다가 티켓링크,맥스무비등의 예매 사이트에선 좌석 선택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꼭 CGV 홈페이지에서 예매를 해야만 했다.
하지만 전국에 나같은 사람이 오죽 많겠는가...
17일 일요일 영화를 보려고 목요일부터 대기하다가...환자가 밀려서 어느덧 오후가 되어서야 컴터에 앉아 CGV 홈페이지를 보니 시간이 남아있는 것은 8시 조조와 10시50분 2회차 뿐이었고, 그나마 좌석은 맨~ 앞에서 2,3줄이 고작이었다.
IMAX에 대해 여러 커뮤니티에서 후기도 읽어보고 조사도 한 결과 H~L 열 사이가 가장 보기도 좋고 사운드 접점이기 때문에 음향도 훌륭하다고 들었건만...
이건 뭐, C열 앞에서 3번째줄, 그것도 측면이니 할 말이 없다. ㅠ.,ㅜ
그래도 꿋꿋이 2시간 30분을 뻣뻣해져가는 뒷목을 움켜쥐고 올려다본 결과, 대만족이다.
이 영화의 감상 포인트는 3가지 정도가 되겠다.
그럼, 또, 귀찮지만, 번호 매겨 가면서 말해 보자.
1. 감독의 화두- “참으로 얇은 善”과 惡의 경계“.
가장 먼저 왜 배트맨 시리즈가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을 기용했는지를 고민해 보아야 한다.
이것은 3년 전 쯤 “배트맨 비긴스”를 보고 쓴 글의 연장선 이지만, 여타의 HERO 물과는 다르게 배트맨은 “태생의 한계”로 인한 고민과 방황, 우울함과 강박증 등을 가지고 있고 그것을 표현해 내야만 했다.
특히 초기 배트맨 시리즈의 “팀 버튼”이 그려 내었던 이미지들이 3편부터 유아용 블록버스터 수준으로 격이 떨어지는 동안, 나이를 먹으면서 생각이 깊어지고 눈이 넓어진 초기 관객들은 이미 어른이 되어 있었고 그래서 배트맨 5편 무렵 부터는 “쓰래기 영화”라는 오명을 안티팬도 아닌 진짜 팬에게서 듣게 되었다.
그때 등장한 위기론 가운데에서 구세주로 뽑힌 것이 “크리스토퍼 놀란” 이었고, 그는 다소 무리는 있지만 이야기를 원점으로 되돌림과 동시에 영화 시리즈의 色을 180도로 완전히 바꾸어 놓아서 관객들에게 “새로운 배트맨” 시리즈의 진지한 모습을 선사하게 된 것이다.
그가 주장하고 싶은 바는 “비긴스”에서 시작하여 “다크나이트”에서 어느 정도 윤곽이 잡혀 보인다.
“비긴스”에서는 배트맨의 탄생에 대한 설명과 함께 배트맨의 독특한 설정에 대한 부연 설명을 제시하는 것에 신경을 써서 사실 주제의식이 좀 약해 보였던 것이 사실이다.
善을 지키기 위한 단체가 목적을 위해 자신들만의 정의로 세상을 심판한다...
(좋아, 떡밥은 잘 던졌다!)
그들의 오만함과 감독, 그리고 배트맨이 생각하는 “정의”에 대한 얘기가 더 깊이 들어갔어야 했는데, 그것을 얘기하기에는 영화 러닝타임의 압박과 ‘비긴스’라는 성격상 더 파고들어갈 여지가 없었던 것 같다.
그래서 그 “정의” 또는 “善과 惡”이라는 절대 화두에 대한 연장 토론이 “다크나이트”에서 여러 등장인물로 대별되어 결론지어 지는 것이다.
“비긴스”에서 “善의 절대성과 합목적성”을 얘기하고자 했던 감독은 “다크나이트”에서는 “개인으로서의 善”을 꺼내어 들어 “善과 惡의 경계”의 미묘함에 대해 스마트하게 떡밥을 제시한다.
이미 “비긴스”에서 고담시의 정의로 자리잡은 배트맨은 “다크나이트”에서 더 이상 주제의식을 설파하지 못한다.
대신 화두를 던지고 이야기를 전개해 나가는 쪽은 “조커”이다.
그는 영화를 두 갈래로 나누어 善에 대해 까발리려고 노력하는데, 자신이 악인임에도 불구하고 절대로 惡에 대해 열변을 토하거나 찬양하지 않는다.
1-1. 첫 번째 노선은 “배트맨”의 정체를 밝혀내는 것인데, 여기서 조커는 배트맨과 자신과의 “동질성”을 내세우며 “생각의 차이일 뿐 서로 별종인 우리 둘은 통하는 사이”라는 약간 사이코틱 하지만 묘하게 설득력 있는 주장을 한다.
