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2. 10. 1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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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2월 4일 작성된 글입니다).
나에게 “황석영”이라는 작가의 이미지는 그간 그리 뚜렷한 것이 아니었다.
때때로 어릴 때 아버지가 심어놓은 “장길산”의 충격이 “초한지”와 맞닥뜨려 “정비석”씨와 섞여들었고...
교과서에서 처음 만난 “삼포 가는 길”은 수능 문제 풀기용 한 단락의 단편이미지가 도대체 “이청준”인지 “황석영”인지 헷깔리게도 했다.
말인 즉슨 내가 그만큼 문학계에 대해 아는 바가 적고 깊이가 얕다는 것이다.
수능 언어영역, 외국어 영영 만점은 “문제풀이능력”에 국한되는 것이었는데 그것이 나를 문학에 대한 이해도가 높다는 착각에 빠져들게 했던 것 같다.
기껏해야 끝까지 완전히 읽은 소설은 얼마 되지도 않으면서...
어쨌든 이번에 읽게 된 “바리데기”는 오랜만에 내가 읽고 싶어서 구입한 책이다.
아니, 사실 나는 섬에 있어서 책을 구입할 수 없기 때문에(섬은 택배비가 비싸서 9000원짜리 물건사면서 7500원의 택배비를 낸 적도 있다 ㅡ.,ㅡ) 서울에 있는 누나에게 인터넷 서점 할인쿠폰을 보내주고 대신 사달라고 부탁을 했었다.
보면서 “황석영”이라는 작가의 흰머리를 고정관념으로 가지고 있었던 나는 새로이 그에 대한 호감이 깊어졌다.
사실 이전에 봤던 “삼포 가는 길”, “장길산”이나, 작년 즈음에 지진희, 염정아가 주연한 영화로 만들어져 개봉했던 “오래된 정원”에서 느껴지는 gap들이 상당히 컸기 때문에 작가 자체에 대한 일관된 이미지를 확립하지 못한 점이 그를 다른 사람과 쉽게 혼동하게 되는 이유가 되지 않았나 싶다.
책의 내용을 잠깐 언급하자면 4가지 정도의 플롯이 작가의 주관적 주제의식에 잘 버무려져 마무리까지 깔끔하게 되었다는 점이 매우 마음에 들었다.
1. 실제설화 “바리데기”.
우선 책의 제목이자 전체적인 스토리를 아우르는 “바리데기” 설화에 대해 조금쯤은 알고 있어야 한다.
내가 이 책을 사자 마자 엄마가 제목만 보더니 “어? 바리공주 이야기 아냐?”라고 아는 척을 하셨다.
나보다 윗세대 분들에게 “바리데기” 혹은 “바리공주” 이야기는 매우 친밀한 것이었다.
원래 “바리데기”는 버려진 딸...이란 의미 정도인데 원래 이것이 한반도 전역에서 펼쳐지는 굿(무속적인)의 일부로 퍼져 있었다고 한다.
그것이 바리데게 내용만 따로 떨어져 나와서 설화처럼, 혹은 구전동화처럼 전해져 왔는데, 소설 속에서 주인공인 바리가 접하는 “바리데기”설화 자체도 할머니의 입을 통해 전해져 나오는 옛날이야기였다.
“바리데기” 설화의 내용 자체는 일종의 영웅 서사시의 형식을 띤다.
버려졌던 왕가의 핏줄(^^;;)인 공주가 부모님과 세상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지옥을 가로질러 멀리 西天까지 가서 생명의 물을 가져와서 사람들을 구한다...라는 마치 오딧세이나 북유럽 신화에서도 볼수 있는 설정이 들어맞고 있다.
소설의 시작부터 끝까지 관통하는 이 내용을 이해하고 간다면 그녀가 겪게 되는 고난, 멀리 서양의 끝인 영국까지 가게되는 여정...이런 것들이 “바리데기”설화와 매우 긴밀히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을 catch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황석영씨의 이전작인 “심청”의 같은 연장선상에서도 보자면 요즘 황석영씨의 창작 행보가 한국 전통 설화에 기반을 두고 재해석하는 작업을 하고 있는 것 같다는 추측이 든다.
2. “북한”에 대한 내용.
사실 황석영씨는 친북...성향은 아니지만...물론 내가 판단할 정도는 아니지만 북한에 관한 활동을 해왔었고, 실제 북한을 다녀와서 작품을 쓰기도 했었다.
이 소설에서 주인공은 북한의 어느 가정집에서 7번째 딸로 태어난다.
“바리데기”설화가 “7공주”설화라고도 불리우듯이 7번째 딸은 버리다시피 하는 존재이다.
어느 정도 안정적인 생활을 하던 사회주의 체제하의 그녀 가족은 어느날부터 찾아온 기근과 김일성의 사망...등으로 혼돈에 빠진 북한의 모습을 눈에 그려 보여준다.
그리고 사람들이 죽어 나가고, 결국 가족은 뿔뿔이 흩어져 죽거나 중국으로 밀입국을 하게 된다.
