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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월 16일 작성된 글입니다)
(2008년 1월 17일 empas.com의 blog life에 선정된 글입니다).

이 소설은 워낙에 유명하니 먼저 읽은 사람도 많겠다, 그지?

여기 저기 추천이 난무하고, 무엇보다 작가인 “주제 사라마구” 할아버지는 1998년 노벨문학상 수상자이기 때문에 그 휘광은 쉽게 무시할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이 두껍고(472p), 불친절하고(모든 문장기호 생략, 문단구별 생략), 메스꺼운(내용이...) 책을 손에 쥐게 된 이유는 이 소설이 영화화 되기 때문이다.

현재 촬영중이라는데 감독은 “City of god"의 감독이었던 ”페르난도 메이렐레스“가 맡았고, 타이틀 롤이라고 할 수 있는 의사 부인은 ”줄리안 무어“가 맡아서 신뢰가 생긴다.

어쨌든 이 소설의 대부분의 감상평이 주제 사라마구 할아버지의 소설관인 마술적 초현실주의...뭐 이런 것과 인간의 이기심에 비판과 경고...뭐 이런 것에 많이 치중되어 있는데 사실 이 소설은 기획과 플롯이 매우 탄탄하다고 생각되기 때문에 이런 사전지식과 선입관이 없다면 소설 자체의 충격적이고 흥미진진한 흐름에 좀 더 깊게 빠져들 수 있지 않을 까 싶다.

따라서 나는 좀 길고 지루할 지도 모르겠지만, 이 소설을 읽는 데 들인 내 기나 긴 겨울밤과 그때 느꼈던 소름 돋는 카타르시스를 남기기 위해 소설의 내용과 기승전결의 흐름에 따른 분석에 글의 중심을 두겠다.

1. 전조.

-소설의 시작은 한 남자가 갑자기 길 한복판에서 운전중에 눈이 멀면서 시작한다.
그러나 이 시력 상실 증상은 일반적인 암흑에 빠지는 것과 달리 세상이 하얗게 보이게 되고 이를 치료하기 위해 안과병원에 간다.
안과 의사는 이 신기한 case를 연구하는 중에 집에서 눈이 멀게 되고...점점 눈이 머는 사람들이 속출하게 된다.

2. 전제적 정부의 대응.

-이 소설에서 배경은 현대사회의 어느 도시이다.
사라마구 할아버지가 포르투갈 사람이라 그런가...아님 도로에 돌이 깔려있다거나 낮은 아파트들이 도로변에 주~욱 깔린 묘사를 보다보니 마치 유럽의 어느 중소도시의 모습이 눈에 그려진다.

어쨌든 안과의사는 직업적 사명감에 의해 이 시력 상실 증상이 전염병일 가능성을 상정하고 정부와 보건부에 신고를 하게 된다.

이때 웃긴 것이 정부의 대응인데, 일전의 명작 영화인 “괴물”에서 정부는 미군의 말만 믿고 사건의 원인인 괴물 조사는 등한시 하고 전염력을 무서워하여 송강호 일가를 쫒는 것에 더 힘을 쏟는 목적 전치의 상황을 재미있게 보았었다.

이 소설에서도 마찬가지인데 정부는 실명 사건의 원인과 치료법 개발에 힘을 쓰지 않고 현재 실명 증상이 확인된 유병자와 그들과 접촉하여 잠재적 발병 가능성이 있는 자들의 격리와 처리에만 신경을 쓴다.

그들의 주장은 “미친 개가 죽으면 광견병은 치료된다”는 것인데, 일견 맞는 말이긴 하지만 현대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극히 위험한 발상이다.
하지만 소설 상에서는 이 나라의 국적과 사회체제가 등장하지 않기 때문에 뭐라 할 수는 없고...다만 정부의 우매함과 힘에 의지하여 억압적으로 통치하는 전제적 체제의 암맹부위를 풍자하기 위한 작가의 의도적 설정이 아닌 가 싶다.

