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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2월에 발매된 책이니 비교적 신간이라고 할 수 있는데, 나를 아는 사람들은 눈치 챘겠지만 절대 "나"라는 인간이 돈을 주고 샀을 리 없는 책이다.

사랑이나 인생에 대한 에세이나 지도서, 자기개발 책들은 너무 낯간지러운 것이 사실이고, 그런 것이 불편한 것이 대한민국에 사는 대다수의 성인 남성일 것이 분명하다.

사실 나랑 하루 종일 붙어있는 우리 병원 외래 간호사님이 읽던 책인데, "노희경"이라는 이름에 끌려 빌려달라고 졸랐다.

TV도 없던 내가 드라마를 챙겨 보았을 리 만무하다.

근데 주변의 성화에 못이겨 챙겨보게 된 "연애시대", "네 멋대로 해라" 등의 드라마와 함께 "거짓말"과 "그들이 사는 세상" 이라는 드라마의 이미지는 머리 속에 선연히 남아있었다.

대다수의 한국 드라마들이 가지고 있는 가벼움, 비상식성, 비현실적인 관계와 구도...등에 염증을 가지고 있던 나에게 노희경이 해준 말은 가슴에 와 닿았다.

"작가와 방송국은 시청자를 이렇게 평가한다. 초등학교 고학년에서 중학교1~2학년 수준, 코미디를 좋아하며 같은 얘기를 또 들려주어도 모르는 멍청이들, 깊이는 절대로 강요하면 안됨, 3분정도는 웃겨주고 3분은 대충 감동 비슷한 것을 보여줄것, 꿈을 쫒는 바보들이 많으므로 신데렐라, 캔디, 콩쥐 캐릭터는 필수..."

어쨌든 에세이라는 형식 답게 책은 "노희경"이라는 사람의 일, 사랑, 가족, 작품, 배우...에 대한 이야기들이 짧은 글 속에 나뉘어 적혀 있다.

매우 주관적인 시각으로 개인적인 일들과 사적인 감정들을 끄적거리는 것이 에세이라지만 일단 책으로 출간된 글 답게 독자들에게 공감을 불러 일으키는 부분도 당연히 존재한다.

나같은 목석이 머리속에 기억으로 남긴 책속의 글들을 몇줄 소개하면서 리뷰를 마칠까 한다.
(기억에 의지하다 보니 원문과 살짝 다를 수도 있으며, 그로 인해 저작권법에서 살짝 벗어날 수도 있는 안전성을 도모하였음을 밝힙니다).

-어른이 된다는 건 상처받는 입장에서 상처주는 입장으로 가는 것이다. 상처준다는 걸 알아챌 때 우린 비로소 어른이 된다.

-사랑은 쉽게 변질되는 방부제 안 넣은 빵과 같고, 계절처럼 반드시 퇴색하며, 늙은 노인의 하루처럼 지루했다.

-나를 버리니, 그가 오더라.

-청춘에게...나는 나의 가능성에 대해 잘 알지 못했었다.

-나는 찐한 사랑 한번에 여자가 될 줄 알았고, 실연은 절대로 안 당할 줄 알았다.

-순수가 사랑을 얼마나 방해하는지 모르는 사람만이 순수를 동경한다.

-저만 아프고, 저만 아프지...어린 남자는 그렇게 이기적이다.

-봄날은 간다...여자에게 少年은 버겁다.

-사랑만 하기엔 인생은 너무도 버겁다.
Posted by DreamS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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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월 20일 작성된 글입니다).

주의 1> 이 글 전체가 모두 심각한 스포일러임에 주의하시오.
주의 2> 이 글은 A4용지 글자크기 10으로 총16장에 달하는 매우 긴 글입니다.

 
벌써 몇 달의 시간을 “이영도”라는 작가에게 빠져 보냈다.

“드래곤라자”, “눈물을 마시는 새”, “피를 마시는 새”, “폴라리스 랩소디”...

이젠 그의 세밀한 묘사와 함께 보여주는 설명 없는 행동과 대사 위주의 서술도 친밀하게 느껴진다.

이번에 글을 쓸 “피를 마시는 새(이하 피마새)”는 얼마 전에 글을 쓴 “눈물을 마시는 새(눈마새)”의 후속편에 해당하는 소설로 양장본 8권의 방대한 분량이다.

사실 세계관이나 설정에 대한 부분은 이전의 “눈마새”의 독서감상평에서 A4용지 14장 분량의 논평을 했기 때문에, 이번에는 그다지 언급하지 않고 작가의 주제와 소설의 내용에 대한 부분에 관한 주관적 관념만을 서술하겠다.

(이전의 글에서 너무 정력을 소모한 나머지 긴 글을 쓰는데 지치기도 했고, 주변 사람들이 무슨 미친 짓이냐고 걱정을 해서 앞으로 글을 좀 짧게 써야겠다...고 마음먹었으나 이번 글도 쓰고 보니 어느덧 A4 16장... @.,@)

 

1. 제국의 성립과 유지.

“피마새”의 세계는 “눈마새”의 대호왕 사모페이”가 남부의 나가들을 정복한 후로 30~50년이 지난 후의 세상을 그리고 있다.

천년 전에 사라진 고대 아라짓 왕국 이후에 최초로 “제국”이라는 개념으로 여러 왕국, 부족들이 통합되었는데, 짧은 시간 안에 제국이라는 통치 개념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현실적으로 많은 무리수 가 있었을텐데, 작가는 “눈마새”에서 이미 노출되었던 여러 가지 독특한 소재들을 이용하여 그런 부분을 설명하고 있다.


1-1. 하늘치.

하늘을 날아다니는 거대한 물고기인 하늘치는 묘사된 그 크기가 거의 산맥이나 도시에 비견될 만 하다.

“눈마새”의 막바지에 드디어 하늘치의 등 위로 오르는 데 성공한 인간들은 그 등위에 도시를 건설하고 제국의 수도 로 삼는다.

이로 인해 행성 전체를 아우르는 제국의 범주에서 수도인 “하늘누리”는 어느 한 지역에 묶여있지 않고 하늘을 날아서 제국의 하늘 어디에나 이동하여 머무를 수 있게 된다.

이는 현재의 봉건 영주제도 하에서의 지방에 대한 견제와 동시에 사회,문화,물류의 쏠림 현상을 막는 다면적 역할이 가능 하게 한다는 점에서 이상적인 수도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천재지변에 대해서도 안전할 수 있고, 수천년동안 죽은 하늘치가 없는 것으로 보아 수명 또한 무한하다고 볼 수 있기 때문에 후에 말하게 될 1만6000년동안의 “인류 구원 계획”에 꼭 필요한 기함 이 된다.

그리고 그 거대한 크기와 이동성 때문에 소설상의 세계에서는 그 존재 자체가 큰 무기가 될 수 있다.

때문에 황제가 가진 행정수도 “하늘누리”공격형 하늘치 “말리”이외에도 공격을 위한 무기로서 하늘치를 소유하려는 자들이 당연히 생겨나게 되고, 드디어는 하늘치의 비밀이 밝혀진 시점에서 “이이타 규리하”에 의해 최초로 일반인이 하늘치를 소유하게 된다(이름은 “소리”라고 함).

그러나 가장 유의해야 할 점은 하늘치의 정치적 위치 보다는 그것을 유산으로 남기고 간 제5종족, 즉 “빛의 종족”에 대해서도 짚고 넘어가야 한다.

하늘치의 존재는 원래 제5종족이 약속의 시간이 왔을 때 다른 4종족의 후손들을 이끌기 위해 남겨둔 유산의 정수이다.

단순히 하늘을 나는 능력 이외에 가장 중요한 능력인 “무한한 가능성”을 유심히 보아야 하는데, 처음에 사람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환상계단”이라는 물질적 성취를 이루면서 그 존재를 알아채기 시작한다.

하지만 그 “가능성”을 이용하기 위해서는 주체인 인간의 “상상력”이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대부분의 보통 인간은 상상력의 한계 때문에 “환상계단”조차도 만들어내지 못한다.

하지만 제국 역사상 천재로 기록되는 최초의 인물인 “라수 규리하”“환상계단” 뿐만 아니라 “환상벽”이라는 예언장치도 만들어 내었고, 하늘치가 인간의 의지만으로 움직일 수 있는 사실 또한 밝혀 내었으며, 이런 내용을 “천경비록”이라는 책에 남겨두어 “아실”“제이어 솔한”, “이이타 규리하”가 하늘치를 움직이는데 결정적 단서를 제공한다.

하지만 “라수 규리하” 이후로 가장 상상력이 뛰어나다고 평가받으면서 동시에 “바보”라고 불리울 정도로 엉뚱한 일을 많이 벌이던 규리하백작 “정우 규리하”와 제국의 율형부사 “사라말 아이솔”의 2명은 스스로의 능력으로 또 다른 방향으로의 하늘치의 “상상력의 가능성의 무한함”을 증명하고 이용해 내었다.

“정우 규리하”는 최초로 “환상계단”을 물질적 한계에서 벗어나게 하여 하늘을 날아다닐수 있게 되었으며, “사라말 아이솔”은 상상력을 물리적단계의 최고조로 발전시켜 “환상근육”을 만들어 자신의 힘을 인간을 넘어서는 초인의 경지로 만들어 인간 최초로 레콘을 때려죽인 사람이 되었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하늘치는 “빛의 종족의 선물”인데, 그 제5종족은 행성상에 남아있지 않고 모두 사라졌다.

그 이유에 대해 생각해 보자면 “제이어 솔한”이 하늘치의 가능성을 최대한으로 발휘하여 그것을 “정신의 단계”에 적용 하여 육체의 한계와 시간의 한계를 벗어난 정신의 상태로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신적 존재가 되었다는 점에 유의하여야 한다.

위의 사실에서 추론해 본다면 하늘치는 제5종족의 능력의 정수이며, 그것을 이용하면 제5종족과 같은 최고의 정신단계에 도달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위에서 실명을 언급한 천재들이 말하는 대로 “하늘치는 약속의 시간이 되면 인간에게로 내려와야 하는데, 억지로 사람들이 하늘치 위로 올라오는 바람에 시간이 어그러졌다”라고 판단하는 것이 맞다.

따라서 결론을 내리자면 하늘치의 존재는 제국 성립과 1만6000년의 통치에 꼭 필요한 존재임과 동시에 소설상에서 드러나는 모든 가능성과 실체들에 대한 전제로서도 꼭 필요한 존재라고 할 수 있겠다.


1-2. 사어(蛇語).

“원시제 그리미 마케로우”라는 천재가 단시간내에 제국을 조직, 단결시키고 통치하기 위해 사용한 방법은 나가들의 원거리 통신수단인 “사어”를 통해서 가능한 것이었다.

특수한 나가의 초능력인 “정신억압”을 통해 뱀을 움직여 제국 어디에든 뱀단지가 있는 곳에는 실시간으로 황제의 의지와 뜻, 명령을 전달할 수 있는 것이다.

다만 단점이 있다면 사어는 나가만이 부릴 수 있는데 그 숫자가 적은 데다가, 제국의 대부분을 이루는 북부는 기온이 낮기 때문에 나가들이 활동할 수가 없다.

따라서 황제가 소수의 뱀부리미 나가들을 하늘누리의 “세번째 방”이라는 방에서 난로를 피우면서 데리고 다니면서 자신의 명령을 제국의 여러 도시로 보내고, 도시에서는 사어를 보기만 할 뿐 자신들의 의사를 역으로 황제에게 전달할 수는 없다는 단점을 가진다.

하지만 이러한 일방적이고 수동적인 수단 에도 불구하고 그 가치는 정말로 귀중한 것인데, 예를 들자면 원시시대에 초고속 FTTH 광랜이 깔려있는 것 같은 느낌?

어쨌든 드넓은 제국에서 “하늘치”를 통해 거리의 개념을 소멸시키고, “사어”를 통해서 절차와 수단의 소멸을 가능케 한 원시제의 계획은 10여년만에 제국의 체계를 완성시키고 그것을 넘어서서 더 이상 완벽할 수 없는 안정성 마저 후손들에게 물려주게 된다.

하지만 위의 2가지에 절대적 의존성을 가진 제국의 내구성은 마치 유리로 만든 성과 같기 때문에, 소설의 중반부에 하늘누리를 잃게 되고, 그에 따른 황제의 사어를 전할 수 없게 된 제국은 그야말로 사분오열...난장판이 되어버리고 만다.


1-3. 원시제 그리미 마케로우.

“눈마새”에서 화신의 한명으로 등장했던 유아 상태의 그리미가 성장한 후에 “대호왕 사모페이”의 은퇴후 황위를 물려받은 이가 “원시제”이다.

“눈마새”에서 화신으로 등장한 4명 모두 비범한 자들 이었는데 그 중에서 현생에서 소멸한 “케이건”“치우”를 제외하고 “그리미”“타이모”는 모두 역사에 한 획을 긋는 역할을 했다.

특히 그미리는 고금에 다시 없은 천재로 등장하는데, 소설의 초,중반에는 단순히 10여년의 짧은 생애 동안에 제국의 성립과 안정을 해 내었다는 초인적인 능력을 말하는 줄 알았다.

하지만 중반부터 등장하는 “인류 구원 계획(이건 그냥 내가 부르는 명칭)”을 입안했다는 점에서 그는 신(神)격이 되어 버렸다.

어쨌든 그리미 마케로우가 없었다면 제국도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2. 주제- 정치, 그리고 합의점 없는 대립.

 2-1. 개인의 주제에서 다수의 문제로...

“눈마새”의 주제는 “제왕론”이었다고 저번 글에서 결론을 내렸다.

