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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학연수 프로그램 중에 가장 중요한 일정이 3박4일간의 산동성 여행이었다.

 

이유는 대학 전공 특성상 꼭 가서 찾아보아야만 하는 공자님의 흔적 때문이다.

 

산동성 곡부(曲阜,취푸) 는 북경에서 550Km정도 떨어져 있는 곳인데, 이곳에 공자님의 묘와 사당, 그의 일족들이 살던 "공부" 라는 마을이 남아있다.

 

너무 먼 곳이라 당일치기는 어렵고, 2002년 당시에는 고속철도가 없어서 일반기차로 하루 종일 가야 했기 때문에, 우리는 아예 밤에 출발하는 침대칸 기차를 타고 가서 다음날 도착하였다.

(기차칸 여행은 앞에 포스팅 했다)

 

가장 먼저 공자님의 사당이 있는 "공묘" 에 갔는데, 이 곡부라는 도시 자체가 1994년인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선정되어서 공자님 하나로 먹고 사는 도시가 되었다.

 

 

 

공묘 앞에서 단체사진 한장.

 

우리 한의대 사람들과 중국어과 학생들이 함께 있다.

 

 

 

사당까지 가는 길에 수많은 석문이 서 있다.

 

모두 사연이 있을텐데, 무슨 왕이 와서 지은 문...이런 식이다.

 

 

진짜 공묘의 입구인 "성시문(聖時門)" 이다.

 

 

공묘의 중심인 "대성전(大成殿)" 앞에서 다시 단체사진을 찍었다.

 

공자님 께서는 B.C551년 ~ B.C479년 까지 살았던 노나라 사람인데, 한나라부터 공자님을 기리는 제사를 지내기 시작해서 2000년 넘게 황제들이 인사를 드리던 곳이다.

 

현재 대성전은 1724년 옹정제가 재건한 건물이라고 한다.

 

 

고풍스런 건물이다.

 

 

사당 내부의 모습이다.

 

다시한번 말하지만 2002년 당시에는 핸드폰 카메라는 커녕 흑백 화면이었고, 디지털 카메라도 중국에선 볼수가 없을 정도로 대중화되지 않아서 문화재 실내에서 사진 찍는 것도 제지당하는 일이 없었다.

 

 

 

곳곳에 많은 현판이 걸려 있는데, 이것들은 공묘를 방문한 역대의 황제들이 직접 쓰거나 하사한 것들 이다.

 

 

건물 밖에 있던 비석.

 

 

 

9마리의 용이 조각된 기둥이다.

 

앞서 자금성 포스팅에서 말했지만, 중국에서 용 문양을 쓰는 것은 엄격히 금지가 되었었는데, 더군다나 9마리의 용은 황제를 상징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사용하면 대역죄에 해당한다.

 

그러나 공자님은 황제가 고개를 숙이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향후에 9룡이 허락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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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reamSE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