어쨌든 정부는 유병자 및 보균자들을 시내의 정신병원, 체육관, 창고등에 격리수용을 시키고 그들의 외부 접촉을 막기 위해 군인들이 지키게 하며, 무단 이탈시 실탄 발포를 하는 등 강압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심지어는 군인 상사의 입을 통해 “저들이 모두 죽는 것이 사태가 빨리 해결되는 길이다”라는 의미심장한 말을 내뱉게 한다.

3. 작은사회의 구성.

-이렇게 격리수용된 사람들 중에서 소설의 전지적 작가 시점은 하나의 정신병원에 수용된 사람들을 이후 주인공으로 설정하여 보여준다.

맨 처음 병원의 첫 번째 병실에 모인 사람들은 소설 서두에 등장했던 (안과의사와 그 부인, 그리고 맨 처음 눈이 멀어 병원에 왔던 남자와 그 부인, 눈 먼 남자의 자동차를 훔쳤던 도둑, 그리고 그 시간에 안과 병원에 있었던 백내장 걸린 애꾸 노인, 사팔뜨기 소년)등 “병원”을 매개로 하는 일단의 사람들과 (창녀였던 선글래스 여인, 이 창녀와 sex를 하던 남자, 그 호텔 청소부)등 창녀와 호텔을 중심으로 하는 사람들, 그리고 기타 여러 곳에서 온 사람들이 등장한다.

이 관계에 연계된 사람들이 주요 등장 인물이 되어 소설을 이끌어 가게 되는데, 흥미로운 것은 그들의 이름이 전혀 언급되지 않는 다는 것이다.
등장하는 사람중에 특정한 직업을 가지고 있는 사람의 생각(의사)이나 행동(창녀)같은 전형성을 전제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사람들과 일반인, 의존성이 강한 소년...등을 배치하여 익명성을 내세워서 이 작은 병실에서 구성된 사회에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사고체계와 행동양식을 독자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작가의 의도가 아닐까 싶다.

하지만 단 한명의 예외가 있는데 그것은 안과 의사의 부인이다.
그는 예외를 인정받을 수 있는 특별성을 가지고 있는데, 그것은 바로 그녀는 맹인이 아니라는 점이다.

식상한 비유이지만 “애꾸 왕국에서 눈이 두개인 사람은 병신이지만, 맹인 나라에서 눈이 보이는 사람은 왕” 이기 때문인데, 그녀는 눈이 멀지 않았으면서 맹인이 된 남편을 돌보기 위해 격리수용소에 들어오게 된다.

그녀는 독자적인 생각과 판단, 행동이 가능한 거의 유일한 존재인데, 눈이 보이기 때문에 소설의 전개에 따라 발생하는 사건을 바라보는 작가, 독자의 눈이 되는 동시에 사건의 전개, 해결에 결정적인 관여를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게 된다.

하지만 제한이 있는 것은 작가가 이 암울한 세계에서 희망...은 아니어도 양심의 의미로 그녀를 설정해 두었기 때문에 그녀는 “볼 수 있다”는 잇점을 자신의 이기심을 위해 사용하지 않고 자신이 할 수 있는 한 보다 많은 사람들을 보호하고 먹여 살릴 수 있는 길을 찾아 행동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어쨌든 소설은 이들을 중심으로 흘러간다.

4. 무질서와 본능, 그리고 동물화.

-작가가 이 소설에서 중점을 가지고 보여주고자 했던 부분은 아마도 모든 인간이 공통의 장애를 가지고 평등하게 되었을 때 어떻게 사회가 굴러가는지...그리고 문명의 창조와 이용이 불가능해진 상황에서 기문명화 되어있던 인간들이 어디까지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다.

수용소에는 계속해서 실명된 사람들이 몰려들어 가득 차게 되고, 모두 동일하게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의 시작은 마치 게임의 start 장면인 듯하다.
이성과 수치심을 가지고 있던 인간들은 장애의 한계로 인해 점점 그것들을 상실하고 그저 동물이 되어 간다.
그리고 본능에 따른 삶을 살아가게 되는데, 작가는 그 순서와 단계를 잘 설정하여 보여주고 있다.

