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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4월 9일에 작성된 글입니다).

이 영화 정말 보고 싶었다.

평소 영화는 많이 보지만, 워낙 편협하고 주관적인 눈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고상한 시각을 위하여 해마다 아카데미 등의 수상작들은 챙겨보는 편이다.

그 중에서도 마음에 드는 몇 편이 있었는데, 대한민국이라는 멀티플렉스에 먹혀버린 문화후진국에서는 진짜 돈 주고 극장가서 영화보고 싶어도 절대 불가능 하다는 사실만을 뼈저리게 느꼈다.

작품상등 4개부문을 수상한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는 전국 11개관에서 개봉했다.
서울을 제외하곤 지방에선 아예 볼 수 없다.
내가 보고 싶었던 “주노” 역시 제작비의 수백배가 넘는 수익을 내며 미국 박스오피스에선 10주 넘게 선전하고 있고, 여주인공 “엘런 페이지”가 여우주연상 후보에 오른데다가 각본상 수상까지 했는데...한국에선 전국 50개관 개봉이 전부이다.
(게다가 빌어먹을 멀티플렉스에선 다른 영화 사이에 끼워넣기 해서 하루에 3회 돌리지도 않는다.)

그래, 닥치고 내가 알아서 보는 수 밖에...

어쨌든 정말 보고 싶었던 영화고, 결국 보았고, 결과는 대만족이다.
(이번 글은 번호 매기면서 쓰고 싶지 않아서 그냥 내가 즐겁게 본 느낌 대로 평을 쓰겠다.)

영화는 시작부터 내 눈을 사로잡았다.
나는 별로 뛰어난 예술감각을 가지고 있지도 않은 주제에 뭔가 색다르고 멋있는 opening을 보면 감독의 감각에 대해 극찬을 쏟아내며 영화 전체에 대해 호의적이 된다.

이번 영화의 오프닝은 주인공이 실사 필름에서 animation化 되어 손으로 쓰고 색연필로 색칠한 듯한 credit과 함께 걸어나온다.

그리고 발랄하고 귀여운 입으로 조잘대는 “앨런 페이지”가 1갤런이 넘는 거대한 오렌지쥬스병을 들고 다니며 마셔댈 때부터 나는 그녀와, 그리고 이 영화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이 영화는 “제니주노”처럼 10대 임신을 미화하지 않는다.
그리고 “4개월,3주...그리고 2일”처럼 적나라하게 보여주지도 않는다.
“노블리”처럼 임신을 소재로 드라마를 강요하지도 않는다.

딱 현실적으로(미국에서), Cool하게 영화를 보여준다.

영화의 각본은 “Diablo"라는 웃기는 이름을 가진 여자가 썼다는데, 이걸로 아카데미 각본상을 수상했다.
근데 그녀는 전직 Strip Dancer 출신이며, 그녀의 삶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썼다고 한다.
그래, 약간의 드라마가 가미되긴 했지만 이정도가 딱 좋다.

철없는 16세가 등장하지만 그녀가 속한 사회와 주변 인물들이 간접적으로 말하는 주제의식이 너무 마음에 든다.

10대 임신은 “죽일년”이 되는 것이 아니라, 그냥 단순한 실수일 뿐이다.
(뭐, 기독교도나 생명존중주의자들이 보면 뭐라 할지는 모르겠지만...)

영화에서 긴장해서 안절부절하는 딸 앞에 진지하게 앉아 “뭐 나쁜 짓 했어?”라고 묻는 부모님.
그들은 “음주운전, 뺑소니, 마약...”등의 예를 들며 딸의 “나쁜 짓”을 추궁하지만 “임신”이라는 사실에 놀라면서도 “안도”한다.
그리고 그녀의 선택을 존중하고 지지해 준다.

“4개월...”처럼 극단적인 낙태도 아니고...
“제니,주노”처럼 사랑타령이나 하고 있다가 무작정 애만 싸질러 놓는 것도 아니고...

생명 때문에 낙태는 못 하겠고, 남자친구와는 확신이 없고, 나이가 어리니 키울 수도 없고...
결국 영화는 얍삽하게도 가장 현실적으로 안전하게 애를 낳아 완벽한 가정에 입양을 보내는 방법을 제시한다.