이것은 “4마리 형제 새”에 대한 전설 중에서 “눈물을 마시는 새”에 대한 해석과 더불어 그 시기를 살던 사람들에게 끊이지 않았던 논제였기 때문이고, 스스로 죽고자 하는 왕에 대한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어떤 왕이 되는 가에 대한 문제는 지극히 개인적인 문제였지만 이번 “피마새”에서는 완성된 제국 내에서 종족 혹은 집단으로 대표되는 다수들의 갈등이 문제가 된다.


2-2. 서약지지파.

가장 먼저 제국과 황제에 대한 반기를 드는 집단은 “서약지지파”이다.

정치적 체계가 잡히면서 어느 사회에나 있는 “지배자”와 “피지배자”가 존재하게 된다.

그 당연한 이치 속에서 전통있는 지방인 규리하의 변경백(백작의 지위)인 “아이저 규리하”를 필두로 한 “서약지지파”는 단순히 지배자에 대한 충성을 맹세한다는 당연한 일에서 출발한다.

이건 너무나도 당연하고 오히려 충성에 대한 담보를 스스로 제공한다는 점에서 지배자 입장에서는 매우 기뻐할만 한 일이다.

그러나 “치천제 이라세오날”은 그들의 충성에 대한 명문화를 거부하고 자신에게 충성을 맹세하겠다는 이들을 적으로 규정하고 섬멸을 명한다.

굳이 충성을 맹세 하겠다는 “피지배자”
굳이 충성이 필요 없다 “지배자”...

이런 이상한 이유 때문에 계속되는 피바람이 불게 된다.


2-3. 분리주의자.

이것은 “레콘”이라는 종족 전체의 문제인데, 최후의 대장장이의 딸인 “타이모”가 쥐딤에서 주창하였던 것이다.

당시 쥐딤에서 수천의 레콘이 모여 발기하였는데, 주된 내용은 레콘이라는 종족의 특성에 기인한다.

이미 밝혀져 있다시피 레콘은 지극히 개인주의적인 성격 을 가지고 있고 평생을 자신만의 숙원을 이루기 위해 살기 때문에 결코 다른 사람, 레콘들과 연합하거나 집단을 이룰 수 없다.

“눈마새”의 초기에는 나는 이것을 작가가 소설속의 세계관의 평형을 유지하기 위한 장치로만 생각했었다.

다른 모든 종족의 능력과 힘을 뛰어넘는 절대적 강함을 가진 종족이 뭉치게 된다면, 너무 극강한 힘이 한쪽에 몰리게 되어 세계가 구성될 수 없다.

“물”을 싫어한다는 약점은 이미 여러차례의 실례를 통해 레콘이 극복 가능하다는 점이 밝혀졌다.

때문에 이 최강종족에 대한 페널티로서 “개인주의”를 안겨준 것이라고 봐야 한다는 것이 내 생각이었다(한대의 탱크도 보병 1개중대를 이기진 못하는 법이니까).

하지만 그 법칙조차도 “피마새”의 세계에선 흔들리게 되는데 바로 “분리주의”의 태동 때문이다.

현재의 제국은 “레콘,나가,인간,도깨비”의 4개 종족을 모두 묶는 초종족적 집단인데, 레콘을 제외한 다른 3개 종족은 원래 집단 정치체제를 이루고 살고 있었기 때문에 제국의 체제에 거부감이 없었지만, 레콘만은 뼛속 깊은 개인주의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제국이라는 울타리 안에 모일 수가 없다는 점에서 분리주의는 출발한다.

따라서 “타이모”는 일단 제국의 테두리 바깥에서 레콘끼리의 공동체를 꾸려서 집단에 대한 경험을 쌓은 후에 다시 제국에 레콘에 편입되어야 한다는 “제국으로부터의 레콘의 분리”를 제창하게 된다.

하지만 지성과 인격은 종족적 본능을 앞서지 못한다.

사실 “타이모”는 이런 비스무레한 생각을 한 적은 있지만, 그것을 이렇게 명확하게 규정하고 주장하며 레콘들을 끌어모으지 않았다.

이것은 “타이모”을 따라다니던 천재 인간 소녀...“아실”이 만들어낸 것이다.

“아실”은 레콘 속에서 자라났고, “타이모”를 따라다니며 그녀의 사고를 훔쳤는데 자신이 인간이라는 사실을 명확히 인지하지 못하고 레콘의 눈높이에서 그 사상을 발전시켜 “레콘의 분리주의”라는 이름으로 세상에 밝힌다...

그것이 레콘 자신이 아닌 인간의 입에서 나왔기 때문에 매우 아이러니컬한 상황인데도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독자들은 그 허점을 놓치고 있었다.

그러나 또한 소설속의 인물인 발케네의 공작 “락토 빌파”는 목적은 다르지만 그 또한 레콘의 집단화에 대해 연구하고 있었기 때문에 “분리주의”가 레콘의 사상이 아닌 인간 “아실”의 혼자만의 생각이라는 결론을 독자에게 안겨준다.
(그는 레콘의 정치적 독립을 위해서가 아니라 레콘을 집단화 시켜 군대를 만드려는 목적으로 연구하고 있었다).

어쨌든 이 “분리주의” 또한 공고한 제국의 체제를 부정하고 혼란스럽게 하는 문제였기 때문에 “치천제 이라세오날”은 대장군에게 명령하여 쥐딤에 모인 레콘을 모두 죽이거나 “절망도”라는 섬으로 유배보내게 한다.


2-4. 피지배자가 원치 않는 지배자의 오지랖.
(인간이 원치 않는 인간의 구원).

이 부분이 아마 “피마새”를 관통하는 문제임과 동시에 주제의식이 될 것이다.

제국 역사상 최고의 천재였던 “원시제 그리미 마케로우”는 자신의 뛰어난 지식과 함께 제5종족의 선물인 하늘치의 무한한 능력을 이용하여 현생 인류가 멸망에 이르게 되는 시간과 그 희생자의 숫자를 계산해 내게 된다.

1만6000년의 시간이 흐를 때 까지 인간은 서로 죽고 죽이는 전쟁과 다툼을 통해 500조의 인명이 희생되는 것이다.

최초로 제국이라는 개념을 만들었지만 제국의 약한 내구성에 대해 우려를 가지고 있던 원시제는 거의 영생에 가까운 1만6000년의 시간동안 제국을 효과적으로 통치하면서 인류를 구원하기 위하여 경악할만한 계획을 수립하고 실행에 옮긴다.

행정수도의 역할을 하는 하늘치인 “하늘누리” 이외에 제2의 전투형 하늘치인 “말리”를 건조하여 空대地 무기를 탑재함과 동시에 심장을 적출하여 불사의 능력을 가진 나가(“아라짓 전사”라는 별명으로 불리운다)들을 냉동하여 보관하고 있다가 제국이 위험에 쳐했을 때 “말리”와 함께 불사의 나가들이 나타나서 위기를 바로잡고 다시 냉동상태로 돌아가 대기한다는 계획으로, 이러한 방식으로 1만6000년의 시간 동안 제국을 통치하겠다는 것이다.

이것을 계획한 것은 “원시제”였지만 실행에 옮긴 것은 “치천제 이라세오날”인데, 그렇다고 “원시제”가 고민만 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냐...하면 그것은 아니다.

“원시제”는 “치천제”를 만들어 놓았던 것이다.
(원시제는 고금에 다시 없을 천재였지만 천명이 짧아 수명이 20년이 안 되었다...이건 나중에 더 자세히 말하겠다.)

어쨌든 소설 종반에 밝혀지는 이 계획(음모)에 대해 사람들이 알게 되면서 소설을 경악의 방향으로 흘러간다.

일종의 “성악설”에 기반을 둔 이 계획은 그 목적은 옳은 것이지만 그것 때문에 방해되는 모든 인간들을 죽여버리는 수단의 잔인함, 거의 영생에 가까운 기간 동안 인간을 통치하겠다는 광오함, 피지배자인 인간들의 동의 없이 일방적인 보호라는 논리적 취약점...

이러한 점들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각자의 방향과 방법으로 거부의 움직임을 보이게 된다.

 

 

3. 변화의 움직임.

 3-1> 발케네 가문.

“피마새”에서 가장 큰 비중으로 등장하는 봉건영주 가문으로, 선대인 “락토 빌파”부터 시작하여 현세의 “스카리 빌파”에 이르기 까지 황제에 반항하며 반란을 일으킬 생각만 하고 있다.

그들은 황제의 “인류 구원 계획”을 알기 이전부터 제국과 황제의 존재에 대해 거부감을 느끼고 본의 아니게 제국과 세상의 변화에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특히 바보인 “스카리”와 달리 연륜과 총명함이 있었던 “락토”는 여러 가지 의미에서 제국을 관찰하고 “아실”의 분리주의까지 독탐한 끝에 자신의 “레콘 군대”를 만들어 내어 제국에 도전을 하는데, 레콘이라는 종족의 변화를 이끌었다는 점에서 그 의의는 클 것이다.

또한 “눈마새”의 시대에 있었던 나가와의 전쟁에서 뛰어난 전투력을 가진 발케네의 선조들은 “대호왕 사모페이”와 도깨비 성주 “바우 머리돌”의 은혜로 얻은 3개의 “도깨비 감투”가 있었는데, 완전한 투명인간이 될 수 있는 이 비현실적인 아이템으로 인해 발케네는 수없이 많은 위기를 이겨내고 수많은 음모에 휩싸이게 되어 제국 역사에 중요한 부분에서 빼 놓을 수 없게 된다.

 

3-2> 가짜레콘.

이 역시 “아실”이 만든 개념인데, 레콘의 가장 큰 특징인 “개인주의”와 “숙원추구”를 저버린 레콘들을 말한다.

“락토 빌파”가 만든 “레콘 군대”를 시작으로 곳곳에서 포착되는 레콘들의 집단 형성은 레콘 종족의 존재의의에 큰 위협이 되는데, 정작 레콘들은 그것을 알지 못하므로 그 위험성이 더욱 크다고 하겠다.

더군다나 종반에 나타나는 의존형 레콘...“뭄토”로 대표되는 “숙원이 없는 레콘”은 그런 예의 대표가 되는데, 개인주의의 자존심과 숙원추구의 목적의식이 결여된 그는 “가짜레콘”이라는 단어가 가장 적합한 표현이다.

후에 그는 그런 “숙원 결여” 때문에 황제인 “치천제 이라세오날”“정신억압”에 가장 쉽게 조종당하는데, 황제의 “정신억압”은 원하는 것을 하게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근데 하고자 하는 일이 없는 “뭄토”는 황제의 의지대로 움직이게 되고, 종내에는 나무로 변태한 황제의 새로운 몸, 신체로서 목숨을 내 놓게 된다.

또한 “레콘이 레콘이 아니게 된다”는 말의 해석처럼, 물에 빠지고도 멀쩡한 레콘들이 늘어나고, 개인의 숙원이 아닌 사회와 세상을 위한 숙원을 추구하는 레콘들이 나타나는 점은 분명 레콘세계 전체의 변화를 대변하는 것이다.

 

3-3> 칼리도의 백작, 황제의 대장군, 제국 유일의 만병장...“엘시 에더리”.

어찌보면 이 소설의 주인공이라고 볼 수 있는 캐릭터이다.

위에서 말한 것처럼 그는 칼리도의 백작이며, 황제의 대장군이며, 제국에서 유일하게 1만명의 인원을 어떤 이유에서건 마음대로 징집하여 부려먹을 수 있는 막대한 권한을 가진 1인이다.

한마디로 황제 이하 지상 최고위의 인물이라는 말이다.

물론 그는 젊고 유능하며 검술이 뛰어난 군인이며 사리가 분명하고 국수급의 바둑실력을 자랑하는 뛰어난 사람이다.

하지만 그에 대한 황제의 무한한 지지와 사랑은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질투의 의구심을 가지게 하고, “엘시 에더리” 자신 또한 그점에 대해 부담감과 함께 의문을 가지고 있다.

여기서 한명의 인간에 대한 다양한 시각에 의한 평가가 엇갈리게 된다는 점이 매우 흥미롭다.

황제는 자신이 1만6000년간 시간을 초월한 막후의 지배자가 되는 대신에 현세의 황제의 자리를 능력있고 자질이 훌륭한 인간에게 넘겨주고 싶어하는데, 그 인간이 바로 “엘시 에더리”이기 때문에 그에게 많은 권한을 주고 복종심을 주지시키려고 하는 것이다.

반면에 보통의 인간들, 대다수의 인간들은 평소에는 엘시에 대한 황제의 편애를 배아파 했지만 제국의 수도인 “하늘누리”와 황제가 한꺼번에 사라져서 세계가 혼란에 빠졌을 때, 그 혼란을 잠재우고 다시 제국을 일으킬 사람은 엘시밖에 없다는 사실에 다같이 공감하였다.

어쨌든 그는 여러모로 훌륭한 인물인데, 황제의 사랑과 군인으로서의 자신의 의무를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인류 구원 계획”이 밝혀진 시점에서 모든 이들이 황제를 공격하려 할 때에도 쉽게 황제를 배반하지 못하였다.

이것은 우유부단함이 아니라 “강직함”이라고 표현해야 할 듯 한데, 그의 판단과 행동이 보는 이를 답답하게 하긴 하지만 절대 “잘못된 일”은 아니라는 점 때문이다.

또 하나의 예인 약혼녀 “부냐 헨로”에 대한 일처리에서도 그는 자신의 지위로 얼마든지 죄수 신분의 그녀를 구할 수 있었지만, 제국법을 어긴 죄인을 자신의 손으로 풀어줄 수 는 없다는 판단 때문에 직접 그녀를 구해주지 않고 국가와 황제에게 공훈을 세워서 황제가 그녀를 사면하게 하는...매우 답답한 행동을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그런 충실한 대장군이었던 그였지만, 도깨비같은 인간인 “정우 규리하”를 만나면서 그 생각의 자유로움과 “밤의 다섯 번째 딸”의 감화로 인해 생각과 행동의 장벽을 넘어서게 된다.

