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2. 10. 1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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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3월 12일 작성된 글입니다).
나름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팬이다.
처음으로 그를 접하게 된 “타나토노트”부터 시작해서 나의 10~20대에 접한 그의 작품들은 모두 기대감을 충족시켜 만족감을 안겨 주었다.
사실 따지고 보면 그는 훌륭한 작가는 아니다.
딱히 문학적 가치가 높은 작품을 쓰는 사람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는 일정한 장르 안에서 자유롭게 망상을 펼쳐내는 재주를 가진 몽상가일 뿐이다.
그러나 약간의 과학적 바탕과 심각한 주관적 비약을 거친 그의 망상은 그만의 독특한 개성으로 뭉쳐져서 많은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마술을 발휘한다.
이런 그의 행보는 팬으로서 조금 불안하기도 하다.
말했다시피 그는 “독특한 소재”를 가지고 흥미를 유발하는 작가이기 때문에, 작품수가 늘어나고 상상력이 바닥이 날수록 독자와 평단들은 “예전만 못하다”라는 실망을 반복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3년전에 “나무”가 출간되었을 때는 기뻤고, “우리친구 지구인”이라는 영화를 만들었을 때 놀랐다.
가장 많이 지적되는 단점인 “기발한 상상력으로 일을 벌여놓고 수습을 못해서 결말이 흐지부지 되어버리는” 점을 장편소설이 아닌 단편을 씀으로써 커버할 수 있게 되어 “나무”는 베르베르의 장편소설 전질을 읽는 것 보다 훨씬 적은 시간으로 큰 재미를 얻을 수 있는 명작이 되었다.
그리고 그의 소설은 상상력에 바탕을 두기 때문에 독자가 머릿속에 소설속의 묘사와 전개를 그리는 것이 매우 큰 재미인 것이 사실이다.
그런 면에서 그의 작품들은 좋은 영화 시나리오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 왔는데, 그가 직접 영화를 만든다고 했을 때, 많이 놀라면서 박수를 보냈었다.
언젠가 그의 다른 작품들이 그가 아닌 다른 감독의 손으로 만들어 진다면, 그것 또한 매우 재미있는 결과가 나올 것 같아 기대된다.
어쨌든 “파피용” 얘기를 하려다가 베르베르에 대한 얘기만 잔뜩 하게 되었는데, 다시 본론으로 돌아오겠다.
“파피용”에 내 개인적인 평점을 주라면 ★★☆(5개 만점)이다.
이유는 앞의 다른 소설처럼 번호 라벨링으로 써 보겠다.
1. 새롭지 않은 소재.
앞서 얘기한 것처럼 그의 가장 큰 무기는 “기발한 상상력을 바탕으로 한 흥미로운 소재”이다.
그러나 이 작품에서 “파피용”이라는 거대 우주선으로 지구를 탈출하여 새로운 행성을 찾아가는 것은 너무 진부한 소재이다.
“마지막 희망은 탈출”...
전쟁, 범죄, 종교, 정치, 질병으로 황폐화 되어가는 디스토피아의 현실에서 도피하여 유토피아를 찾아가는 이야기는 많은 곳에서 존재해 왔다.
특히 “노아의 방주”같은 장치는 지구탈출류 소설에 있어서 꼭 필요한 부분이기 때문에 굳이 잘했다 못했다를 거론하긴 힘들지만 역시 식상한 존재인 것은 부인할 수 없으며, 1000년의 시간 전에 목적지로 정해놓은 행성이 공룡이 뛰노는 원시림 상태의 중생대 즈음의 지구 모습을 똑같이 닮아 있을 필요는 없었는데...라는 아쉬움이 자꾸 남는다.
“혹성탈출”이나 “the Contact"같은 놀라운 결말을 기대한 것은 아니지만, ”역시 베르베르는 끝맺음이 약하다“라는 통설을 입증하기라도 하는 듯 하여 팬의 한사람으로서 씁쓸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2. 기독교적 세계관.
특히 지나치게 의도적으로 느껴져 거부감을 유발하는 기독교적 세계관은 살짝 유치함을 넘어서서 민망하기까지 하다.
앞서 언급한 “노아의 방주” 시스템도 그렇고...
마지막 생존자인 “아드리앵(아담)”이 자신의 갈비뼈를 꺼내 신인류인 “에야(이브)”를태어나게 하는 부분...
“이브, 사탄, 천국, 지옥”등의 명명도 그렇지만 마지막에 “에야”가 계속해서 이름을 틀리게 부르면 “야훼, 아담, 이브”등의 이름을 직접 언급하는 장면에선 지나친 작가의 친절이 낯뜨겁기까지 한 것이다.
(덩달아 독자가 못 알아먹을까봐 친절히 각주까지 달아주는 멍청한 번역자의 작태는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어 주었다).
파멸해 가는 지구와 우주선내의 모습을 소돔이나 폼페이의 양상으로 그리지는 않았지만, 새로운 행성에서의 첫발을 굳이 창세기를 가져다 쓴 진부함은 도대체 어쩔 것이냔 말이다!!!
3. 삽화 삽입.
베르베르의 장점인 “상상력”의 구체화라는 점에 있어서 뫼비우스의 그림은 어느 정도 도움을 줄 수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독자로서 베르베르의 책을 읽으면서 가질 수 있는 가장 큰 재미가 바로 그의 묘사와 설명을 보고 나의 머릿속에 상상하고 그려보면서 베르베르와 교감하고 있다는 느낌을 갖는 것이었는데...
삽화는 베르베르의 감수를 받아 일종의 “고정관념”을 독자들에게 심어주어 한편의 명작소설을 애들이 보는 “공상과학 만화”또는 “동화책” 수준으로 떨어뜨려 놓은 것 같아 아쉬웠다.
뭐, 위와 같은 단점들이 내 눈에 띠어서 좋은 점수를 주진 못했지만, 역시 베르베르는 뛰어난 이야기꾼이다.
결코 짧지 않은 390페이지의 책을 손에서 놓지 못하고 하루 만에 읽게 만드는 재주는 아무나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어쨌든 오랜만에 출간된 그의 신작과 함께 한 시간은 행복했으니, 그의 팬으로서 기쁨을 느끼는 시간이 다시 올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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