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2. 6. 2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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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3월 31일 작성된 글입니다).
봄비가 내린다.
따뜻한 날씨에 가벼운 옷차림은 느닷없이 내리는 빗방울에 서늘한 목덜미를 쓰다듬게 하는 이질감을 선사한다.
예전부터 보려고 벼르고 벼르던...
Well made라는 추세에 멋지게 편승하여 승승장구한 “Seven Days"를 보았다.
그래, 走馬加鞭이라는 말이 있다.
달리는 말에 채찍질을 가한다.
한국영화계가 위기다 뭐다 하지만, 그 험난한 숲을 헤쳐 나가려면 정공법 밖에 없다.
좋은 극본, 좋은 감독, 좋은 배우.
이 삼박자가 잘 맞아 떨어지면 좋은 영화가 나온다.
당연한거 아닌가?
거기다가 요즘 한국의 영화 관객들은 수준높은 다양한 소스들로 인하여 눈이 높아지긴 했지만 그만큼의 학습효과로 인해 좋은 영화를 알아보는 눈도 좋아졌다.
예를 들면 이렇다.
나는 만화책 광이고 영화광이다.
하지만 스캔본 만화책이나 대여점 만화책을 보긴 하지만 나의 기준에서 인정하는 만화는 모두 사기 때문에 현재 1500권이 넘는 만화를 소장하고 있다.
영화 또한 어둠의 경로를 통해 많은 작품을 보지만 “한국영화”만큼은 왠만하면 개봉관을 찾아서 극장에서 보려고 하고, 내가 좋아하는 감독과 배우가 나오는 작품은 DVD를 구입한다.
이것이 요즈음의 한국 관객이다.
한국이 부가판권 시장이 죽었다고 하지만, 그것은 Cine21이나 Moveiweek등의 영화 저널에서 밝혔듯이 소비자의 문제도 있지만, 더 큰 문제는 영화계의 문제가 크기 때문에 일종의 문화산업인 영화계에서 책임을 관객 개개인에게 물을 수는 없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억울하면 우는 소리 하지 말고 좋은 영화 만들란 말이다.
내가 사줄게!!!
영화 8000원내고 봐주고, 20000원내고 DVD도 사서 너희들 살려 주겠다는데 너네가 쓰레기같은 것만 만드니까 그동안 내 지갑이 자린고비가 된거 아니야?
어쨌든 사설이 길었지만, 이런 문제에 해답으로 제시되는 것은 앞서 말한 Wellmade의 트렌드이다.
“살인의 추억”때도 그랬지만 잘 만들어진 작품은 평단, 관객, 흥행...여러 부분에서 인정을 받을 수 밖에 없다.
Seven days 또한 뭐 특출나게 뛰어난 점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기본적으로 잘 해야만 하는 부분에 공을 들여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좋은 결과가 나왔다고 생각한다.
1. 열심히 하는 감독.
솔직히 “원신연”감독이나 “김윤진”이 한국 최고는 아니다.
특히 나는 개인적으로 “구타유발자” 때부터 극찬을 하며 좋아하는 감독이지만 흥행에 실패했기 때문에 “원신연”감독은 그리 열광받는 감독은 아니다.
물론 “빵과 우유”가 국제적으로 인정을 받고, “구타유발자”가 영진위 시나리오 대상을 받아서 나름 지위가 있지만 멀티플렉스와 다운로드의 행패에 시달리는 한국 영화계에서 그리 성대한 환영을 받았던 감독은 아니라는 말이다.
하지만 그의 실력은 언론의 평가나 관객의 화답과 무관하게 일정하다.
몇몇 감독들이 불경기의 영화판에서 입봉작을 잡고자 여러 문제와 타협하여 입봉의 압박과 흥행의 무서움에 무릎을 꿇을 때 자신의 주관을 믿고 펼쳐가는 잔다르크적 무대포 정신은 언젠가 인정받기 마련이다.
이번 영화에서 그는 이전의 “구타유발자”에서 보여주었던 유니크함을 넘어서서 장족의 발전을 보여주었기 때문에 그를 기다려온 관객에게 무한의 기쁨을 안겨 주었다.