4-1. 배설욕.

-사람들은 군인들이 주는 배급품만을 먹게 되는데, 거의 먹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똥오줌은 계속해서 나온다.
하지만 그들은 눈이 안 보이기 때문에 화장실을 잘 찾지 못하고, 화장실을 찾아도 제대로 이용할 수 없어서 화장실은 똥 천지가 된다.

처음에 수치심을 가지고 그래도 화장실을 찾던 사람들은 어차피 다른 사람들이 쳐다보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굳이 화장실 까지 가는 수고로움과 모험을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고 이젠 아무데나 똥오줌을 싸게 되고, 병실과 복도, 마당은 모두 똥 천지가 된다.

거기를 걷고, 기어다니던 사람들은 그대로 또 먹고 자고 하는데, 눈이 안보이니 수도를 찾아 씻을 생각도 못하게 된다.

이제 돼지가 되기 1보 직전이다.

4-2. 식욕.

-작은 수용소에서 식량의 자급을 할 여건도 안 되고, 맹인들에겐 그런 능력도 없기 때문에 비정기적으로 군인들이 주는 배급품에 식량을 의존할 수밖에 없다.

그나마 양도 적기 때문에 사람들은 누가 더 먼저, 많이 먹는 지를 가지고 싸우게 되고, 식량에 대한 욕심에 배급장소에 갔다가 군인들에게 총살 당하기도 한다.

어쨌든 이 작은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물질적 가치를 가지게 되는 것은 바로 식량이고, 이것으로 인해 모든 불신, 다툼, 반목, 살인이 일어나게 된다.

4-3. 권력(이라고 쓰고 “폭력”이라고 읽는다).

-이제 식량이라는 재화가 수용소 사회를 장악하게 되면서 그것을 독점하려는 자가 반드시 나타나게 되고, 그것을 유지하기 위한 힘과 권력이 형성되는 것은 당연하다.

이 수용소에 갇힘 사람들 중에 또 다른 전형성을 대표하는 것들이 있었으니, 바로 “깡패”이다.
그들도 어차피 눈이 보이지 않지만 그런 나쁜 놈들끼리 연합하여 몽둥이와 총을 가지고 다른 맹인들을 협박하고 통치하기 시작한다.

그들은 먼저 총과 몽둥이의 힘을 과시해(눈이 안보임에도 불구하고) 맹인들을 대량 구타(학살)하여 힘과 권력에 대한 인정을 받게 된다.

속수무책인 맹인들은 기존의 고대,중세,근대 사회가 그러하였듯이 반항, 투쟁을 하자고 주장하고 토론을 하지만 누구도 먼저 나서서 총 앞에 서지 못한다.

결국 그들은 깡패들의 요구대로 가지고 있던 모든 귀중품, 현금을 내놓고 깡패들에게 배급을 받게 된다.

4-4. 성욕.

-좀 먹고 살만해 지면 인간들은 생존 본능 이외에 다른 본능...쾌락을 주는 본능에 관심을 가지게 된다.

깡패들은 힘으로 수용소를 장악하고 식량과 권력을 손에 넣었으니, 인간의 인생에 관련된 3재인 “財, 色, 權” 중에서 2가지를 가지게 된 것이고, 당연히 남은 하나인 色에 치중하게 된다.

그들은 오만하게도 수용소에 있는 6개의 병실에서 매일 한 병실씩, 병실의 모든 여자를 깡패들의 병실로 보내도록 한다.

돈 뿐만 아니라 인권까지 유린당할 위기에 처한 맹인들은 또 분개하지만...특히 남자들이 분개하고 또 여자들을 추동하지만...결국 여자들은 다리를 벌릴 수 밖에 없게 된다.
그리고 매일 밤 20여명의 깡패들에게 강간당하는 일이 반복된다.

이젠 돼지를 넘어서서 금수만도 못한 것들이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5. 결국은 사회전복.