1-2. 그러나 후반부에서는 두 번째 노선으로 변경을 하게 되는데 그 매개체는 White Knight, 즉 “하비 덴트” 검사이다.
“하비 덴트”를 사이에 두고 배트맨은 그를 “현실세계의 영웅” 이자 “살아있는, 움직이는 善”으로 여기고 그렇게 만들어 간다.
반면에 조커는 오히려 “절대 善” 혹은 “고담시 마지막 양심”으로 불리우는 “하비 덴트”를 끊임없이 간질이고 건드려서 매우 얇은 시소 위에서 위태롭게 존재 할 수 밖에 없는 “완결성”을 뒤집어 버리려고 한다.
영화상에 등장하는 복선의 산물인 “양면 동전”과 조커의 “상하반전 조커카드”는 이런 면에서 상통하는 의미를 넌지시 제시하고 있었고, 결국은 “절대 善”이어야 했던 “하비 덴트”는 너무도 쉽게 “절대 惡”으로 넘어가게 되어 조커의 의도대로 세상의 섭리(?),논리(?)가 귀결되어지는 것으로 결말이 치닫는다.
하지만 감독은 적당한 “타협선”과 그 “희생양”을 잊지 않았다.
“타협선” 이라 함은 “조커”가 한 개인의 마음은 바꾸고 조종할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하는 경우도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개인의 도덕이 사회의 도덕이 될 수 없듯이, 반드시 개인의 악함이 단체의 악함으로 표출되어 진다는 명제는 성립하지 않는 다는 사실을 제시하는 것이다.
죄수들을 실은 배와 선량한 시민을 실은 배...
이렇게 2척의 배에 상대 배를 폭파시킬 수 있는 스위치를 주고 서로 먼저 죽이기 위해 혈안이 되어 싸우는 모습을 보며 자신의 생각의 완전성과 논리의 무결함을 확인하고 싶었던 조커 였지만, 결과는 그의 생각과는 정 반대로 나타난다.
실제로 이런 상황에서 이런 결말이 날 가능성 보다는 서로 죽고 죽일 확률이 높을 것이 당연하다.
그러나 조금 억지로 보일 수도 있지만, 이것은 감독이 이 우울한 영화에서 단 하나의 희망의 메시지로서 “상황이나 핑계로 인해 모두다 악인이 되는 것은 아니다”라고 애써 애처롭게 주장하고 싶어하는 바이니, 그냥 넘어가 주자.
대신 감독은 자신의 조그만 희망을 보여주기 위해 영화에서 가장 큰 카드를 버려야 했다.
“희생양”은 바로 “배트맨” 이었던 것이다.
“배트맨”은 감독의 애처로운 주장을 고담시 사람들에게 납득시키기 위해...
세상에 “절대 善”과 “착한 사람”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스스로 모든 惡의 책임을 뒤집어 쓰고 동전의 어두운 뒷면이 되는 것을 선택한다.
빛이 있으면 어둠이 있듯이...
빛을 더욱 밝게 하기 위해서 스스로 더욱 짙은 어둠이 되어야 하는...
White Knight를 빛나게 하기 위해 Dark Knight로서 뒤에 남는 것이다.
2. 조커가 되어버린 히스 레져.
두 번째 감상 포인트는 고인이 되어버린 “히스 레져”에 대한 부분이다.
뭐, 워낙 극찬을 받을만한 연기였고, 역시 다들 평가를 멋지게 해 주고 있으니 별로 덧붙일 말은 없다.
“조커 역할에 100%충실했다”
배우에게 칭찬이 될 수도 있지만, 이번 경우에는 그것이 재앙이었다.
훌륭한 연기를 하는 배우 중에 그 연기가 acting 이 아니라 실제 삶의 모습으로 보여지는 배우들이 있다.
그런 배우들은 촬영 동안 연기를 한 것이 아니라 실제로 그 역할에 빠져들어 그 인물 자체가 되었던 것이다.
이번 조커 역할을 위해 “히스 레져”는 6개월 가량은 골방에 갇혀 캐릭터를 연구하며 조커의 성격, 인간성, 악인이 되어버릴 수 밖에 없는 이유...등을 생각했을 것이다.
그리고 하필이면, 맡은 역할이 극히 불우하고, 극히 암울하고, 극히 퇴폐적인 “조커”였기 때문에, 그의 우울증과 약물의존증을 부채질 했고, 그는 어린 나이에 세상을 등지고 말았다.
하지만 그가 그렇게 조커 역할에 파고들었기 때문에 전혀 색다르지만 매우 완벽해 보이는 조커가 등장하게 되었다.