다양한 각도와 앵글은 2~3대의 카메라를 돌려서 얻었다고 하고, 빠르고 긴장감 넘치는 장면과 편집은 씬당 2초라는 엄청난 프레임을 과감하게 낭비해가며 만든 결과이다.
그리고 콘트라스트 높은 화면과 적그적으로 핸드핼드 카메라를 살려서 보여주는 장면들은 이 영화가 액션과 추격이 아주 조금 등장하는 소극적인 범죄스릴러 영화라는 것을 잊을 정도로 긴박하게 긴장감을 몰아가서 2시간이 넘는 러닝타임을 지겨움 없이 순식간에 지나가게 한다.
현실과 무한 타협하지 않고 무쏘처럼 나아간 원신연 감독과 멍청한 언론은 이 영화의 엄청난 흥행에 놀랐겠지만 “똑똑해지는 관객”들의 말석에나마 엉덩이를 걸치고 있던 나로서는 당연한 결과라고 칭찬해 주고 싶다.
2. 훌륭한 오프닝, 엔딩 시퀀스.
그리고 오프닝에서 제작과정의 어려움을 보여주듯이 각종 신용협동조합들의 이름이 올라가는 동안 씁쓸함이 눈물로 눈 앞을 가렸지만...
살인사건의 범인 몽타주가 만들어지는 인쇄 기계와 그림들로 이루어진 오프닝 시퀀스는 간만에 한국 영화를 보면서 소름이 돋게 만들어 주었다.
“박찬욱”과 “최동훈” 감독 이후에 이렇게 시작부터 눈을 사로잡는 한국 감독은 없었다.
그리고 엔딩 시퀀스에서도 타자기에 쳐 지듯이 보여지는 크레딧은 정말 훌륭했다.
물론 고리타분하게 여전히 까만바탕에 하얀 글씨로 감독, 배우, 스탭의 이름을 올리는 영화들중에도 훌륭한 작품은 많지만, 감독의 능력은 연출만이 아니라 영화 전반에서 그 감각을 느끼게 해 주기 때문에 21세기 현재에 있어서 이런 능력은 정말 높게 평가 받아야 한다.
3. 배우들의 연기.
그리고 배우들의 연기도 출중했다.
주연인 “김윤진”은 Lost를 촬영하는 중에 이 영화의 시나리오를 보고 출연을 결정하여 Lost의 season off 기간중에 잠깐 한국에 와서 빡세게 촬영을 했다고 한다.
솔직히 김윤진은 “쉬리”의 성공 후에 미국으로 떠났기 때문에 한국에서 그리 큰 티켓 파워를 가진 배우는 아니지만, 미국에서 아주 훌륭히 자리를 잡았기 때문에 어찌보면 “박찬호”나 “박지성”급의 국가대표라고 볼 수 있다.
“박찬호”가 겨울에 한국에 오듯이, “박지성”이 EPL이 끝나면 쉬듯이...
Lost의 간격에 조용히 쉴수도 있지만, “김윤진”은 한국에 와서 그 짧은 틈에 시나리오를 고르고 최고의 감독을 만나 멋진 한편의 작품을 남기고 다시 떠났다.
현재 배우로서의 “김윤진”은 잘 벼려진 한자루의 칼처럼 세상을 갈라 나아가고 있다.
그녀의 안목과 선택은 틀릴 리가 없고, 당분간은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살아가도 세상이 그녀를 인정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의 배우인 “박희순”씨는 정말 최고다.
연극판에서 연기력을 갈고 닦은 그는 여러 언론에서 언급했듯이 “설경구, 송강호”를 잇는 대배우가 될 가능성이 가장 높은 배우이다.
“Love talk"에서의 모습과, 얼마전 드라마인 ”얼렁뚱땅 흥신소“에서 본 그의 모습은 자신의 색깔을 지키면서 다양한 색깔로 팔렛트에 물드는 유화물감과 같은 모습을 보여 주었다.