여기에다가 황제에 대한 그의 마지막 충성심을 사라지게 하는 촉매로 황제의 정신억압”이라는 절대적 카드가 등장하게 되는 바람에, “황제를 죽이는 일이 아니면 모두 정신억압으로 의심된다”는 논리밖에 남지 않게 된다.

그래서 그는 황제를 심판하고, 황제를 죽이고, 황제를 살리는 일에 앞장서게 된다.

 

3-4. 불을 못 쓰는 도깨비와 도깨비같은 인간.

자신의 본성과 본능에 반하는 매우 이질적인 존재이지만 반면에 매우 매력적인 캐릭터이기도 한 사람들이다.

즈믄누리 도깨비중에서 유일하게 살아있는 생물을 불에 태워 죽일 수 있는 권한을 가진 “무사장 탈해 머리돌”은 절대 뜨거운 불을 만들 수 없다.

인간이지만 태어나자 마자 즈믄누리로 보내져서 자란 “정우 규리하”는 인간이기 보다는 도깨비의 마음과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다.

이 어설픈 도깨비 두 마리는 떼어놓고 보면 무척 웃긴 존재들이지만, 그들의 지위와 해내는 일들을 본다면 “피마새”의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힘을 가진 세력이 될 것이다.

유순하고 평화적인 이들은 매우 단순하게 “왜 황제 생각대로 해야 하지”라는 원초적인 질문을 아무런 윤리적, 도덕적 고민 없이 할 수 있는 순수함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제국과 세상의 변화의 중심에 설 수 있게 된다.

그리고 “탈해 머리돌”은 현세계에 존재하는 단 2마리의 용 중에 하나인 “개밥바라기”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나머지 한 마리의 용을 상대할 수 있는 단 하나의 힘이 된다.

또한 “정우 규리하”는 인간의 몸이지만 도깨비들의 가장 큰 힘이자 신비인 “밤의 5명의 딸” 중에서 5번째 딸의 힘...즉 “꿈”이라는 말도 안되는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황제가 공포심을 느끼는 단 한명의 존재가 된다.

 

3-5. 변화 그 자체를 의미하는 “용”.

참 존재감이 없지만 간간히 그 존재에 대한 단서를 소설 전개상에서 흩뿌리는 존재가 바로 “용(dragon)”이다.

“눈마새”에서도 나왔지만 “용”은 키우는 사람이 원하는 어떠한 형태로든 자랄 수 있기 때문에 그 무한한 가능성은 곧 무한한 힘이 되고 무한한 공포가 된다.

초반에 2마리의 용이 현세에 존재한다는 단서 이후로 독자들은 계속해서 “용이 어디 있을까? 무엇으로 변했을까? 혹시 저사람 아니야?” 라는 고민을 하게 된다.

그리고 그 존재는 정말 상상도 할 수 없었던 결과로 나타나서 독자들을 경악하게 한다.

그 “가능성”의 “변화” 때문에 세계의 가장 큰 변수인 2마리의 용은 그렇게 상대 진영에서 등장하여 각자의 주인이 원하는 “변화”의 개념으로 변화를 실행한다.

 

 

4. 화자의 변.

황제가 황태자인 “엘시 에더리”를 보좌하기 위해 선물하려고 구상한 차세대 三顧인 세명이 주된 화자가 되는데, 이외에도 소설 상의 다양한 생각들을 대변하는 중요 화자들에 대해 말해 보겠다.

 
4-1. 실패를 원하는 자, “제이어 솔한”.

소설을 이끌어 가면서 가장 독립적으로 자신의 주장을 펼치면서 적재적소에 등장해 모든 사건에 연루되거나 막후조종을 하면서도 거의 유일하게 황제의 조종(정신억압)을 스스로 벗어나는 인물이다.

혹자들은 “살인기사”, “실패를 위해 일을 벌이는 이상한 사람” 정도로 그를 평가하지만 그는 스스로 세상을 움직일 수 있을만한 능력을 가진 자였고, 그렇기 때문에 황제도 그를 삼고의 한명으로 임명하려고 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의 뛰어난 두뇌로 황제의 계획을 읽어내고 황제의 계획을 망치기 위해 정신억압을 벗어나 황제에게 도리어 큰 타격을 준다.

그리고 제5의 선민종족이 준 선물인 “하늘치”의 무한한 능력의 비밀을 깨달은 2사람중에 한명이 되어 결국은 제5종족과 같은 빛...즉 정신 차원의 존재로 탈바꿈되어 시공간을 넘나들며 살게 된다.

결국 그의 존재는 황제에게 반대하여 황제의 목적을 드러내게 하다가, 황제의 손이 되어 움직여서 혼란을 주다가, 황제의 뒷통수를 쳐서 극적 재미를 주다가, 결국은 황제를 뛰어넘어 하늘치의 약속을 이행하는 단 한사람이 되는 것이다.

 

4-2. 장애와 결핍의 천재, “아실”.

그녀는 작고 힘없으며 애꾸눈의 소녀이다.

분리주의의 시초인 “타이모”를 따라다니다가 레콘을 가장 잘 이해하는 인간이 되었고, 그 천재성으로 레콘도 생각해 내지 못한 레콘의 독립, 즉 “분리주의”를 완성해 낸다.

쥐딤에서의 사건에서 타이모와 레콘들을 잃고 자신도 장애인이 된 이 불쌍한 소녀는 “황제사냥꾼 지멘”과 함께 단 둘이서 6년이라는 시간동안 제국 전체를 상대로 전쟁을 치룬다.

타이모의 죽음 때문에 황제를 증오했지만, 그 뛰어난 머리로 황제의 계획을 알아챈 이후에는 자신을 지탱하던 “증오”를 잃고 모든 것을 체념한 듯한 캐릭터가 된다.

종반에는 지독하게 비관적이고 수동적이 되는 존재이지만, 그녀는 세계에서 단 한명, 스스로의 지식과 힘으로 “하늘치”를 움직인 사람이었으며, “제이어 솔한”이 나아가게 되는 정신적 단계에 대해서도 이미 예상하고 있었던 천재로 하늘치의 목적과 비밀을 아는 단 2사람중의 한명이었다.

그는 “락토 빌파”, “황제”, “레콘” “제이어 솔한”등의 인물과 대화하면서 그들의 생각을 끌어냄과 동시에 스스로 이 소설 상의 개념들에 대해 설명하고 보여준다.

“분리주의”를 정의하고, “하늘치”를 움직이며, “황제의 계획”을 알려준다.

그리고 그녀가 갑작스레 “증오”를 잃고 비관적인 천사가 되는 것에 대한 독자의 상실감은 그녀가 “나늬”라고 불리운다는 점에서 보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모든 종족을 뛰어넘어 모든 이에게 예쁘게 보인다는 전설의 미녀 “나늬”는 애꾸눈의 작고 더러운 소녀의 모습으로 세상과 맞서고 있었던 것이다.

 

4-3. 죽어서도 제국을 생각한 태위, “팔리탐 지소우”.

사실 “팔리탐”은 태위의 이름이 아니라 그의 영이 들어간 군령자의 이름이고, 태위의 이름은 “레이헬 라보”인데 이미 죽은 사람이기 때문에 “팔리탐”의 이름을 써야 맞다고 본다.

“눈마새”에서도 언급되어 있듯이 군령자는 죽어가는 다른 사람의 영을 자신의 몸에 거두어 들일수 있기 때문에, 군령자의 몸에는 여러 개의 영이 공존할 수 있다.

“팔리탐”은 발케네공 “락토 빌파”부터 “스카리 빌파”까지 빌파 가문에 충성을 바치는 가신일 뿐이지만, 그의 능력은 대단한 것이다.

허황된 빌파 가문의 꿈인 “레콘 군대”를 만든 것도 그의 힘이고, 멍청한 주군을 지키기 위해 “엘시, 정우, 심지어는 황제”와 맞서 싸운 용감한 사람이기도 하다.

더군다다 그의 몸에는 죽은 태위의 정신이 있어서 현재의 상황에 대해 가장 명확히 이해하고 설명할 수 있는 인물이기도 하다.

황제가 “황태자 엘시”에게 주려 했던 3명의 삼고중에서 마지막 한명이며, 3명중에 유일하게 끝까지 황제에게 충성을 다한 인물이기도 한데, 특히 하늘누리와 황제가 사라진 기간 동안에 제국의 위기를 여러차례 구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그는 황제와 제국의 영원한 제1의 공적인 발케네 공작 가문의 가신이기 때문에 계속적으로 등장하는 그의 번뇌와 후회 등의 아이러닉한 상황은 참 가슴 아프기도 하다.

 

4-4. 운명을 개척한 돌아이, “사라말 아이솔”.

행동으로써 이 소설의 주제의식을 표현하는 가장 중요한 인물이다.

제국의 “율형부사”라는 사법권의 최고지위인 법무부장관 정도의 직책을 가지고 있는 사람으로 하늘누리에서 황제를 보좌하던 인물이다.

하지만 발케네 전투에서 하늘누리가 빙해 아래로 추락하고 황제가 실종되면서 고난의 여행을 하던 도중 자신을 보호하던 레콘 “아트밀”과 우정을 나누고 황제에 대한 의구심을 키워나간 후 최초로 황제에게 도전하는 인간이 된다.

“인간의 미래에 대한 결정권”“인간의 죄에 대한 심판권”황제 단 한사람이 좌지우지할 수는 없다고 결정하고, 율형부사의 권한을 이용하여 황제를 고소하고 심판하겠다고 황제 면전에다 대고 말한 용감한 인간이다.

그는 원래 좀 엉뚱하고 바보스러운 면이 있었는데, 그것은 그의 천재끼를 감추기 위한 기행이었다기 보다는 원래 천성이 그런 자유스러운 면이 있었던 것 같다.

그의 그런 순수함과 자유스러움은 “하늘치의 가능성”을 최고조로 이용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게 했는데, 그는 제국 최초로 “환상계단”이 물리적으로 인간의 몸에도 적용될 수 있다는 가설을 세웠으며, 그 “환상근육”의 힘을 황제의 군대와 싸울 때 스스로 입증하여 인간 최초로 레콘을 때려죽인 사람으로 기록된다.

결국 황제(용)에게 불태워져 죽은 최초이자 마지막 인간으로 남는 기록도 세우지만, 황제에게 도전했던 그의 죽음은 많은 사람들을 귀감시키게 된다.

 

4-5. 용 A.K.A 황제 치천제 이라세오날.

사실 이 소설 상의 최고의 반전은 죽었던 황제와 하늘치가 되돌아오는 장면이 아니라 “황제는 용(dragon) 이었다”라는 사실이 밝혀지는 순간이라고 생각한다.

계속해서 마지막 용인 “아스화리탈”의 포자가 2개 남겨져서 하나는 "원시제 그리미 마케로우“에게 보내지고, 나머지 하나는 즈믄누리의 도깨비 성주 ”바우 머리돌“에게 보내졌다는 단서가 등장하기 때문에 독자들은 그 용들이 도대체 무엇으로 변했고 언제 등장할 지 고민하게 된다.

전편인 “눈마새”에서도 밝혀졌듯이, (특이하게도 이 소설에서는 식물이다)은 그것을 키우는 주인의 생각대로 자라나게 되는데, 그 엄청난 가능성의 무한함 때문에 가공할 존재로 변할 수도 있는 것이다.

어쨌든 그 2마리의 용 중에서 한 마리가 황제라고 밝혀지는데...

그 충격은 이루 말 할 수가 없었다(차라리 “엘시 에더리” 였다면 이해가 갔을지도...).

이전에 “원시제 그리미 마케로우”가 어떻게 차기 황제인 “치천제 이라세오날”을 만들기 위해 남부의 나가들의 도시로 가서 심장적출을 했는지 내용이 너무 자세하게 등장하는 데다가, 나가 특유의 “니름”도 할 수 있고, 온도에 민감한 나가의 특성까지 가지고 있으니...

대부분의 독자들은 당연히 황제는 “나가”라고 생각했지, 감히 의심하지 못했을 것이다.

유일한 단서는 황제가 하늘에서 “아실”과 싸울 때 “황제는 왜 혼자 하늘치를 움직이지 못했는가”라는 의문으로 제시되는데, 그 점은 작가가 “황제는 행성상에서 자연스럽게 태어난 5가지의 종족에 속하지 않는 식물이기 때문에 하늘치는 그의 명령을 듣지 않는다”라는 친절한 설명을 해주기 전까지는 아무도 알 수 없는 내용이었다.

어쨌든 그는 식물이지만 “원시제”“나가”를 상상하며 키웠기 때문에 완벽한 “나가”의 외모와 특성을 가지고 있으며, 천재였던 “원시제”의 바람대로 냉철한 천재 통치자의 모습을 완벽하게 이루어 내게 된다.

또한 식물이므로 자유의지가 제한되기 때문에 그 생각과 행동은 주인이었던 “원시제”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며, 때문에 “원시제”의 계획인 “인류 구원 계획”을 충실하게 이행하게 된다.

용은 자신이 믿었던 “엘시 에더리”를 포함한 “세명의 삼고”의 배반, 또한 모든 사람들의 적대행위가 계속되자 그는 용의 武力으로 그와 원시제의 신념을 관철시키려고 한다.

하지만 그 또한 범상한 인물은 아니었듯이, “성악설”에 근거한 원시제의 유지가 목적이 아니라 자신의 존재가 인간 스스로는 지킬 수 없었던 “한계”를 설정하고 유지하는 입장이었다는 것에 납득하고 스스로를 불태워 자폭하게 된다.
(물론 “엘시 에더리”에 의해 죽지는 않고 그의 하늘치 “말리”와 함께 우주를 유랑하게 되지만...)