여기서 단순히 황석영씨의 친북성향이 소설에 북한이라는 배경을 가지게 했다고 성급하게 판단할 수도 있으나 나의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그런 느낌이 20%이고, 사실 다음에 말하게 될 3번째 코멘터리와 관련된 사실이 80%라는 근거를 가진다고 생각한다.
3. “이주, 고난, 화해”로 이어지는 흐름.
소설의 후반기에 주인공 바리가 정착하게 되는 “영국 런던”은 “바리데기 설화에서 말하는 西天, 즉 서쪽하늘 끝이라고 여겨도 상관 없지만 사실은 다양하고 굴곡많은 여러 이주민들이 만나는 하나의 ”인종 pool"이라고 판단된다.
여기서 바리가 만나는 사람중에 original 영국 백인은 에밀리 부인 단 한명이다.
그 이외에는 모두 파키스탄, 아프리카, 방글라데시, 인도네시아, 중국 등에서 불법 밀입국 혹은 이주한 외지인들이다.
(심지어 바리가 결혼하게 되는 남성은 파키스탄 출신의 무슬림이다.)
따라서 위의 2번에서 언급한 “북한” 관련 내용이 굳이 작가의 친북 성향 때문만은 아니라 소설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의식을 효과적으로 나타내기 위해 작가와 주요 독자층이 살고있는 한국이라는 사회에서 “이주” 와 “난민”의 이미지를 현실화 할 수 있는 소재로써 북한 난민들을 끌어들였을 것이라는 것이 타당한 결론이 아닐까 싶다.
어쨌든 그들과 함께 살면서 벌어지는 여러 가지 일들...
밀입국 단속, 마약에 빠진 친구, 911테러, 이슬람 내전, 런던 지하철 버스 폭탄테러...
이런 일들이 바리와 주위 인물들을 둘러싸고 일어나며 여기에 덧붙여서 주인공인 바리 개인의 시련이 더욱 가혹하게 몰아친다.
이 역시 “바리데기” 설화에서 이어지는데, 설화 상에서 바리는 많은 사람들의 고난과 원망을 짊어지고 서천에 가서 해답을 구하게 되고, 생명수를 얻기 위해 3년간 애를 낳아주고 갖은 고생을 하게 된다고 설정되어 있다.
바리는 18살에 런던에 정착하여 21살이 되는 3년간의 시간동안 위의 설화 내용에 상응하는 고난들을 겪게 되고, 마지막으로 그 고뇌에서 벗어나 새로운 삶을 살게 된다.
4. 주인공의 영적 능력.
설정상 주인공은 어릴 때부터 영적 능력이 탁월하여 남들이 보지 못하는 영혼들을 볼 수 있고, 그런 유령들...게다가 동물들과도 대화를 나눌 수 있고, 주변 사람들의 과거와 미래를 알수 있고, 꿈을 통해 현실로부터의 도피를 하기도 하고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기도 한다.
이러한 영적 능력은 “바리데기” 설화를 그녀의 꿈속...혹은 심상적인 표현으로 나타내어서 현재시제의 소설 내용과 이어서 결론을 향해 나아가게 하는 중요한 소재가 된다.
단순한 흥밋거리 잠재 능력이 아니라 소설의 궁극적인 목적인 “고난과 화해”라는 명제를 풀어 내는 데에 현실에선 불가능한 결론을 이끌어 내는 중대한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바리의 영적 능력이 소설의 주제의식과 맞물려 나타날 때 등장하는 “할머니”와 강아지인 “칠성이”는 현실에서나 꿈속에서 바리의 생각과 행동이 작가의 전지적 주관에 맞게 나아갈 수 있도록 인도하는 일종의 나침반 같은 역할로서 (설화-꿈-정신세계-현실세계)를 잇는 매개체 역할을 한다.
또 어찌 하다보니 소설을 너무 분석적으로 읽은 것 같은데, 그만큼 재미있었다는 뜻이다.
그리고 황석영씨의 수려하고 어색함 없는 서술과 묘사는 소설을 읽는 또다른 재미였다.
예를 들면 풍경을 묘사하는데
“봄이면 마을 빈터의 마른 잡초들 사이에서 한무리의 진달래들이 이 묶음 저 묶음 다투어 피어나 아침저녁 노을에 더욱 붉게 타오르고 드높은 동편 하늘가에 아직도 눈을 하얗게 얹은 관모산이 아랫도리를 안개 속에 감추고 떠 있었다...”라고 미려하게 표현하는 가 하면,
“팔다리가 쪼그라들기 시작하여 양 콧구멍에서 떼어낸 코딱지를 뭉친 것처럼 콩알보다도 작게 말랑말랑 해졌다가 팍 하고 터져버린다...”라고 독창적이고 유머러스한 표현을 보여주어 소설 속에 빠져 있다가도 깜짝깜짝 감탄을 하게 한다.
소설도 재미있었고, 황석영씨에 대해서도 새롭게 볼 수 있는 기회여서 너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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