그의 선 굵은 얼굴과 허스키하면서 깊은 울림이 있는 목소리는 그에게 깊고 넓은 Variation을 주었고, 젊음과 연기력은 그 다양한 역할에 완벽히 물들어 갈 수 있는 바탕이 되었다.
아직 그 능력만큼의 평가를 받고 있지는 못하지만 언젠가는 최고의 평가를 받는 배우가 될 것이라고 믿는다.
그리고 “조니 뎁”이 “팀버튼”의 페르소나 이듯이, 그와 잘 맞는 감독과 작품을 만나 오랜 시간 기억에 남는 배우가 되었으면 좋겠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최고의 연기를 보여준 것은 다름 아닌 “김미숙”과 “오광록”이다.
“김미숙”은 등장하는 시간은 짧지만 영화의 전개와 복선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매우 중요한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녀는 등장하는 장면마다 원숙미를 뽐내며 절제와 폭발을 넘나드는 멋진 연기를 보여주어 관객을 농락했고, 결국 영화 종반에 이르러 절세의 눈빛을 보여주는 명연기를 선보여 주었다.
“김윤진”, “박희순” 같은 신진 명연기자들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는 와중에 떡~ 하니 등장하여 무게중심을 잡으며 “이런게 바로 연기야!!!”라는 말을 넌지시 던져주는 역할이랄까?
그리고 짧지만 굵게 등장하는 “오광록”씨는 독특한 개성으로 본인을 어필한다.
사실 그간 “오광록”은 나에게 “박찬욱”의 페르소나였다.
그는 “복수는 나의 것, 올드보이, 친절한 금자씨”등 박찬욱의 복수3연작에 모두 출연하여 명연기를 보여준 조연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요즘 다양한 영화와 드라마에서 본인의 연기력을 뽐내고 있다.
이것은 웃기는 말투와 성량으로 인한 우연이 아니다.
4. 훌륭한 시나리오.
마지막으로 “Well made"의 3요소중의 하나인 시나리오를 보겠다.
이 영화의 리메이크 판권은 이미 미국 헐리웃에 팔렸다.
리메이크 판권은 사실 영화의 흥행이나 연출력 보다도 각본 스스로의 힘에 의해 판단된다고 본다면, 이 영화의 시나리오 또한 매우 훌륭한 가치를 가진다고 볼 수 있다.
사실 “유괴”에 대한 소재는 헐리웃에서도 여러번 사용된 진부한 소재이지만 대부분 테러리즘에 대한 역발상, 부모의 분노, 소영웅주의로 점철되는 단순한 라인을 보여주었던 것이 사실이다.
동양의 섬세하고 다양하다 못해 자질구레한 여러 가지가 얽히고 섥혀서 다양한 시점으로 보여지는 영화는 별로 없었기 때문에 이 영화의 시나리오가 탐이 났을 수도 있다.
(물론 요즘 헐리웃 영화사들은 한국, 일본등 아시아 국가의 영화들에 대해서 꼭 영화화 할 것도 아니면서 판권부터 사 놓는 행태를 자주 보이긴 하지만...)
하지만 개인적으로 시나리오상의 소재의 독특함과 전개의 긴박성으로 볼 때 얼마 전에 한국에서 개봉했던 “잔혹한 출근”이 더 재미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감독의 연출과 배우의 연기 때문에 좋은 결과를 얻지는 못했지만 소재 자체로 보았을 때는 더 재미있었다고 판단된다.
뭐, 판단은 결과론적으로 볼 수 밖에 없으니까 이제와서 별로 할 말은 없다.
어쨌든 따뜻해지는 날씨에 느슨해지는 옷깃을 다시 여미게 해주고...
느닷없이 내린 봄비가 서늘함을 선사하여 다시 보일러를 켜게 해 주는 밤에...
혼자 맥주 5캔을 마시며 흡족한 기분에 새벽을 맞게 해주는 좋은 영화였다.
이미 새벽4시...
오랜만에 예전 대학때처럼 영화4편 연속 관람으로 밤을 지새워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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