사람들이 그에게 반대하고 없애야 한다는 사실에 모두 동의하게 된 계기에는 “정신억압”이라는 개념이 꼭 등장해야 한다.

“정신억압”은 원래 “나가”들의 특징으로 훌륭한 능력을 가진 나가 조차도 기껏해야 동물 정도를 움직일 수 있을 뿐이다.

하지만 “원시제”에 의해 “최고의 나가”로 만들어진 용은 인간마저도 정신억압으로 마음 먹은대로 움직일 수도 있다는 사실이 여러 가지 정황에서 밝혀지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모든 사람은 어떤 행동을 하던지 그것이 자신의 의지인지, 아니면 황제의 정신억압에 의해 행해지는 것인지 의심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자기 자신과, 주위 사람들과, 황제와...세상 자체를 믿을 수 없게 된다.

그래서 마지막까지 황제에게 충성을 다하던 “엘시 에더리”마저도 황제를 죽여야 한다는 결론을 내린다.

 “황제를 죽인다”는 행동을 하지 않는 사람은 모두 황제에게 정신억압 당하고 있을 확률이 높으므로, 그 명제에 반하기 위해서는 황제를 죽이는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물론 소설의 막바지에 “짐은 그런 식으로 정신억압하지 않는다”는 황제의 말에 의해 용은 다만 모든 사람들이 자신이 하고자 하는 대로 할 수 있게 하는 데에만 정신억압을 사용했다는 것이 밝혀지지만, 그 “정신억압”의 가능성은 정말로 무시무시한 음모의 소재로 소설을 이끌어 왔던 것이 사실이기 때문에 그 충격도 매우 컸다.

어쨌든 “성악설”에 입각하여 “모든 인간은 서로 싸우고 죽이기 때문에 그것을 막아야 한다”는 광오한 생각은 “원시제”“치천제”오지랖 넓은 참견이었다고 작가에 의해 결론지어 지는 것으로 소설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마무리된다.

또한 용이 아닌 “황제로서의 이라세오날”을 보면 그는 “인류 구원 계획”을 시도함에 있어서 자기 자신에게는 매우 엄정하고 냉정한 잣대를 들이민다.

즉, 자신은 어차피 “만들어진 생명체”이기 때문에 명예와 공명심 따위는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역사의 뒤편으로 물러나 “말리”에 숨어 세상을 관조할 뿐 역사의 전면에는 나서지 않으며, 대신 야사가 아닌 역사의 전면을 이어나갈 신황조(엘시 에더리 황조)의 탄생에 누가 되거나 방해가 될 만한 인간들을 모두 죽이고 그 피의 값을 본인의 몫으로, 즉 악명만을  가지고 죽을 생각을 한다.

여기서 다시 “눈마새”“피마새”를 관통하는 “네 마리의 형제 새” 이야기를 떠올려 보자.

"피를 마시는 새가 가장 오래 살지. 누구도 내놓고 싶지 않는 귀중한 것을 마시니.

하지만 그 피비린내 때문에 아무도 가까이 하지 않아."

그렇다.
여기서 말하는 “피를 마시는 새”는 바로 황제인 “치천제 이라세오날”을 말함이다.

그는 남부의 나가들을 섬멸하고, 참람되게 칭왕을 한 “지키멜 퍼스”를 처벌하고, “서약지지파”의 이름으로 반왕하는 규리하를 정벌하며, 언젠가는 황제의 뒷통수를 치게 될 발케네를 초토화 시킨다.

그리고 그 피해자들이 흘린 피를 마시고, 모든 인간들이 퍼붇는 악명을 스스로 안고 사라지려 한다.

그리고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1만6000년이라는 긴 세월동안, 자신의 동족도 아닌 생물들을 살리겠다고 외로운 여행을 해야만 한다.

이러한 자기희생적인 아집은 주체자의 입장에서는 성스럽고 고귀한 정신이겠지만, 알다시피 곁에서 보기에는 독단에 사로잡힌 독재자의 횡포로 밖에 평가할 수 없음이 안타까울 뿐이다.

 

 

아...
간단히 쓴다고 해 놓고는 또 A4 16장이구나!!!

너무 긴 작품이어서 읽느라 힘이 좀 들었고, 이 글을 쓰는데도 2일이나 걸렸다.

어쨌든 그만큼 재미있게 읽은 작품이기에 별로 억울한 마음은 안 든다.

 
그럼 다음에 또 이영도의 세계에서 빠져 나왔을 때 글로 만납시다!!!

Posted by DreamS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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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0월 13일 작성된 글입니다).

흠...
허...
참...
아...
 
이 소설을 읽는 동안 내가 수없이 되뇌였던 감탄사였다.
 
이전의 “드래곤라자”에서 소설가 “이영도”에 대한 무한 신뢰감을 마음속에 형성하게 된 지뇽군은 그의 연작에 도전하고자 동일세계의 시리즈로 이어지는 “새” 시리즈 중에서 앞편인 “눈물을 마시는 새”를 손에 들게 되었다.
 
근데 이건 뭐...후...
 
왜 이제야 이 책을 읽게 되었는지 엄청난 후회에 몸서리를 칠 정도로 이 책은 재미있었다.
 
아니, 그냥 “재미있었다” 정도의 어구로 표현하기에는 이 소설에게 너무 미안하다.
 
“내가 철이 들고 나서 지난 10년간 읽은 책들 중에서 2번째로 재미있는 책”
이정도 평가도 살짝 민망할 정도이다.
 
어쨌든 오랜만에 감명깊게 읽은 소설이니만큼 글이 또 무한정 길어질 지도 모르지만, 그간 많은 독자들과 네티즌들이 이 소설에 대한 감상, 리뷰등을 블로그나 팬사이트에 올려 놓았으므로 소설 내용이나 줄거리에 대한 자세한 설명 보다는 내가 주의깊게 보고, 신경써서 기억하려던 부분들을 중점적으로 적어 보겠다.
 
(이 아래 부분은 A4지 11매 분량의 매우 긴 글이며, 심각한 스포일러가 내재되어 있음을 밝히니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1. 일취월장 이영도.
 
1-1> “독자의 흥미를 붙잡아두다”.
 
사실 “눈물을 마시는 새”의 설정과 세계관, 줄거리 등...훌륭한 점은 매우 많지만 내가 먼저 하고 싶은 말은 작가 “이영도”에 대한 평가이다.
 
앞서 “드래곤라자”의 감상평을 쓸 때에도 말 했었지만 “이영도”씨의 글쓰기 능력은 단연 독보적이다.
 
온라인 연재라는 특성상 주기성, 단절성, 흥미상실....등의 수많은 페널티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수십만의 독자들을 매일 밤 컴퓨터 화면 앞에 붙들어 놓기 위해서는 단순히 재미있고 신기한 소재와 내용만으로는 불가능한 일이다.
 
그 소스들을 “얼마나 잘 풀어 내느냐”가 최대 관건인 것이다.
 
매 회차마다 지루하지 않고, 앞뒤 끊김이 없으며, 전후의 사건이 이어지고, 섣부른 흥미유발은 지양하지만, 매번 개연성 있는 장면들이 시선을 사로잡게 하는...
 
그런 “독자의 눈을 붙잡아 두는 능력”이 매우 뛰어나다는 것이다!
 
1-2> “지루한 선생님이 아니라 현명한 작가가 되다”
 
하지만 이런 점은 “드래곤 라자” 때부터 내가 했던 말이고, 이번 소설에서 다시 느낀 점은 그의 글솜씨에 대한 깊이가 달라졌다는 점이다.
 
이번 소설은 하나의 행성(?)에서 5가지의 종족이 수천년동안 이어지는 서사를 4편의 중기 구분 下에 30여명의 주요 등장인물이 내용을 병렬 선도하는 매우 방대하고 복잡하며...지루해지기 쉬운 글이었다.
 
사실 워낙 새로운 것을 도입하면, 독자의 이해를 돕는 답시고 불필요한 설명과 지루한 강의가 난무하는 것이 대부분의 역사, 무협, 판타지 소설의 한계였다.
 
(설정에 대해서는 따로 얘기하겠지만)
하지만 작가는 이 소설에서 역사나 세계관 및 등장인물에 대한 3인칭 작가적 서술을 최대한 자제하고, 가능한한 사건의 전개 속에서, 등장인물의 입을 통해 독자들에게 정보를 전달해 주고 있다.
 
글을 좀 써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사실 홑개의 사건도 아니고 수천년의 역사와 여러 종족의 이야기들, 현실세계에선 볼 수 없는 생명체, 환경에 대해 직접적으로 언급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이해시킨다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설에 대한 이해도가 독자들에게 부족함 없이 전달되고 있으며, 그렇지 못한 부분에 대해서도 적당한 선에서 “독자의 상상”을 유도하는 해결책을 마련해 놓았기 때문에 이 소설만의 색다른 재미가 될 수 있었다.
 
알다시피 이 소설은 “온라인 연재 소설”이다.
 
작가 혼자 칩거하여 완성물을 뚝딱 내 놓은 것이 아니라, 매일매일을 작가와 독자가 서로 호흡하며 불완전성을 메꾸고, 궁금증을 해소해 가면서 상호간의 Feed Back을 통해 완성한 허점 없이 완벽한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1-3> “독창적인 판타지 세계관”
 
사실 장르 문학으로서의 “판타지 문학”은 서양(특히 영국)과 일본이 원류이고 주류이다.
 
후발주자인 한국은 그 장르를 가져와 발전시키면서 어쩔 수 없이 정형화된 몇가지 세계관을 이식 수혈하여 사용할 수 밖에 없었다.
 
처음엔 지도를 보여주면서 새로운 세계인 것처럼 시작하지만 책을 열어보면 비슷한 유럽 중세를 묘사하는 듯한 환경에 드래곤과 마법이 존재하고, 기사, 엘프, 드워프가 뛰어다니면 전설을 쫒는 식상한 내용이 대부분이었다.
 
물론 이런 정형성 안에서도 충분히 재미있고 훌륭한 작품이 나올 수 있다.
 
내게 처음 판타지 문학의 재미를 안겨준 “하얀 로냐프의 강” 같은 작품은 이러한 정형성 내에서 작은 세계의 단조로운 구성을 가지고 얼마나 큰 재미와 감동, 그리고 여운을 남겨줄 수 있는 지를 보여준 명작이었으니까...
 
하지만 판타지 문학의 최대 장점은 “현실세계에 없는, 현실에선 불가능한” 것에 대한 무한한 포용성임은 누구도 반론하지 못할 것이다.
 
그래서 차후 한국형 판타지의 중흥기가 오면서 “묵향” 같은 독특한 소재의 작품들이 등장하게 되고, 그간 식상함에 질려있던 독자들의 열렬한 환영을 받게 된다.
(한국은 기존의 무협소설의 토대가 있었기에 무협과 판타지가 합쳐진 형태의 소설과 만화가 많이 등장하였다).
 
“이영도”초기작이 정형화된 판타지 세계 안에서 “드래곤라자”“퓨쳐워커”를 통해 등장했다면, 중기작인 “눈물을 마시는 새” 부터는 전혀 색다른 독창적인 세계관을 만들어 내고 그 안에서 작품 활동을 이어가게 된다.
 
이번 소설의 세계는 하나의 행성 전체를 배경으로 하고 있고, 5개의 종족이 등장하며, 수천년의 역사와 현재의 사건들 속에서 수십명의 등장인물이 나오고, 환경, 생활, 전투, 도구, 생식...등에 있어서 모두 새로운 설정을 보여주고 있다.
 
근데 이런 식으로 “와~~~정말 훌륭하게 별세계를 창조해 냈구나!!!”라고 감탄을 하면 꼭 아래와 같이 평가절하하는 사람들이 있다.
 
“에게~이건 어디어디서 배껴온거 아냐?”
“너무 새로운 것만 만들다보니 허점이 많은거 아냐?”
“에이...이정도는 나도 만들겠다.”
”은하영웅전설“이나 ”파이브 스타 스토리즈“ 같은 작품은 아예 우주가 배경인데 그럼 ”다나카 요시키“ ”마모루 나가노“가 더 천재겠네?”
 
내가 한마디만 하겠다.
 
“그런 창조적인 머리를 가진 사람은 많다. 하지만 그것을 모든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게 구성해 내고, 모든 사람들이 재미있어 하게 풀어낼 줄 아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p.s>그리고 앞서 말했듯이 이 소설은 피드백을 통해서인지 몰라도 설정상의 허점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자~작가에 대해 3 page에 걸쳐 떠들어 댔으니 이젠 작품 자체에 대해 말해보자.
 
1-4> “묘사의 달인이 되다”.
 
이건 이 책을 읽어본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부분일 것 같다.
 
환경과 장면에 대한 묘사가 매우 발전하여 사실적이지만 감정적이고, 짧지만 시각적 구현성이 뛰어난 글을 보여주고 있다.
 
전투 장면에서의 현실감과 처절함이 눈을 사로잡는다면, 등장인물들의 주관적 시야에 대한 객관적 설명 또한 매우 구체적이며, 객체의 사유에 대한 감정 전달 또한 매우 민감하게 다가온다.
 
그리고 현실세계에는 존재하지 않는 “레콘, 용, 도깨비, 나가” 등을 묘사하는데 있어서 독자들이 하등의 어려움 없이 머릿속에 이미지화 할 수 있도록 세밀하게 서술하고 있다.
 
감히 “이청준”씨나 “황석영”씨에 비견해 볼 정도로 훌륭하다.
 
 
 
2. 설정과 세계 속으로...
 
2-1> 특이한 종족구성.
 
이 이야기를 하지 않고서는 소설에 대한 말을 시작할 수가 없다.
 
소설 상의 세계에는 5가지 종족이 살고 있다.
 
