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2. 26. 1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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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손에 들게 된 이유는 얼마 전에 극장에서 "최동훈" 감독의 영화 "전우치"를 보았기 때문이라는 알량한 이유~.
사실 "홍길동전, 전우치전" 등의 이야기는 허구를 주축으로 하고 있지만 그 당시의 시대상과 현존 인물이었다는 근거를 바탕으로 매우 흥미를 동하기 마련이나 이러저러한 버전으로 나도는 와중에도 너무 식상한 내용들이라 굳이 애써 찾아보지는 않았었다.
그래서 이왕 관심이 생긴 김에 찾아보게 되었는데, 대게의 판본이 아가들이나 보는 전래동화로나 남아있지 제대로 된 내용을 찾아보기는 힘들었다.
그중에서 가장 최근에 나온 책 중에 장편으로 이루어진 것이 "권오단"씨의 작품이라서 全6권의 장편 소설 "전우치전"을 시작하였다.
근간이 되는 조선시대 소설에는 중종임금때 실존했던 전우치라는 사람에 대한 내용인데, 원본에서는 궁핍한 민초들을 위해 임금에게 사기를 쳐서 황금 대들보를 만들게 했다가 빼앗아서 돕는 의적의 이미지 였다.
그러다가 도술만 믿고 너무 일을 많이 저지르니까 "화담 서경덕"에게 잡혀서 제자가 되어 산으로 들어갔다는 내용인데, 이는 영화상에 바탕이 되는 내용과 비슷하다.
하지만 소설 내용은 그동안 알던 전래동화와는 많이 다르다.
일단 소설 장르를 가르자면 (역사 소설 + 무협소설) 이라고 할만 하다.
패주 연산군 시절부터 시작되는 소설은 "무오사화"를 거치면서 조선의 무참한 상황을 보여주고, 그 와중에 사라지거나 은거하는 의인, 이인들을 등장시킨다.
"김종직,정도전,서경덕" 등의 실존 선비부터 시작해서, "허균"의 유명한 소설 주인공인 "홍길동"의 활빈당이 등장하고, "전우치"의 아버지인 "전유선"이 언급된다.
이후 20년이 흐른 후에 성인이 된 "전우치"가 자신의 출생의 비밀을 풀기 위해 조선 8도를 유랑하면서 겪는 일이 소설의 90%를 차지하게 된다.
그 여행 상에서 조선 성리학의 거두였던 청년 "퇴계 이황"을 만나 유학에 대해 논하고, "유의태"를 만나 의학에 대해 경쟁하며, 강호의 여러 고수들을 만나 무술을 배우게 되는데...
이때 이 소설의 중요한 특징중의 하나인 "작가의 해박한 한국 지식"이 두드러 지는데, "유학"에 대해 말할 때는 "대학,중용,논어,맹자"의 사서 뿐만 아니라 예기, 춘추, 시경, 주역...등 다양한 학식을 바탕으로 진지한 인용과 논의가 이어진다.
"의학" 또한 마찬가지여서, 어렸을 때부터 의학을 배운 전우치가 팔도를 유랑하는 도중 여러 사람을 살리고 "유의태"를 만나 "구침자희"를 하는 배경에는 본초경, 침구갑을경, 황제내경...등의 한의학 원전이 실제 인용되며, 치료법이나 무술 시전 상에서 실제 혈자리(혈도)나 탕제 이름이 등장하여 신빙성을 확보한다.
게다가 전체적인 소설의 색깔이 "무협소설"의 색채를 띠게 되는데, "내공이나 경신술" 등 여타의 무협소설에서 등장하는 공통분모 이외에도 "본국검법, 신라검법" 등의 검술과 "이성계"의 "태조검법과 각궁", 한국 고유의 무술인 "북수박 남택견", 봉정사 등의 사찰을 중심으로한 승가의 무술...
이러한 한국(조선)만의 독특한 무가의 계통을 자세하게 밝히고 인용하고 있어서 그간의 중국 중심의 무협소설과는 또 다른 재미를 준다.
또한 허무맹랑한 "무협소설"의 바탕을 벗어나고자 사실을 바탕으로 한 "역사소설"의 면모를 강하게 보여주는데, 갑자사화, 무오사화 등의 정변이나 연산군,중종 임금 시절 조선의 실상을 자세히 묘사하고 있고, 전우치가 팔도를 유람하면서 각 지방의 명소를 알려주고, 일본까지 건너가서 대마도를 유랑하고 일본의 조선 침략 음모를 분쇄하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재미를 잃지 않는 방편을 사용하는데, 사람 이름을 소설 제목으로 사용하는 걸 생각하면 좀 유치하지만 "영웅호걸"의 이미지에 맞게 "전우치"가 조선8도를 유랑하는 동안 양반집 규수, 진주의 명기(기생) 자매, 일본 대마도주의 딸...등등 5명의 미녀들에 둘러싸여 애간장을 태우기도 한다.
결국 따지고 보면 참으로 다양한 분야를 망라하면서 조선시대를 그려내는 무협활극 이라고 볼 수 있는데, 그중에서 중심을 잃지 않는 큰 줄기를 잡고자 "조선 침략의 위기" 라는 설정을 가미한다.
"풍류문" 이라는 조선 고유의 문파는 원래 백두산, 지리산 등 5군데 명산에 숨어서 조선 무학의 전통을 지켜오던 문파인데, 그 출중한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 연산군의 폭정을 거치면서 스스로 왕이 되고자 하여 일본, 몽고 등의 세력을 끌어들여 조선 왕조를 폐위 시키고 중원의 패자가 되고자 획책한다.
애초에 출생의 비밀을 밝히고자 8도 유랑에 나섰던 "전우치"는 본의아니게 계속해서 "풍류문"의 계획에 연루가 되고, 여행중에 만난 여러 의인들과 힘을 합쳐 조선의 위기를 막게 된다는 것이 6권의 방대한 조선 8도 유랑을 관통하는 줄거리가 된다.
1973년생인 젊은 작가의 의욕만큼이나 방대하고 깊은 내용의 이 소설은 "조선" 이라는 나라의 정치, 사회, 문화의 일면 뿐만 아니라 학문, 의술, 무학 등의 잡학에 이르기까지 전체적으로 아우르고 있으며 빼어난 경관에 대한 여행기까지 겸비하고 있으니 그 가치가 실로 대단하다고 할 수 있다.
"도사 전우치" 라는 속세의 전래동화와는 내용이 많이 상이하지만, 그래도 엄청 재미있게 읽었으니 기회가 되신다면 꼭 읽어 보시길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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