“팀 버튼”의 1편에 등장했던 조커는 매우 희화화 되어 있는 캐릭터로 여기저기 유머러스함과 카리스마를 뿌리고 다니는 멋진, 혹은 재미있는 악당으로 등장하였다.
하지만 “다크나이트”의 조커는 그야말로 조커의 웃는 입이 진짜 웃는 모습이 아니듯이...
보라색의 웃긴 양복과 우스꽝스러운 진한 화장을 하고 있지만 그 뒤에 숨겨진 우울함과 슬픔 등이 고스란히 남아 전해지고 있었다.
조금 괴팍하게 그려질 뿐, 절대 희화화 된 캐릭터는 아니었으며, 오히려 매우 디테일 하게 표현된 이리저리 움직이는 눈동자라든지...끝을 늘이면서 쩝쩝 거리는 말투...등으로 인해 단순히 극악무도한 악당이 아니라 정신적 트라우마와 강박증을 가지고 있는 불완전한 인간으로서 연민을 느끼게 하는 매우 이중적이면서 매력적인 연기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의 땀에 젖은 지저분한 머리칼...
군데군데 화장이 지워져 더욱 섬뜩해 보이는 화장...
불안정한 눈동자와 끈적이는 입술...
그가 연기한 조커가 대본에 딱! 맞는 조커는 아니었을지 모르나, 그가 창조한 조커는 누구도 토를 달지 못할 정도로 정말 훌륭했다.
이전에 대배우인 “잭 니콜슨” 했던 역할이기 때문에 당연히 비교도 될 것이고, 부담도 많이 되었을 텐데...그것을 이겨내고...아니 아예 무시한 것 같지만...이런 명연기를 펼친 그가 이젠 세상에 없다고 생각하니 또 한번 눈물이 난다.
그는 이 작품으로 영원히 영화팬들의 가슴에 살아 숨 쉴 것이다.
3. IMAX의 의의.
“난 그 영화 IMAX로 봤잖아” 라고 자랑할 수 있을 정도의 의미 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아직 IMAX로 밖에 못 보았기 때문에, 일반화면으로 보고 난 후에야 그 훌륭함을 비교하여 깨달을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IMAX 3D가 아닌 이상 2D는 그냥 큰 화면에서 영화를 볼 수 있다는 장점 밖에 없다.
하지만 이 영화는 그 이상의 의미가 있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은 의도적으로 IMAX 필름을 써서 영화를 촬영했던 것이다.
그런 영화를 1.85:1이나 2.35:1 정도의 일반 영화관에서 보고 나서 감독의 생각을 알겠다느니, 영화를 100% 즐겼다느니...그런 말은 할 수가 없는 것이다.
더군다나 음향 시스템에 있어서도 20채널 가까이 되는 IMAX 포맷의 시스템은 현장감에서부터 다른데, 특히 국내에서 IMAX가 자연다큐멘터리 물로만 인식되어 있다가 이런 액션 영화를 IMAX 포맷으로 보게 된다면 새삼 그 위력에 놀라게 될 것이고, 왜 모든 영화들이 IMAX로 만들어 지지 않는 가 원망하게 될 것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비싸니까”
영화 제작 하기도 힘들고 제작비도 많이 들지만, 그렇게 찍은 영화를 돌릴 영화관 시스템을 구비하는 데에도 많은 돈이 들어간다.
근데 그런 투자를 안해도 사람들은 영화보러 오거든...
어쨌든 영화 보러 가기 전에는 “왜 OECD 선진국인 대한민국 서울에 IMAX 영화관이 1군데 밖에 없는 거야!!!”라고 울분을 토했으나...
영화를 보고 난 후에는 “그래, IMAX 영화관이 서울에 한곳이라도 있는 것이 정말 고맙고 행복하구나...”라는 생각으로 바뀌었다.
다행히 아직 극장에서 상영중이니까 아직 안 본 사람은 꼭 용산,인천,일산의 CGV에서 IMAX로 관람하기를 권한다.
이상 A4 5장짜리 길고 긴 감상평, 끝~
'영화속의 쥐며느리'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맘마미아]- 엄마와 함께 본 뮤지컬영화의 재미 (0) | 2009.02.07 |
---|---|
[신기전]- 기획의 승리, 결과는 실패 (0) | 2009.02.07 |
[좋은놈, 나쁜놈, 이상한놈]- 소고기에 비유한 세배우 (0) | 2009.02.06 |
[크로싱]- 탈북자를 이용하지 말지어다! (0) | 2009.02.06 |
[밴티지 포인트]- 스릴이 지루함이 되는구나~ (0) | 2009.02.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