인간- 행성의 북쪽에 살고 있으며 보통의 인간을 생각하면 맞다. 약점 투성이이다. 때문에 옛부터 "왕"을 중심으로 모여 단결하고 적들에 맞서 싸우며 자신들을 지킨다.
 
나가- 행성의 남쪽에 살고 있는 변온동물, 피부에 비늘이 덮여있고 눈의 시계는 가시광선이 아니라 열을 감지하는 적외선식이다. 성인이 되면 심장을 적출하여 불사신이 된다. 변온동물이기 때문에 온도에 민감하며 북쪽의 저온에 약하다. 음성언어를 사용하지 않고 정신언어인 "니름"을 통해 의사소통을 한다.
 
레콘- 닭의 외형을 하고 있지만 3m에 이르는 큰 키와 큰 덩치로, 전투적이고 호전적이라서 행성 상에서 거의 무적이다. 약점은 물이다. 인생을 숙원사업에 메달리거나 결혼을 하거나, 둘중의 하나만 하게 되어 있다. 행성 최강의 생명체이지만 각자 개인적인 일에 몰두하기 때문에 무리짓지 못하여 행성을 지배한다거나 하지는 못한다.
 
도깨비- 한국의 도깨비와 외형과 개념이 같다. 불을 다룰 줄 알고 죽은 다음에도 “어르신”이라는 유령 형태로 현실세계에 존재하게 되므로 두 번 사는 것과 같다. 약점은 붉은 피 이다. 모든 도깨비가 불을 다룰 줄 알기 때문에 마음만 먹으면 행성을 재패할 수도 있지만, 본성이 착하고 싸움을 싫어하며 결정적으로 "피"를 무서워하기 때문에 폭력을 쓰지 않는다. 장난이 심하고 감정이 풍부하다.
 
제5의 종족- 최고의 선민종족으로 나머지 4가지 종족을 위해 "하늘치"라는 유산을 남겨두고 행성상에서 사라졌다. 그들이 남긴 오점, 더러운 부분들이 “두억시니”라는 지적능력이 결여된 무정형 괴물들로 행성상에 버려졌다.
 
2-2> 동양의 五行과 五運六氣에 서양의 4원소설을 합치다.
 
위에서 말한 5종족의 외형은 서로 다른 독창성을 보이고 있지만 서로의 상생, 상극 관계는 매우 명확하여 행성 상에서 균형을 이루고 있다.
 
작가가 의도하고 조사한 후에 글을 썼는지는 모르겠지만 동양학문적 지식에 근거하여 생각해보면 자연계의 相生과 相剋을 통해 균형을 유지하는 五行학설과 딱 맞아 떨어지고, 그것을 기존의 판타지적 세계관에서 등장하던 “엠페도클레스”가 주장했던 서양의 4원소설에 입각해 설명해도 거의 일치하게 된다.
 
인간- “어디에도 없는 신”은 바람을 다루므로 서양 4원소설에서 “바람,공기”이며, 오운육기상 厥陰風木에 해당되므로 이것은 오행에서 “木”의 성질로 결정된다. 金克木하므로 제5종족만이 인간을 이길 수 있었으나 사라졌으므로 이후 하늘치를 인간이 갖게 된다. 木克土하므로 레콘을 다스릴 수 있다.
 
나가- "발자국 없는 여신“은 물을 다루므로 서양 4원소설에서 ”물“이며, 오행상의 ”水“가 되며, 오운육기상 太陽寒水에 속한다. 土克水하므로 비록 불사신인 나가라 하더라도 지상 최강 생명체인 레콘에게는 질 수 밖에 없다. 水克火하므로 일반적으로 도깨비에게 강한데, 단 한번 위기에 몰린 도깨비가 계곡 전체를 불태워버린 적이 있어서 섵불리 도깨비를 대하지 못하게 되었다.
 
레콘- “모든 이보다 낮은 여신”은 땅을 가져서 축지법등을 쓰므로 서양 4원소설에서 “흙”이며, 이것은 오행상의 “土”와 같고, 오운육기상 太陰濕土에 속한다. 木克土하므로 인간이 레콘을 이용하고 다스릴 수 있으며, 土克水하므로 불사의 생명체인 나가를 이길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존재이다. 너무 비현실적인 강함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나가의 상징인 “물”을 무서워한다는 설정이 페널티로 붙게 된 것 같다.
 
도깨비- “자신을 죽이는 신”은 불을 다루므로 서양 4원소설의 “불”이며, 이것은 오행상의 “火”와 같고, 오운육기상 少陽相火이다. 水克火하므로 나가들에게 약한 모습을 보여 왔는데, 이는 도깨비가 천성이 착하고 싸움을 싫어해서 인 듯 하다. 긴 역사 속에서 단 한번 물을 이길 정도의 불로 한 계곡에서 나가들을 불에 태워 몰살시킨 적이 있으나 원래는 피를 무서워하는 페널티가 부여되어 있으므로 생명체를 죽이지 못한다. 火克金하므로 원래 제5종족을 이길 수 있었을 텐데 제5종족에 관한 정보는 공개되어 있지 않아서 알 수 없다.
 
제5 종족- “자신을 보지 못하는 신”은 빛을 다루는데 서양 4원소설상에선 존재하지 않는다, 오행상의 “金”에 속하고, 오운육기상의 陽明燥金이다. 공개된 정보가 없다.
 
위에서 보다시피 기존의 五行상에서의 설명을 거의 일치하나 相生,相剋에 있어서는 조금씩 어긋나는 부분이 있다.
 
이는 현실에선 불가능한 강함을 소유한 “레콘”과 불을 소유하여 마음만 먹으면 어떤 존재든 이길 수 있는 “도깨비”에게 그들의 불공평한 장점을 100% 이용하지 못하도록 각각 페널티를 안겨 주었기 때문에 생기는 오차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
 
2-3> 神의 존재와 법칙.
 
소설의 초반부 동안에는 현재의 시점에서 서로 원한 관계나 영토 전쟁과 같은 사소한 개념에 의해 내용이 전개된다.
 
중반부에 들어서면서 그동안 몇몇 단어로만 존재하던 “신”이 본격적인 화제로 등장하게 되며, 현실세계에서 신의 몸인 “육체”와 신이 현신한 “화신”의 개념이 등장하게 된다.
 
각각의 신은 그들이 주관하는 종족의 성질을 규정하고, 약점을 보완할 수 있도록 선물을 준다.
 
“나가”는 물을 다룰 수 있게 되고, “도깨비”는 불을 다룰 수 있으며, “레콘”은 최후의 대장간에서 최고의 무기를 얻는다.
 
하지만 “인간”에게는 주어진 것이 무엇인지 확실히 나오지 않는다.
 
그것은 “인간”이 그들의 신인 “어디에도 없는 신”과 함께 대원칙을 깨트렸기 때문이다.
 
그 대원칙은 “변화와 흐름”이다.
 
다시 잠깐 소설 내용으로 들어가자면 중반에 신들이 등장하면서 그들의 필요성과 당위성은 “나가”의 2차 대확장 전쟁으로 인한 “인간,레콘,도깨비”의 위기상황으로 설명되어 진다.
 
“나가”가 자신들의 신인 “발자국 없는 여신”을 감금하고, 그 여신의 힘을 훔쳐서 물을 다루는 힘으로 세상의 기온을 바꾸어 북쪽세상으로 쳐들어 왔기 때문에, 다른 신들이 그것을 저지하기 위해 연합군에게 힘을 빌려주기로 한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종반부에서 밝혀지는 대 반전으로 인해 엄청난 충격을 안겨준다.
 
신의 힘을 훔치고, 신을 불러내고, 전쟁을 일으킨 모든 일들이 사실은 “신들의 계획”이었던 것이다.
 
원래 세상은 항상 변화하고 세월은 흘러가야 하는데 1천년 동안 살아있는 인간인 “케이건 드라카”가 인간의 신인 “어디에도 없는 신”의 화신이 되어 죽지 않고 살아있기 때문에 1천년간 세상에는 영토,종족,국가,언어...등의 변화가 없이 정체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인간의 신을 제외한 다른 3명의 신들이 자신들의 종족을 이용해 전쟁을 일으키고 “어디에도 없는 신”의 화신인 “케이건 드라카”를 죽임으로써 세상의 질서를 바로잡으려고 한 것이다.
 
여기서 소설 초반부부터 계속 등장하는 세상의 법칙인 “셋이서 나머지 하나를 상대한다”라는 법칙이 설명된다.
 
소설 전체에 있어서 “나가를 죽이는 데에는 나머지 3종족이 힘을 합쳐야 한다”라는 개념으로 통용되던 말이 사실은 “하나의 신을 죽이려면 나머지 3명의 신이 힘을 합쳐야 한다”라는 뜻이었던 것이다.
 
어쨌든 이런 개념이 “신”들이 존재하게 된 현실세계를 지배하고 있다.
 
2-3> 소설 구성상 특별하게 만들어진 존재들.
 
이런 전세계에 걸친, 신계까지 포함한, 멸망을 향한 전쟁을 설명하는 계획을 실현시키는 데에 있어서, 혹은 긴 역사와 말도 않되는 설정의 허점을 메꾸기 위하여 등장하는 존재들이 있다.
 
“군령자”는 한명의 사람이 여러 혼백을 흡수하여 자신의 몸에서 유지시키는 것으로 이 소설상에 등장하는 단 한명의 군령자는 그 존재만으로도 수많은 말도 안되는 부분을 구체화, 합리화 시키고 있다.
 
“정신억압자”는 동물, 사물에 대한 정신을 억압하고 조작하는 자이다.
 
“하늘치”는 처음에는 신비한 세계의 장식품 쯤으로 등장하였으나, 사실은 제5종족이 세상을 떠나면서 후세의 나머지 4종족에게 남긴 유물이자 선물이자 지식이다.
 
따지고 보면 “천공의 성 라퓨타”“스프리건”의 “노아의 방주” 등등의 개념과 비슷한 것 같다.
 
“도깨비” 라는 종족 자체는 소설에서 꼭 필요한 존재였다.
 
먼저 “불”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에 “물을 조종하는 나가”에 대항하는 주체는 도깨비가 된다.
 
사실 5종족 중에서 神의 화신이 아닌 일반인이 속성의 힘을 사용하는 경우는 “도깨비”“나가” 단 두 종족 뿐이다.
 
그리고 화신을 찾는 일에 있어서 조언을 주고 도구를 주는 행동으로써 일을 간소화 하면서 의구심을 원천봉쇄하는 도깨비의 대장인 “바우”는 다음과 같은 법칙으로 모든 일에 타당성을 부여한다--> “즈믄누리에 사는 바우성주의 결정은 언제나 옳다”.
 
그리고 도깨비만의 도구인 “딱정벌레”는 유일하게 하늘을 나는 이동수단으로써 편리성을 제공하고, “도깨비감투”는 전쟁에서 활약한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부분인데, 매우 처절하고 가슴 아픈 이 소설 상에서 유일하게 웃음을 짓게 하는 유머를 지닌 인물이 바로 “도깨비”이다.
 
그들의 인사말인 “좋은 꿈 꾸셨습니까?” 라는 말은 언제 들어도 정겹다.
 
더불어 동양에서도 한국에만 존재하는 존재로서 도깨비불, 감투, 씨름...등을 언급하여 친근함을 불러 일으킴과 동시에 소설 자체를 매우 특별하게 만들어 준다.
 
이외에 “나늬”“보늬”는 모든 사람들에게 예쁘게 보이는 전설상의 미녀를 말하는데, 사실 이는 전설상의 인물이 아니라 신이 인간에게 준...어느 세대에나 존재하는 한명을 지칭하는 말이다.
 
또한 “용”“용인”의 존재는 이 소설에 등장하는 몇 안되는 비이성적인 존재임과 동시에 열세한 쪽에 주어지는 merit와 같은 것이다.
 
어찌 생각하면 소설 전개상 있어서는 안될 일종의 반칙 같은 캐릭터 들인데, 그들로 인해 소설이 더 풍족해 지고 재미있어 지는 것 또한 사실이다.
 
특히 동물체인 “용”이 사실은 식물에서 자라며 포자생식을 하고, 그 식물의 뿌리를 먹은 사람이 “용인”이 된다는 설정은 굉장히 놀라운 개념이었다.
 
3. 주제에 대하여.
 
3-1> 제목인 “눈물을 마시는 새”의 의미.
 
원래 세상에는 “아라짓 왕국”“키탈저 사냥꾼”이 존재했었지만 나가의 침략과 세월의 흐름 앞에서 사라져 버렸다.
 
“아라짓 왕국”의 역사와 예언은 “판사이 6형제탑”에 쓰여진 선문답 같은 문구들로 나타내어 진다.
 
반면 정치성을 띠지 않은 소집합체였던 “키탈저 사냥꾼”은 활자가 아닌 전설이나 노래등으로 남아있다.
 
 
그중에 4마리의 형제 새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그것이 소설의 제목인 “눈물을 마시는 새”에 대한 설명을 해준다.
 
(이하 분홍색 부분은 소설의 문구를 그대로 인용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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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마리의 형제 새가 있소. 네 형제의 식성은 모두 달랐소.
물을 마시는 새와 피를 마시는 새, 독약을 마시는 새, 그리고 눈물을 마시는 새가 있었소.
그 중 가장 오래 사는 것은 피를 마시는 새요.
가장 빨리 죽는 새는 뭐겠소?"
 
"독약을 마시는 새!"
 
고함을 지른 티나한은 모든 사람들이 자신을 쳐다보자 의기양양한 얼굴이 되었다.
하지만 케이건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눈물을 마시는 새요."
 
티나한은 벼슬을 곤두세웠고 륜은 살짝 웃었다.
피라는 말에 진저리를 치던 비형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다른 사람의 눈물을 마시면 죽는 겁니까?"
 
