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2. 11. 2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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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4월 14일 작성된 글입니다).
나는 환타지와는 잘 맞지 않는 것 같다.
아마 세계관의 차이를 순수하게 받아들이지 못하기 때문인 것 같다.
나 같은 성질 더러운 독자는 하나하나 꼬치꼬치 따기기 시작하고, 그것에 갇혀서 소설 자체로서의 재미를 놓쳐버리는 것이다.
(심지어 나는 “반지의 제왕”을 소설로 보다가 1권에서 집어던지고, 영화관에서 “왕의 귀환”을 보다가 졸았다...물론 “해리포터” 같은 앞뒤없는 개 쓰래기는 증오한다!!!)
이런 선입견과 경험들 때문에 환타지 작품을 손에 들기 힘들었는데, 그럼 사람들은 이렇게 묻는다 “근데 무협지는 왜 봐?”
사실 무협지는 환타지와 같이 창작에 의한 허구성이 플롯을 형성하는 문학이지만 기본적으로 무협의 세계관에서는 거대한 정형성이 울타리를 형성하고 있기 때문에 아무리 황당무계하더라도 그 한계를 넘는 일은 없다.
하지만 환타지의 세계는 작가의 무한한 상상력으로 세계를 창조할 수 있지만, 그만큼 다양하고 말도 안 되는 세계들이 통일성 없이 여기저기 등장하기 때문에 그것이 웬만큼 완전하고 앞뒤가 맞지 않으면 나같은 보수적이고 깐깐한 독자에게는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이영도씨도 이후 작품인 "눈물을 마시는 새“, ”피를 마시는 새“ 등은 매우 독특한 세계관을 보여주고 있고 매우 재미있다.)
무협이든 환타지든 순수문학이 아닌 장르문학이라고 보았을 때, 나라는 개인이 싫으면 안보면 되는 일이니까 별로 좋고 나쁨을 논하고 싶지는 않다.
이번에 보게 된 “드래곤 라자”는 앞서 읽은 몇 개 안되는 환타지처럼 “안보면 바보가 되는”수준의 명작이라고 여기저기서 추천을 해서 마음이 동하고 있었는데, 얼마 전에 일본에서 50만부가 넘는 판매고를 올렸다고 매스컴에 기사로 나타났기에 마침 시간이 많은 요즈음에 읽어보기로 마음을 먹은 것이다.
사실 “이영도”라는 작가에 대해 미리 알지도 못했기 때문에 그의 첫작품인 “드래곤 라자”로 그가 창조한 세계에 첫발을 내딛는 것은 잘한 일 같다.
“드래곤 라자”는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상상이 가능한 환타지의 세계에서 나름대로 정형성을 보이는 보수적 환타지인 것 같다.
기사와 마법이 등장하는 세상과,
드래곤, 엘프, 드워프, 오크...등 그 세계의 구성원,
정의가 존재하는 스토리.
기본적인 환경은 서구권과 일본 환타지에서 만들어낸 정형성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구성이다.
하지만 그의 작품이 많은 인기를 얻었을 뿐만 아니라 칭송을 받는 이유는 “이영도”식 세계관이 그 세계를 관통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1. 소영웅주의의 활용과 배제.
이 소설의 주인공인 “후치 네드발”은 시골에서 양초를 만드는 초장이집 아들이다.
별로 잘난 것도 없고, 보통의 시골 사람들처럼 작은 세계에서 그만큼의 지식과 안목을 가지고 사는 청년이다.
그런 그가 마을의 위기를 풀어내기 위하여 영주 대리인 “카알”과, 경비대장 “샌슨”과 함께 떠나는 작은 출발이 소설의 시작이다.
하지만 그들의 행보는 전쟁의 가운데에서 국가의 위기를 구하고, 현재의 세상을 만들어낸 전설의 인물들과 만나게 되면서 세상과 인간의 앞날을 위해 거대하고 위험한 모험을 하게 되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여기서 당연히 奇緣과 奇寶가 등장하여 주인공에게 힘을 주고, 그가 성장하면서 독자의 감정을 이입시키면서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하는 것이 당연한 수순일 게다.
하지만 영리한 작가는 그러한 부분을 적절히 사용하면서도 인간과 현실에 대한 생각과 말들을 주인공과 친구들의 입을 통해 말하면서 영광의 흥분을 죽이지 않으면서도 냉소적인 현실감각을 잃지 않는다.
(카알은 전쟁영으로 남는 것이 싫어 왕궁을 벗어나려 하고, 후치는 백작이 되었으나 영지를 떠나 그냥 고향으로 돌아와 초장이가 된다.)
2. 역할 구성.
여행의 장정은 다양한 인물들을 만나면서 다양한 에피소드들을 만들어낸다.
지적인 리더 “카알”, 머리는 나쁘지만 최고의 전사인 “센슨”, 고등마법을 쓰지만 인간과 거리감이 있는 엘프 “이루릴”, 예쁘고 발랄한 여도둑 “네리아”, 과거를 회개하고 마법에 정진하는 착한 마법사 “아프나이델”, 낙천적이고 대책없는 프리스트인 “제레인트”, 손재주 좋은 300살 먹은 드워프 “엑셀핸드”...그리고 여행의 로망과 의미를 부여하는 왕자 “길시언”...
