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묘,공부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공자님과 10만명의 후손들의 묘가 있는 "공림(孔林)" 이 있다.
엄청난 넓이에 놀라게 되는데, 거대한 숲 안에 수많은 무덤이 자리잡고 있다.
"지성림(至聖林)" 이라고도 하는데, 역시 1994년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선정 되었다.
공림의 입구이다.
공림의 이정표.
워낙에 넓기 때문에 지도를 손에 들고 이정표를 보고 다니지 않으면 길을 찾기 어렵다.
제일 먼저 공자님의 묘 부터 찾아서 왔다.
가장 크고 잘 되어있으니 찾기 쉽다.
그래도 대학,논어를 배운 사람으로서 공자님께 예를 올리지 않을수 없다.
잠깐 묵념과 함께 길게 읍을 하였다.
공자님의 묘 옆에 서있는 작은 창고 같은 집인데 공자님의 제자 "자공(子貢)" 이 공자님 사후에 6년을 이 초옥에서 혼자 머물면서 상을 치르고 수양을 하였다는 전설이 있는 곳이다.
2000년 전의 집이 남아있을 리가 없으니 저건 가짜로 만들어 놓은 곳이겠지만, 저 전설은 사실이다.
공자님은 3000명이 넘는 제자가 있었는데, 그중에 72명만이 그 학문을 제대로 이어받아 세상에 나아가 활약하고 이름을 남겼는데, 자공 역시 그렇다.
공자님 말씀에 "덕행(德行)을 따진다면 안휘(顔回)가 으뜸이고, 정사(政事)를 논한다면 계로(季路)가 수위이고, 문학(文學)을 말한다면 자유(子游)를 최고로 친다. 그렇지만 언변을 가지고 평가한다면 자공(子貢)을 따를 자는 아무도 없다." 고 하였다.
활달하고 언변이 뛰어났던 그는 많은 사람들과 논쟁하길 즐기고 5개의 나라에서 훌륭히 활약 하기도 하였지만, 이재에 밝아서 그 돈으로 공자님을 뒷받침 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공자님 사후에 대부분이 3년상을 마치고 떠날때, 직계가족도 아닌 그만이 남아서 6년간이나 묘를 지켰으니 대단한 사람임과 동시에, 그런 존경을 받은 공자님도 대단하다.
커다란 숲속에 저렇게 누군지 모를 공자님의 후손 10만명의 묘가 있다.
공자님의 손자인 "공급(孔伋)" 의 묘인데, 크기와 위치가 좋은 까닭은 그가 공자님의 학문을 이어받아 자신이 "중용(中庸)" 을 저술 하였다.
흔히 "논어, 맹자, 대학, 중용" 과 "시경, 서경, 역경" 을 통틀어 "사서삼경" 이라고 한다.
공림을 가로지르는 하천이 있는데, 이는 공림의 풍수학적 맥을 끊기 위해 진시황이 파놓은 고랑이라고 한다.
그 다리를 건너기 위한 다리인 "주수교"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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