"그렇소. 피를 마시는 새가 가장 오래 사는 건,
몸 밖으로 절대로 흘리고 싶어하지 않는 귀중한 것은 마시기 때문이지.
반대로 눈물은 몸 밖으로 흘려보내는 거요.
얼마나 몸에 해로우면 몸 밖으로 흘려보내겠소?
그런 해로운 것은 마시면 오래 못 사는 것이 당연하오. 하지만..."
 
"하지만?"
 
"눈물을 마시는 새가 가장 아름다운 노래를 부른다고 하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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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주제는 “제왕론”
 
소설상에서 “왕”이 사라져 혼란에 빠진 인간세계에는 수많은 “제왕병 환자”들이 스스로를 왕이라고 칭하며 세상에 대한 욕심을 드러낸다.
 
그런 수많은 제왕병 환자들을 만나면서 사람들은 도대체 “왕”이라는 것이 무엇이며, 왜 사라졌고, 무엇을 하던 사람인지 궁금해 하게 된다.
 
그때 1천년을 살아온 주인공인 “케이건 드라카”는 이런 말을 한다.
 
-"왕이 도대체 뭐죠?"
-"눈물을 마시는 새요."
-"네?"
-"왕은 눈물을 마시는 새요. 가장 화려하고 가장 아름답지만. 가장 빨리 죽소."
 
그렇다, “왕”은 그 이름과 지위 때문에 가장 빛나고 위대하지만...
 
그가 다스리는 사람들의 눈물을 먹고 살아야 하기에 슬프고...
 
그렇기에 가장 빨리 죽는 것이다.
 
소설 상에서 수백년간 왕이 없던 인간세계에서 “나가”의 제2차 대확장전쟁에 의한 침략을 받게 된 사람들은 “왕”을 필요로 하게 된다,
 
여기서 “인간,도깨비,레콘”의 연합군의 왕으로 추대된 사람은 다름 아닌 “나가”이다.
 
그 “나가”는 자신의 동족들이 세상에 끼치는 해악에 대해 책임을 지는 의미로 반대편인 연합군의 왕이 된다.
 
주변 사람들이 왜 그런 짓을 하냐고...그 사실이 밝혀지면 가장 먼저 죽을 것이라고...
말리지만 그 “나가”는 왕으로서 연합군을 이끈다.
 
동족을 죽이기 때문에 “나가”에게도 미움을 받고...
종족상 연합군의 적인 “나가”이기 때문에 그 사실이 연합군에게 밝혀지면 죽는다...
 
사실 소설 상에서 가장 많이 우는 생명체는 감정을 가진 인간도 아니고, 감성이 풍부한 도깨비도 아니다.
 
변온동물 이면서 불사신이기에 감정이 메마른 "나가"...
"나가""사모 페이"가 흘리는 銀淚(은빛 눈물)가 가장 많이 등장한다.
 
이것은 종족을 뛰어넘어 얼마나 자애롭고 헌신적이며 책임감이 있는 사람이 왕이 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작가의 도발 이라고 볼 수 있다.
 
결국 “눈물을 마시는 새”가 “왕”이 되어 나타내는 의미는 아래와 같다.
 
-왕이기 때문에 가장 빛나고 아름답지다.
-왕은 백성들의 눈물을 마시기 때문에 가장 슬프며 가장 먼저 죽을 수 밖에 없다.
-백성들은 자신의 눈물을 왕이 다 마셔버렸기 때문에 더 잔인해 질 수 있다.
 
후작인 “피를 마시는 새”에서는 삶에서 가장 중요한 피를 마시기 때문에 가장 오래 살지만, 그 고약한 냄새 때문에 아무도 가까이 하려 하지 않는 왕이 등장한다.
 
결국 작가가 “눈물을 마시는 새”“피를 마시는 새”의 두 작품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바는 “왕”이라는 존재에 대한 상반되는 철학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3-3> “화해”를 위한 존재 “나늬”.
 
이렇게 되면 소설의 막바지까지 독자들은 “왕”이 이 소설상에서 차지하는 중대한 분량에 치여서 “왕”에 대한 이야기가 주제의 끝으로 판단하게 된다.
 
하지만 “어디에도 없는 신”이 인간에게 준 선물이 “왕을 찾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은 이미 전제되어 있었다.
 
그 선물이 바로 “나늬”라는 것은 소설의 마지막이 되어서야 밝혀진다.
 
“나늬”종족을 초월한 모든 사람들에게 예쁘게 보이는 전설상의 미인이다.
 
이 “나늬”는 연합군의 왕이 되는 “사모 페이”로 볼 수도 있지만, 작가가 내세운 “나늬”는 언제부턴가 가끔 소설에 나와 엉뚱한 짓을 하여 독자들을 미소 짓게 만든 “데오늬 달비”라는 소녀였다.
 
그녀는 순수하고 선량한 마음을 가지고 있지만 지나치게 단순화된 머리와 행동으로 엉뚱한 행동을 자주 하고, 항상 이리 저리 달리는 일을 좋아하고, 자주 넘어져서 주변 사람들을 조마조마하게 만드는 귀여운 소녀이다.
 
이 소녀는 처음에 연합군의 부위 역할로 활약하다가 “나가”군에 포로로 잡힌 이후에는 어느새 나가들에게 융화되어 오히려 “나가”들이 달비를 걱정하고 따르게 되는 어처구니 없는 일이 벌어진다.
 
그리고 절체절명의 순간에 “나가”들은 그들의 적인 달비를 쫒아가서 죽음을 피하게 된다.
 
결국은 “나늬”의 존재는 모든 종족을 아우르는 친화적 존재임과 동시에, 각 종족의 화해를 이끌어 내는 신화적 존재인 셈이다.
 
소설상에서 주인공들이나 주변 사람들은 “데오늬 달비”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지 않고, 그녀가 “나늬”라는 사실도 모른다.
 
하지만 작가는 그녀를 “나늬”로 내세워 소설에 대한 주관적 주제의식을 명확히 보여주려고 하고 있다.
 
 
 
책을 읽는 동안 생각한 바도 많았고, 더 하고 싶은 말이 많았는데...
 
어쨌든 오랜만에 정신없이 즐겁게 책을 읽게 해준 “눈물을 마시는 새”에 대한 감상평을 마치겠다.
 
이 책 안 읽어 본 사람이랑은 안 놀거니까, 꼭 찾아서 읽어보셈~
 
(위의 사진은 인터넷 상에서 퍼온 사진임을 밝힙니다. 누구신지는 모르지만 원작자께서 기분나빠 하신다면 연락받는 대로 바로 삭제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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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2월 22일 작성된 글입니다).

동호회 모회원분께서 친절히 초대권을 보내주셔서 공평아트센터에서 열리는 "2008 세계보도사진전" 을 다녀왔다.

사진전을 찾아다닐 정도는 아니지만 이전에도 인터넷으로 수상작들을 찾아 보고는 했었고, 올해 AP와 AFP에서 발표된 것을 보고 난 후에는 직접 사진전을 찾아가 보고 싶은 생각이 많이 들었다.

보도사진은 일반적인 예술사진과는 확연히 다른 목적과 주제의식, 표현기법을 가진다.

-아름다운 심미성 보다는 Reality를 추구한다.
-복잡하게 계산하고 찍는 것 보다는 연사를 눌러대서 단 한장의 순간을 잡아내려고 한다.
(따라서 press 기자들은 Canon의 경우 5D 보다는 1D mark 시리즈를 선호할 수 밖에 없다). 
-어설프게 연출된 사진 보다는 초점 안맞고 흔들리더라도 진실한 사진을 찍고자 한다.

 사실 보도사진의 꽃은 "전쟁사진"이고 사진기자의 로망은 "종군기자"이기 때문에 시상식의 수위는 대부분 전쟁사진이 가져가기 마련이다.

 한동안 이라크 전쟁이 소재로 자주 나왔으나 요즘 트렌드는 "아프가니스탄, 팔레스타인, 아프리카" 등의 복잡한 국지전에 대한 리얼리즘이 주가 되고 있었다.

 티켓에 실려있는 그림이 아프가니스탄전쟁 벙커에서 쉬고 있는 미군의 모습을 찍은 것이라는데, 이 사진이 대상을 수상하였다.

 하지만 나는 전쟁사진 보다는 스포츠 사진이나 자연물을 좋아한다.

 특히 National Geographic에서 실린 사진들은 그냥 입이 쩍~ 벌어지게 한다.
(광각 보다는 망원을 좋아하는 내 성향과도 비슷하다).

어쨌든 좋은 분의 친절로 인해 좋은 경험을 했고, 많이 배우는 시간이었다. 

다음에 또 이런 전시회가 열리면 내 돈으로 티켓 사서 가야지.

P.S> 다시 한번 친절하게 티켓을 구해서 우편으로 보내주신 Clien의 이호재님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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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1월 17일에 작성된 글입니다)
(2008년 11월 20일 empas.com의 "블로그 라이프" 선정글입니다).

본인의 친누나인 김선영양은 고등학교때 부터 서클과 동호회를 통해 연극을 해 왔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도 취미로 연극을 계속해 왔는데, 이렇듯 연극을 사랑하는 아마츄어 사회인 들이 모여 만든 극단이 바로 "생활 연극 네트워크"이다.

서울 양재동에 연습실과 소극장을 갖춰놓고 연습생이나 교육생을 받는 등, 나름대로 체계가 잘 갖추어져 있고 현재 5기까지 배출이 되었다고 한다.

어쨌든 땡이(본인의 누나 애칭)도 대학 졸업한 후에 연극을 계속할 곳을 찾다가 이곳을 발견하고 회사를 다니면서 벌써 몇년째 활동 중이다.

근데 3개월 후에 땡이가 미국 유학을 가게 되면서 이번 공연이 마지막 공연이 될 지도 모르기 때문에 굳이 찾아가서 사진을 찍어주게 되었다.

이번 공연은 2008년 11월 15~16일 양일간 양재동의 <생연 스튜디오>에서 벌어졌고~
2시간 30분 동안 6개의 단막극을 보여주는 "단막극 페스티벌"이었다.

기승전결 없이 6개의 작품이 차례대로 공연되다 보니까 흐름이 끊기고 지루한 감이 없지 않아 있었지만 매우 재미있게 보았다.

그럼 연극에 조예가 깊지는 못하지만 간단히 평을 해 보겠다.

<이 세상의 마지막 밤>

-극본: 레이브래드 버리.
-출연: 이승하, 김선영.
-평가: 극본★★★★ 연기★★★★
-단 2명이 부부로 등장해 지구상의 마지막 밤을 보내는 장면부터 시작한다.
종말을 맞이하기 전에 불안해 하는 개인의 심리와 뭔가 의미있는 것을 나누고 싶은 부부간의 사랑...그리고 약간의 유모어가 공존하는 잘 만들어진 극본이었던 것 같다.
본인의 누나가 여주인공으로 나왔는데, 사실 나는 누나가 연극 공연하는 것을 처음 보았다.
근데 매우 침착하게 잘 하는 것 같았고, 벌써 10년 넘게 하다보니 배우 티가 나는 것 같았다...
2명의 대화가 전부인 공연에서 호흡도 잘 맞고...^^

<기억>

-극본: 박연주.
-출연: 이나경, 박희범, 이은미, 이하나
-평가: 극본★★ 연기★★☆
-극본 자체가 노산, 기형아, 낙태...등의 자극적인 소재를 가지고 있는데다가 scene의 전환이 너무 갑작스럽고 행간에 생략된 부분이 많아서 이해가 어려웠다.
뭔가 작가가 훌륭한 소재로 대단한 작품을 쓰고 싶었으나 너무 평이한 흐름이 나온데다가 글쓰기 능력의 한계인지 매끄럽지 못한 연결이 눈에 많이 거슬렸다.
또한 그런 자극적인 경험과 기억에 괴로워하는 연기를 해야 하는 배우들도 자연스럽지 못하게 경직된 상태의 히스테릭한 모습들로 보여서 아쉬웠다.

<무엇이 그들의 입을 열게 했는가>

-극본: 정슬기.
-출연: 이지온, 김인수, 인은미, 강주현, 김성수.
-평가: 극본★★★★ 연기★★★★☆
-가장 재미있게 본 작품이다.
4명의 주요 등장인물이 나와서 설전을 벌이는 것이 플롯인데, 여기서 등장인물이 추가될 때 마다 새로운 화두가 제시되고 그것에 대해 각자의 의견을 주장하며 말다툼을 하는 것이다.
이때 4명의 개인이 서로 일관된 우호, 적대 관계를 유지하지 않고 상황에 따라 적의 의견에 동조하고, 친구의 의견에 반대하며 비난하는 아이러니한 상황 연출을 통해 웃음을 자아낸다.
극심한 감정의 고조와 갈등의 표출이 있지는 않지만 이러한 호흡이 잘 맞는 “상황극” 성격의 연극을 나는 좋아한다.
영화에서도 “웰컴 미스터 맥도날드”나 “박수칠 때 떠나라”같은 이런 형식을 차용한 영화들을 재미있게 보았었고, 사실 연극이 원조인 “라이어”라는 작품도 영화로 매우 재미있게 보았다.
어쨌든 배우들도 대사와 호흡에 대한 연습을 많이 했는지 그 많은 대사를 실수 없이 잘 해내었고, 4명이서 서로 어긋남 없이 훌륭한 호흡을 보여주어서 매우 만족한 작품이었다.