“파티”라는 동료 개념으로 모인 이들은 소설의 목적 흐름에 따라 함께 여행을 해 나아가게 되는데, 이 구성은 전사,도둑,엘프,마법사,프리스트...등 거의 완벽한 구성을 갖춘 Role을 보여주기 때문에 마치 한편의 RPG 게임을 하는 느낌이 들게 한다(실제로 “드래곤 라자”는 만화, 게임화 되었다.)
이런 완전 인물 구성은 각자의 직업(맡은 부분)과 종족 구분에 따라 여행의 의미와 과정에 대해 각각 다른 시각과 의견을 나타내어 단순한 활약을 벗어난 소설의 주제의식을 대변하는 개개인으로서 존재하게 된다.
계속해서 자신이 단순하고 깊은 생각은 못하며, 싸움 보다는 요리를 좋아한다고 주장하는 우리의 주인공의 눈과 입은 매우 중요한 관점이 된다.
일종의 백지 상태와 같은 상태에서 시작한 주인공의 사고와 행동, 언행 등은 이 소설이 “1인칭” 시점 이라는 사실 때문에 소설상의 모든 일들이 비추어지는 그의 눈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렇게 누누이, 친절하게 “주인공의 역할”에 대해 설명한 작가는 그 주변에 배치된 동료들과 적들에게 애국심, 애정, 배신, 야욕...등의 색깔을 부여하는데 그 속에서 주인공에게 세상의 복잡한 일들에 대해 중용의 관점을 유지토록 강요한다.
그리고 그의 친구들은 단순한 역할 role을 뛰어넘어 그들이 대표하는, 그들에게는 일반화 되어있는 “종족 관념”을 기준으로 하여 주인공이 “인간”이기 때문에 아무리 중용을 지키려고 해도 어쩔 수 없이 넘을 수 밖에 없는 이기심이나 무지함을 지적하고 지지해 준다.
예를 들면 오래 살기 때문에 매우 관조적이며 자연 친화적인 시각을 가진 “엘프”라던가...
타 종족에 대한 이해를 원천적으로 거부하며 건설,조각,제작등 단순 소명에만 집착하는 “드워프”...
이런 종족이 다른 역할 이외에도 한 나라에서 한 가지 생각만 가지고 있는 그들을 환기시키는 외국인...(사실은 사로잡힌 간첩)...까지도 주제에 대한 균형감각을 제공한다.
3. 플롯과 서사.
앞서 말했듯이 이 소설은 “판타지”라고 불리우는 다양한 요소들이 거의 모두 등장하는 Standard Fantasy 인데 그것은 정말로 잘 배치하고 이어내지 않으면 지저분하고 복잡해지며 정리가 안되는 상황에 봉착할 수도 있는 무서운 점이다.
대부분의 소설이 중세의 기사물, 악마와의 싸움, 드래곤과 몬스터류, 전설을 쫒는 모험가와 트레져헌터...등의 한가지 소재를 가지고 가는 이유는 작가가 그 이상의 것을 엮어 내지 못하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독자들이 그 이상을 받아들이지 못하기 때문일 수도 있는 것이다.
게다가 이 소설은 구성의 면에서 치명적인 약점을 가지고 있는데, 그것은 “온라인 연재 소설”이라는 점이다.
이 소설은 요즘 같은 인터넷 세상도 아닌 아날로그 세상에서 PC통신 게시판에 연재되던 소설이다.
작가는 몇 일의 간격을 두고 주기적으로 게시판에 일정 분량의 글을 올렸고, 그것을 나중에 책으로 엮은 것이다.
이 경우 매일매일 Update 되어야 하는 연재소설의 특성상 다양한 내용을 담기 힘들고, 짧은 연재분에서 시점 이동이 힘들며, 일을 벌려 놓을 경우 수습이 안 되는 “작가의 약점” 이외에도, 매번 흐름이 끊기기 때문에 독자들이 집중력을 놓치고 앞뒤 사건의 인과관계와 현재 연재되는 부분의 흐름을 따라가기 힘들다는 “독자의 난점”이 공존하는 것이다.
하지만 내 개인적인 판단에 이영도씨는 이 양날의 검을 요리조리 잘 요리하여 짧은 연재분 안에 많은 내용을 넣으면서도 다양한 떡밥(?)들로 독자들을 잘 이끌어서 결과적으로 성공적인 장편소설을 완성한 것 같다.
게다가 이 소설은 철저하게 “1인칭” 시점이라는 부분에서 처음부터 큰 제약을 가지고 있는데도 작가의 무리함을 느낄 수 없다는 것은 그의 글솜씨가 매우 뛰어나다는 반증이 아닐 수 없다.
그렇게 등장하는 것이 드래곤과의 적대관계, 건국 전설, 마법사와의 많은 관계, 출생의 비밀, 배신과 음모, 국가 전복 위기...등 다양한 내용들이다.
글의 서두에서 언급했듯이 나는 판타지 소설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 소설은 큰 거부감이 들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재미도 있었다.
그리고 “이영도”라는 작가에 대한 강한 유대감이 생겨서 이미 그의 다른 소설들을 읽고 있다.
그럼 다음 글에서는 그의 최고의 명작이라고 평가받고 있는 “새” 시리즈 중의 첫편, “눈물을 마시는 새”로 만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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