어쨌든 작가의 세상에 대한 어투와, 영화상에서 등장인물들이 내 뱉는 대사중에는 너무 멋진 말들이 많아서 영화를 보는 내내 “이걸 종이에 적어, 말어?” 라고 망설이다가...결국 “에이 영화 끊기니까 그냥 보자~~~”라는 결론을 내리게 했다.

아래부터는 그냥 인상깊게 본 Scene과 손벽 치며 들었던 대사들을 나열하겠다.

<Scene>
-오프닝의 애니메이션과 1갤런짜리 오렌지쥬스통.
-누워서 만삭의 배 위로 장난감 자동차를 굴리는 주인공.
-학교 식당에서 엄청난 양의 햄버거, 감자튀김, 슬러시를 먹으며 친구와 사랑에 대해 히스테릭하게 이야기하는 장면.
-한밤중, 어느 카페 앞 주차장에서 주차된 차 본넷 위에 누워있다가 주차위반 딱지 위에 편지를 쓰는 장면(양부모에게 줄).
-운동장에서 남자친구와 Kiss하며 친구에게 Fuck you~를 날려주는 장면.
-출산직후 침대에 남친과 나란히 누웠을 때 카메라에 클로즈업 해 잡히는 남친의 흙 뭍은 나이키 운동화와 주인공의 무지개색 양말...
-그리고 Last scene에서 나란히 앉아 기타치며 노래 부르는데...카메라가 zoom out 되어지면서 둘이 Kiss할 때...

<대사>
-남친: 난 많이 참고 있어. 화 내야할 사람은 나라고. 너를 무시할 수도 있어. 넌 심심해서 나랑 Sex한게 아니야. 그날 케이블 TV에선 “블레어 윗치 프로젝트” 영화를 했었고, 넌 못 본 거라면서 같이 보기로 해 놓고선 네가 Sex가 하고 싶다고 한 거잖아.
-주인공: 넌 최소한 스웨터 밑에 흔적을 달고 다니진 않잖아(만삭의 배를 의미)...

-양부모(남): 난 아직 아버지가 될 준비가 안 된 것 같아.
-주인공: 당신은 이미 나이를 많이 쳐먹었잖아!

-주인공: 다른 곳에 가보기 전엔 집이 이렇게 좋은 곳인지 몰랐어.

-아버지: 네가 기분이 좋을 때건, 나쁠 때건 사랑해주는 사람을 찾아라. 그 사람은 네 엉덩이에서도 빛이 난다고 해줄 거야.


뭐, 대충 이정도다.
나열해 놓고 보니까 감흥이 덜 한데, 영화를 직접 봐야 그 느낌을 알 수 있을 것 같다.

어쨌든 이 영화는 단순한 10대 임신을 소재로 한 영화가 되기에는 다른 많은 것을 간접적으로 알려주려고 한다.

주인공의 부모에 대한 얘기가 영화 초반에 보여지면서 이혼가정에서 아버지와 새엄마와 살지만 밝고 사랑스러운 모습을 보여주고...

겉으로 보기에는 부자이고 완벽한 부부처럼 보이지만 서로에 대한 이해와 사랑이 부족하여 입양을 앞두고 이혼하는 젊은 부부...

그리고 아버지가 말해주는 “내가 자랑스럽게 살진 않지만 불행하진 않다. 너도 너를 있는 그래도 사랑해 주는 사람을 찾아라. 지금 옆에 있지 않느냐?” 라는 따뜻한 말.

그래, 완벽한 사람도 없고, 성공적인 가정이란 것도 없다.
그냥 다들 행복한 방향을 찾아 살아가는 것 뿐이다.

어쨌든, 여운이 많이 남는 영화이다.


예전에 “천하장사 마돈나”라는 명작 동성애 영화가 개봉했을 때 어느 평론가가 이런 말을 했다.
“한국 땅에서 이런 소재를 편히 말 할 수 있는 시기가 오고, 그걸 이렇게 멋지게 풀어낼 수 있는 영화가 나오다니...”

그래, 이런 소재를 이렇게 멋지게 그려내다니..
Posted by DreamSE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