<목각>

-극본: 김부용.
-출연: 윤승훈, 이고운.
-평가: 극본★★★ 연기★★★★
-아마도 가장 연극다운 연극이 아니었나 싶다.
조각가로 나오는 남자 혼자서 극의 95% 이상을 끌고 나가야 하는 매우 부담되는 연극이었다.
하지만 흐름의 설정을 보이지 않는 기자와 인터뷰 하는 형식을 취해서 부드럽게 화제가 이어지게 했으며, 주인공이 방대한 양의 대사를 혼자 이끌어 가면서도 중간 중간에 관객의 웃음을 이끌어 내는 상황적 유모어를 하나씩 던져 주어서 재미있게 볼 수 있었다.
다만 후반부의 갈등 표출에 있어서 약간의 개연성 상실과 함께 부자연스러운 연결로 인해 배우의 좋은 연기가 조금은 손상된 느낌이다.

<낙원>

-극본: 이하진.
-출연: 박희범, 최선영.
-평가: 극본★★★★★ 연기★★★★☆
-이번 단막극 페스티벌에 상을 준다면 “극본상, 작품상, 여우주연상” 은 이 작품이 받아야 할 것이다.
일단 극본 자체가 매우 독창적이고 완성도도 높았으며 훌륭했다(땡이도 작가를 “천재”라고 표현할 정도로 극찬했다).
전쟁이 일어난 세상에서 작은 동굴로 도망쳐와 숨은 2명의 남녀가 주인공인데, 안전한 공간으로서의 동굴이 밀폐된 공간으로서의 공포감으로 발전하여 사람을 미쳐가게 만드는 광기를 그린 작품인데 매우 적절한 전개와 연출에 덧붙여서 주인공들...특히 여자 주인공의 미친 연기가 매우 훌륭해서 감탄했다.
그리고 마지막의 반전에서는 소름이 돋았다...강추!!!

<시들어버린 여자>

-극본: 박연주.
-출연: 임진, 김경희, 김인수.
-평가: 극본★★☆ 연기★★★★
-피날레를 장식하는 작품 답게 무대 장치나 스케일도 크고 가장 많은 등장인물이 등장한 작품이었다.
특히 여주인공을 맡은 나이든 여가수 역의 배우의 노래와 연기는 정말 훌륭했다.
아마츄어 답지 않은 관록과 연륜이 감정을 타고 전해진달까...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극본 자체는 너무 실망이었다.
시작부터 시작해서 너무 뻔한 갈등 구조와 제목에서부터 느껴지는 주제, 결말은 연극 자체에 대한 흥미를 빼앗아 버렸다.
매우 지루해진 연극에서 그나마 관객의 관심을 잃지 않게 한 것은 역시 배우들이었다.
약간은 어색한 듯한 연기의 조연, 오버하면서 섹시함을 뿌리는 젊은 여자, 과장된 폭력과 계산된 웃음은 그나마 지루함을 덮어둘 수 있는 요소가 되었달까?



뭔가...
잘 알지도 못하는 주제에 이것저것 욕만 해 댄 것 같네...

어쨌든 오랜만에 연극을 보게 되어 즐거웠고, 무엇보다 누나 땡이의 연기하는 모습을 볼 수 있어서 좋았다.

수고했다, 땡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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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9월 15일 작성된 글입니다).
(2008년 9월 empas.com에서 Best review로 선정되어 5만원의 상금을 받은 글입니다).

내가 맹목적으로 좋아하는 작가 중의 한명인 “가네시로 카즈키”의 신작소설이 8월말 발간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어린 시절 TV에서 하는 만화영화 “메칸더V"를 보기위해 설레이는 마음으로 땀에 흠뻑 젖는 것도 모르고 한여름 태양빛 아래를 미친 듯이 뛰어 집으로 향하던...

머릿속은 단순히 단 한 가지 생각과 희망에 가득 차 주변의 풍경 따위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고 달려갈 수 있었던...

바로 그 시절로 돌아간 듯한 느낌이었다.


나름대로 “상식”이라는 “개념”을 탑재한 문화체험자로서 “좋은 영화는 극장에서, 좋은 책은 손에 들고”라는 원칙을 세우고 있었다.

그것은 조금 더 발전하여, 좋아하는 감독이 만들고, 좋아하는 배우가 등장하는 영화는 개봉일날 극장에서 봐 주고, 존경하고 사랑하던 작가의 책은 서점에서 초판본 정도는 구매해 주어야 한다는 진일보한 적극적 주동 참여의식의 완성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가슴떨리는 설레임을 안고 향한 근처에서 가장 큰 서점에서 “영화처럼”은 찾아볼 수 없었다.

작년에 섬에 있을 때 기다리던 책이 서울에선 이미 발간되어 베스트셀러인데 전남에서 가장 크다는 광주에는 아직 책이 풀리지 않아 보지 못해 안달한 경험이 있었다.

근데 지금은 서울에 있는데도 오프라인에서 좋아하는 책을 사서 보기는 여전히 힘들고, 결국 온라인으로 구매하는 바람에 택배 배송에 필요한 2일의 기간동안 또 안달복달 기다릴 수 밖에 없었다.

사설이 길었다.

이번 “영화처럼”은 2년만에 나온 “가네시로 카즈키”의 신작이다.

그간 그의 소설은 “시리즈” 개념은 아니었지만 “더 좀비스”라는 청소년 단체가 주인공이 되어 사건을 해결해 나아가는 모험 활극식의 작품들이 연이어 발표되어 왔었고,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그의 팬들이 그런 흐름에 익숙해져 있었기 때문에 사실 이번 작품도 그런 통쾌한 활극이 아닐까...하는 기대감과 함께또 그런 내용이겠지?”라는 약간의 푸념 또한 가지고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번에 발표한 소설은 독자적인 내용을 가진 5개의 이야기가 담긴 책이었다.

마치 그의 초기작인 “연애소설”처럼 각각의 이야기가 각자 살아 움직이는 약동감이 느껴지지만 그것이 유기적으로 맞물려져 있어 흐름이 끊기지 않고 책의 말미를 향해 거침없이 손이 움직여지게 하는 마력이 있다.

소설은 제목이 말해주듯이 “영화”와 관련된 내용을 담고 있는데, 직접적인 영화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각 소제목으로 제시된 영화와 관련된 테마들이 다양한 인간 군상들의 삶을 통해 그려지고 있는 것이다.

제목으로 등장하는 영화들을 직접 본 경험이 있다면 등장 인물들이 처한 상황과 생각하는 바, 행하는 행동, 이야기의 결말 까지 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고, 보다 깊이 빠져들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이 꼭 중요한 것은 아니다.
앞서 말 했듯이 이 책은 영화감상문이나 비평책이 아니라 소설책이기 때문이다.

다만 5개의 이야기가 말하고자 하는 테마가 다르므로 최소한 그것이라도 catch하려고 노력해 보고 역발상으로 아직 보지 못한 그 영화가 무슨 내용일지 추측해 보는 것도 재미있는 일일 것 같다.

아니면 나중에 그 영화를 찾아서 보고 책의 내용을 곱씹어 보는 것도 좋을 듯 하고...

무엇보다 5개의 이야기를 관통하여 결말을 멋지게 장식하는 “로마의 휴일”은 꼭 찾아보길 권한다.

정말 “추억, 화해, 결말” 이런 것들을 잘 끝맺음 하기에 좋은 영화를 고른 것 같다.

책 내용에 대한 부분은 직접 보고 느낀 사람과 술 한잔 하면서 나누고 싶은 얘기이므로 별로 글로 남기고 싶지는 않다.

기다려온 무언가에게서 기대이상의 보답을 받게 된 흐뭇한 기분을 “숙제하는 듯한 독서감상문”을 쓰느라 망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대신 책 소개 홈페이지에서 퍼온 글로 대신할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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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하나 <태양은 가득히>
“역시 주인공은 아버지가 없는 게 좋아!”
사랑보다 진한 두 친구의우정이야기

이야기 둘 <정무문>
“사람에게는, 하늘이 정해 준 역할이란 게 있는 거야.”
남편의 자살 후 세상과 싸우기로 하는 아내의정의이야기

이야기 셋 <프랭키와 자니>
그녀가 내 뺨을 후려 갈겼다. “너, 나 좋아하는 거니?”
탈출을 꿈꾸는 두 고등학생의사랑이야기

이야기 넷 <페일 라이더>
<툼 레이더>의 안젤리나 졸리인가? 하지만 헬맷 속에서 나타난 건,
둥글넓적한 얼굴에 뽀글뽀글 파마를 한 중년 아줌마였다.
오토바이와 가죽 재킷으로 무장한 아줌마의 화끈한복수이야기

이야기 다섯 <사랑의 샘>
지금은 실패해도 좋아. 정답을 알아낼 때까지 우린 할머니를 위해
영화를 상영할 거다. 마침내 소망이 이루어지게 되는 그 날은,
감동적인 영화의 한 장면이 우리 집안에도 찾아왔으면 한다.
할머니를 위해 뭉친 손자들의웃음과 감동’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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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덤으로 내가 밑줄 친 부분도 덧붙일까 한다.

-나는 그날 이제 막 사귄 친구를 잃었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아직 어리고 자신의 상처를 품기에도 벅찼기 때문에 같은 상처를 안고 있는 상대에게 말을 건넬 여유가 없었다. 게다가 우리는 어중간한 구원의 말은 원하지 않았다. 서로의 상처를 덮어줄 수 없다면 아파하는 것을 보지 않아도 되도록 그의 곁을 떠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극장의 어둠 속에서 우린 재일 조선인도, 재일 한국인도, 미국인도 아닌 다른 인간이 될 수 있지. 그러니까 음...이런거야. 불이 꺼지면 이번에는 또 어떤 이야기를 볼 수 있을까, 이번에는 또 어떤 등장인물을 만날 수 있을까, 그런 기대감이 우리의 머리와 몸 속에서 점점 부풀잖아. 그러다 불이 완전히 꺼지면 “팡!”하고 터져버리지. 그때 우리란 인간도 함께 터져서 없어지고, 어둠 그 자체가 되는거야. 그 다음은 스크린에 비치는 빛에 동화되면 그만이지. 그럼 우린 스크린 속에서 움직이는 등장인물이 될 수 있어, 개똥같은 현실에서 잠시나마 벗어날 수 있는거지. 그래서 극장의 어둠 속에 있을 때는 신나고 가슴이 설레는 것 아닐까?

-보호자를 놓쳐버린 어린 미아는 처음에는 불안해 어쩔 줄 모르다가 엉엉 울면서 보호자를 부르고, 그러다 끝내는 자신을 알지도 못하는 장소에 내버려 둔 것을 원망한다. 그리고 마침내 나타난 보호자에게 그 원망을 터뜨린다. 그런데 아무리 기다려도 보호자가 나타나지 않으리란 것을 아는 미아는 어쩌면 좋을까? 간단하다. 당황하지 말고, 울지 말고, 원망도 하지 말고, 혼자서 살아가기 위해 한걸음 내디뎌야 한다.

가을을 맞아 책 한권 읽어보고 싶다면 이 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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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6월 28일 작성된 글입니다).

“마이클 크라이튼”은 소설과 영화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한번 쯤은 들어보았을 법한 이름이다.

그의 많은 작품들이 베스트셀러로 자리잡고 있고, 영화화 되었으며, 그 본인도 영화 감독을 겸하고 있다.

그는 하버드 의대를 졸업하고 캠브리지 대학에서 인류학 강의도 했으며, “떠오르는 태양, 대열차강도, 쥬라기 공원”등의 소설을 히트시키고, 몇몇 영화는 직접 감독까지 맡아 개봉시켰던 다재다능한 인물이다.

살짝 생각해보면 인터넷 용어로 흔히 부르는 “엄,친,아(뭐든지 잘 하는 엄마 친구 아들)”같은 캐릭터가 아닐 수 없다.
샘이 나기도 하지만, 어쩔 수 없이 패배 인정!

그렇지만 그가 하버드 의대를 졸업하고 의사의 길을 가지 않았던 이유에 대해선 100% 공감을 하고, 그가 현재의 길을 가는 것이 정말 훌륭한 선택이었다는 점에서 박수를 보낸다.

“의학은 상상력이 결핍되어 있는 학문이야”

그래서 그는 의학, 생물학, 과학 등 다양한 분야에 대한 호기심을 전문지식을 인용하여 풀어내고 거기에 상상력을 덧붙여서 범인은 꿈에서도 볼 수 없을 법한 기발하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만들어 내었다.

무척 재미있게 읽은 책이므로 오랜만에 “번호 매기기 신공”을 사용하여 주관적인 심층해부를 해 보도록 하겠다.

1. 온난화의 비밀, 과연 Fact인가?

이 소설은 발매 당시부터 미국을 비롯한 세계 전역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다.

비록 소설이라는 픽션 문학이지만 대놓고 일반인 및 전문가들의 상식인 “지구 온난화”를 구라라고 까대었던 것이다!!!

이 소설의 시작이 되는 가설과 발단이 되는 “지구 온난화 구라설”은 “바누투 섬 소송”이라는 법정소송에서 소스를 얻는다.

저~~~기 멀고 먼 바다에 보통 사람들은 듣도 보도 못한 섬나라인 “바누투”라는 섬이 있는데, 지구 온난화로 해수면이 상승되면 이 섬은 바다에 잠기게 되고 사람들은 갈 곳을 잃게 되므로 온난화의 주범인 산업계, 경제계에 책임을 묻고 온난화를 조장하는 행위를 중지시켜야 한다는 요지의 소송이다.

이 소송은 자금을 대던 억만장자 재벌이 행방불명되고 시간이 흐르면서 소송이 흐지부지 되어 버렸는데, 소설은 이 부분에 상상력을 가미하여 풀어가고 있다.

그 사라진 재벌은 사실 지구 온난화는 전혀 일어나고 있지 않으며, 자신이 극단적 환경론자들에게 속아서 거짓 소송과 환경운동에 자금을 대고 있다는 알게 되어 스스로 그 음모를 파헤치고 진실을 밝힌다는...미국식 영웅주의 사상 및 “노블리스 오블리주” 의식을 보여주는 내용이다.