-식량이 끊기고...불길한 전조로써 수용소에 전기와 수도가 끊긴다(물론 맹인들에는 별 상관 없겠지만...)
더 이상 인간들이 아닌 것들이 모인 돼지우리에서 다수의 돼지들이 들고 일어난다.

먼저 역할모델을 충실히 이행한 “의사 부인”은 독립투사와 같은 행동으로 광란의 sex party 와중에 깡패들의 두목을 가위로 살해한다.
두 눈이 보이는 사람에게는 맹인이 쏘는 총과 휘두르는 몽둥이는 그리 무서운 것이 아니니까...

그러나 대장이 없어지면 다른 자가 그 자리를 대신할 뿐 바로 붕괴되진 않고, 몇몇 용기있는 맹인들이 의사 부인과 함께 깡패들을 습격하지만, 침대로 만든 바리케이트 뒤에서 쏘는 총에 맹인들은 속수무책으로 당하게 되고, 다시 “의사부인”의 개입으로 침대에 불을 붙여 깡패들을 태워 죽임과 동시에 수용소를 불살라 버린다.

맹인들은 보이지 않는 불길에 타죽고, 압사당하지만 수용소를 뛰쳐 나오게 된다.

하지만 이상한 것이 있다...
예전엔 수용소 정문 근처에만 가도 군인들이 총을 쏴서 죽이던 군인들이 사라진 것이다.

이제 맹인들은 수용소를 나와 거리로 쏟아져 나오지만...세상은 이미 끝나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눈이 먼 것이다.

“눈 먼 사람들에게 말하라, 너는 자유다. 가라. 너는 자유다...그러나 그는 가지 않는다. 길 한가운데서 꼼짝도 않고 그대로 있다. 그들은 겁에 질려 있다.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른다. 수용소라는 합리적인 미로에서 사는 것과 도시라는 미쳐버린 미로로 나아가는 것 사이에는 차이가 없다”

6. 눈먼자들의 도시.

-전기,수도,가스가 끊긴 도시에서 맹인이 된 사람들은 단지 “식량”을 찾아 손을 더듬거리며 도시를 헤메인다.

그들은 커다란 쥐새끼나 마찬가지이다.
여기저기 쓰레기를 뒤져 먹을 것을 찾고, 씻지도 않으며, 길거리 여기 저기에 내키는 대로 똥을 싸고, 남여가 홀레붙어 sex를 한다.

온 도시에 시체썩는 냄새와 똥냄새가 진동을 한다.
그 도시를 뒤져 식량을 구하던 의사 부인도 서서히 지쳐가고, 대량 시체를 목격한 후 들어간 성당에서 석상들의 눈을 붕대로 가리고, 그림 속의 사람들의 눈에 흰 페인트칠을 한 장면을 목격한다.
누가 그런 신성모독을 했느냐 라는 문제보다 그것의 상징성이 더 무섭다.
신도 인간을 돌보지 못한다는 것인가?

책 중간에 의사와 의사부인이 나눈 대화가 기억이 난다.
“우리는 눈이 멀기 전에도 장님이었어요.”
“보이지 않는 걸 보려하기 때문인가?”
“아니요, 보이는 걸 보지 않기 때문이죠...”

결국 제일 처음에 눈이 멀었던 남자를 시작으로 다시 사람들은 눈이 보이기 시작한다.
도대체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는 소설 속 등장인물들의 궁금증일 뿐이다.

현실세계의 사라마구 할아버지는 결국 인간이란 동물, 그것들이 사는 사회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이런 재미있는 소재를 찾아내었을 뿐이다.

영화상에서 작가의 생각들이 얼마나 드러날 지는 모르겠지만, 책을 읽으며 상상으로만 느껴졌던 그 끔찍한 광경과 구역질 나는 냄새들...그것들을 어떻게 묘사할 지도 궁금하다.

어쨌든 읽기는 힘들었으나 읽고 나서 많은 것을 남겨준 사라마구 할아버지, Thank you~
Posted by DreamSE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