사실 1970~80년대 산업화를 지나면서 환경 오염이 심해진 것은 사실이고, 학계나 언론계에서도 다양한 견해로 지구 온난화를 주장하면서 위기감을 고취시키고 있다.

때문에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경로로 정보를 접하는 일반인들은 “아...정말로 지구 온도가 상상하고 우린 죽겠구나!!!”라는 생각을 가지게 된다(나도 그랬다!!!).

하지만 작가는 자신의 가설(온난화 구라설)을 입증하기 위해서 소설상에 진짜 전문가인 케너 교수를 등장시키고 그를 자신의 대변인으로 삼아 각종 객관적 자료를 보여주며 “자, 보라구! 온난화는 거짓말이잖아!!!!”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단순한 SF소설로 치부하기에는 너무 전문적이고 공증받은 자료들이 각종 Graph와 통계자료를 통해 소설 지면에 등장한다.

모두 참고 문헌, 논문, 기사의 기록 및 날짜, 저자가 각주로 표시되어 있는데, 뭐 나야 일반인이라 이런 고급 정보를 선별해 낼 안목이 없지만...저자는 영국 BBC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소설 내에 인용된 자료들은 모두 사실” 이라는 내용의 발언을 했다.

그리고 그 내용(소설에 언급된 부분의 자료들)을 보면 진짜로 지구는 간빙기와 빙하기의 사이에 있어서 큰 온도변화가 없으며, 경미한 온도 상승 및 해수면 상승은 최소 2000~4000년 전부터 있어왔던 변화 추세에서 벗어나지 않는 일반적인 허용 범위에 속하는 변화이지 최근 100년간의 산업화로 인한 결과가 아니라는 말을 직접적으로 해 대고 있다.
자...이쯤 되면 떡밥을 물지 않을 사람은 없겠지?

2. 결국 주제는 “음모론”.

소설 상에서 작가의 전지적 대변자인 “케너 교수”는 주위의 수많은 바보들(일반적인 온난화 상식을 가진 사람들)과 계속 싸우고 설득하면서 위와 같은 자료들을 보여주어 나중에는 살짝 “어이, 그냥 작가가 논문 하나 쓰는 편이 낫지 않아?”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어쨌든 작가와 케너 교수는 일반인들이 이런 잘못된 정보에 속아 아무것도 모른 채 조종당하고 있는 현실을 냉정하게 비판하고 있다.

먼저 Tool적인 부분부터 비판하는데, 매스컴을 통한 정보 전달 체계의 한계성과 조작 가능성에 대해 언급한다.

일반인들은 거대한 매스컴 그룹의 지속되는 정보 주입에 쉽게 설득되고 세뇌되어 지는데, 이는 일반인들의 정보에 대한 감수성이 지극히 일방적이라는 전제가 사실이기 때문이다.

소설에서 케너 교수와 언쟁하는 많은 사람들, 일반인을 포함한 일부 환경에 관심이 많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은 기껏해야 “나는 몇몇 환경단체에 가입하여 활동하고 있고, 일반 매체가 아닌 전문 저널도 몇 개 구독하고 있다구~” 라는 자기변명으로 자신의 수동적인 정보 수용의 현실을 얼버무리려고 한다.

그렇다면 그런 수준의 정보들이 모두 조작되고 누군가가 조종하는 것이라면 어쩔 것인가???
바로 이것이 이 소설의 제목인 “공포의 제국”의 의미인 것이다.

지구 온난화나 쯔나미에 의한 자연재해가 “공포”가 아니라 이러한 현실이 바로 “공포의 제국”을 만들고 있다는 것이 저자의 생각이고 주장인 것이다.

그간에 다양한 음모론 소재의 영화, 드라마, 소설등에서 등장하였던 단골 소재는 “세계는 일부 강대국, 부자, 대기업 들의 힘에 의해 움직이고 있다” 였다.

실제로 요즘 문제가 되고 있는 “기름값 폭등, 제3의 오일쇼크” 사례가 가장 대표적인 설명이 되겠다.
(이 부분부터는 소설과 직접적인 연관 없이 그냥 본인이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이야기이니 너무 마음 써서 듣지는 마셈~^^).

사실 유가는 가을~겨울까지의 3/4~4/4분기에 오르기 마련이다.
다들 추운 겨울을 맞기 위해 기름의 수요가 늘어나니 자연히 기름값이 오르는 것이다.

이는 기존의 석유 소비량(산업,교통등)에 난방 등의 추가요소가 반영된 것이겠지.

그런데 지금 유가가 오르는 시점은 1/4~2/4분기이다.
더운 여름으로 가는데 기름값은 왜 오르는 것인가?

뭐, 에어콘을 틀 전기를 만들기 위해서라고 따진다면 할 말은 없지만... ㅡ.,ㅡ

2007년 전반기에 기름 가격은 배럴당 50달러 정도였다, 그것이 2007년 후반기에 100달러 돌파...
사실 이 정도 까지는 시기상으로 맞물려 “조금 과하게 올랐다...”정도로 넘어갈 수 있는 상승분이었다.

하지만 겨울을 지나 여름으로 가는 2008년 상반기에 기름값은 내리지 않고 계속 올라 어제는 화석연료 사용 역사상 최초로 배럴당 140달러를 돌파하였다.

이건...상식적으로든 학문적으로든 설명이 안되는 현상이다.

지난 1년간 화석연료 사용량이 천문학적으로 늘지도 않았고, 매장량이 눈에 띠게 줄은 것도 아니고, 지구 인구가 폭발적으로 늘어난 것도 아니다.

결국 2007년 미국 주택 경기 침체, 세계 금융계 위기로 인해 원래 있던 자리를 떠난 자본가 및 투기세력들이 2008년 초반에 곡물, 원자재로 장난을 치다가 원유까지 손을 대어 투기 장난질을 치는 것이라고 밖에 결론이 안난다.
억측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타당한 예로써 현재 전세계에서 미국 달러 가치는 개폭락 중인데 이상하게 한국에서만 1000원이 넘어 달러가 강세를 보이고 있다.

이는 멍청한 한국 정부와 기업들이 시장경제에 손을 써서 통제를 하고 있다는 말 로밖에 설명이 안된다.
전세계에서 한국만 이럴 이유가 없지 않나?
-----------------(여기서 사설은 끝)---------------------

어쨌든 이런 식의 음모론이 대세였는데, 작가는 소설상에서 PLM 이라는 용어를 등장시켜 이를 설명한다.

PLM
Politico-Legal-Media Complex 의 약자인데, 편역자는 이를 “정치사법언론 복합체”라고 번역해 놓았다.

쉽게 이해하면 정치세력, 재벌 및 기업, 언론의 3명의 사회 기둥들이 짜고 치는 고스톱에 전세계 일반인들이 놀아나고 있다는 뜻이다.

소설 상에서 직접적인 조작 주체는 환경단체인 NERF이지만, 이를 도와주는 것은 국가와 언론이다.

국가
냉전체제, 핵폭탄 등 국민의 관심을 돌릴 만한 위기를 계속해서 조장할 강력한 필요가 있는데 1990년대 중동 전쟁 및 2001년 9.11테러 이후 환경문제만큼 좋은 소스가 없으니 당연히 동참한다.

그리고 돈에 움직이는 매스컴들은 국가의 필요와 환경단체의 자금에 휘둘려 계속해서 “지구 환경 위기”, “쯔나미, 허리케인 대재앙” 등의 뉴스를 내보내어 위기 조장에 가장 큰 역할을 한다.

(작가는 대형 매스컴의 “환경 위기, 대재앙, 극단적 위험...”등의 자극적 단어가 등장한 것은 1970,80년 이후부터이고 그 빈도가 급격이 증가한 것은 최근이라는 통계자료를 인용한다).

어쨌든 이러한 “환경 위기 음모”의 주도 세력인 환경단체는 계속해서 힘을 증가시키고 자금력을 얻으려면 멍청한 부자들에게 기부금을 받아야 하고, 일반 시민들의 지지를 받아야 하는데 환경 위기에 대한 문제 제기는 20년 전부터 해 왔는데 결정적인 눈에 띠는 위험이 없기 때문에 역치값이 높아져 있던 일반 시민들은 환경 문제에 관심을 잃어 가게 된다.

그래서 극단적 환경 단체인 NERF는 과학계와 환경계를 조정하여 사람들이 모이는 공원에 인위적인 허리케인,돌풍,번개를 치게 한다던가, 해저 지층면에 폭탄을 설치하여 인공 쯔나미를 일으키려는 음모를 세우고, 이를 실행에 옮긴다.

그리고 멍청한 자금줄 재벌이었던 “조지 모턴”회장과, 역시 멍청했던 변호사 “피터 에반스”, 그리고 유일한 냉철한 전문가이자 전지적 작가로서의 분신인 “케너 박사”가 이 환경단체의 음모를 파헤치고 막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음모 스릴러 소설에 액션의 요소가 가미되게 되는 부분이 여기부터이다^^.

3. 지나친 Stereo Type 설정.

너무 똑똑한 작가는 독자를 가르치려 든다
.

이 소설은 특성상 과학적 지식과 통계적 증빙 자료들의 언급이 많은데, 이것을 얼마나 길지 않고 지루하지 않게 효율적으로 독자에게 전할 것이냐...

이 부분들을 빼자니 작가의 가설을 뒷받침 하는 논거가 빈약해지니 소설의 주제가 망가지고...
길게 끌고 자주 내보내면 지루해 질 텐디...

그래서 작가가 결정한 것은 “인물의 전형성”으로 지루하고 길어질 부분을 설명하자는 것이다.

이 소설에는 너무나 특색이 확실한 전형성을 질~질~ 흘리는 등장인물들이 몇 명 존재한다.

<3-1> 케너교수.
-작가 자신이자 모든 사실, 자료에 대해 알고 있고 설명하는 대변자.

소설 전개상 부딪히게 되는 모든 사람들에게 냉소적 비웃음을 날리며 노트북을 가지고 각종 자료를 제시하며 설득한다.

마치 “이거 봐, 병신아...이래도 안 믿을래?” 라는 행동을 여러 등장인물에게 반복하느라 피곤할 것 같다^^.

<3-2> 조지 모턴 회장.
-바보였다가 개화되는 조연 인물.

소설의 주요 문제인 “바누투 소송” 및 환경단체 NERF에 돈을 대는 재벌이기 때문에 등장이 필연적인데, 막연한 환경의식 때문에 환경단체 기부 행위등을 하지만 케너 교수등을 통해 현실을 알고는 NERF의 음모를 막는 데 온 힘을 다한다.

전형적인 미국 시민 의식과 “노블리스 오블리주”를 실천하려고 발버둥 치는 인물.

전세계를 돌아다니는 소설 전개상 모험을 하는 주인공 일행에게 제트기, 헬기 같은 이동편과 장비 구비등에 어려움이 없도록 하여 “재벌이 도와주니까 이런 일이 가능하다, 진행상의 문제로 테클 걸지 마라!!”라고 주장하여 지면 낭비를 막아주는 돈줄 역할도 꼭 필요하기에 등장하게 된다.

<3-3> 변호사 피터 에반스.
-실질적인 이 소설의 주인공이다.

조지 모턴 회장의 변호사였는데, 그의 실종 후에 음모에 휘말리게 되면서 케너교수와 함께 NERF의 음모를 막기 위해 모험에 동참하게 된다.

“케너 교수”
직접적으로 작가의 생각을 전하는 캐릭터라면, “피터 에반스”일반인의 교화와 변화를 원하는 작가의 주제 의식을 대변하는 캐릭터이다.

초반에는 자신이 여태까지 알고 있던 온난화에 대한 지식을 절대적으로 믿고 그 선입견에서 벗어나지 못하나 모험 도중에 차츰차츰 현실에 대해 알게 되고 행동에 나서게 된다.

이런 주인공의 순탄한 생각 변화가 독자 입장에서는 낯 뜨거운 것이 사실이지만, 소설 전개상 작가의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 것이라 예상한다.

그리고 그의 이러한 특성 때문에 환경단체인 NERF측은 그를 데려다가 “일반인의 온난화 의식을 묻는 인터뷰”라는 형식으로 설득 작업을 하고, “케너 교수” 측에서도 다양한 자료를 내보이며 직접적인 설득을 한다.

한마디로 “피터 에반스”의 존재로 인해 NERF“케너 교수”대별되는 상반되는 논리와 윤리를 가진 단체들이 자신의 입장과 생각을 독자에게 전할 수 있는 창구가 되는 것이다.

<3-4> NERF 이사장 닉 드레이크.
-전형적인 악인 캐릭터.

단순하게 못된 놈이 아니라 음모 스릴러 소설에서 자주 등장하는 “자신의 논리가 절대 옳다고 믿는” 잘못된 신념에 가득찬 캐릭터이다.

자신의 생각에 동참하지 않는 사람을 바보 취급 하는 경향이 있으며, 그들을 교화시키기 위해서는 인적, 물적 희생과 함께 자신의 주장의 절대 가치인 “자연 환경”마저도 저지르는 꽉 막힌 나쁜 놈이다.

4. 소설이냐 시나리오냐?

이 소설은 전개상의 특성 때문이기도 하지만 모든 차례가 (지역-시간)으로 챕터 구분이 되어 있다.

동일 시간에서도 인물 및 Scene 전환이 빠르며, 이는 커다란 4개의 (기-승-전-결) 및 (발단-전개-위기-절정-결말)의 큰 구성을 벗어나지 않아 굉장히 밀도있고 완성도 높은 짜임새를 만들어 내고 있다.

이 책을 빌려준 사람도 그런 말을 했지만, 이 소설은 어쩌면 발간 전부터 “영화화를 예상하고 쓴 시나리오” 성격의 글이 아닐 까 싶다.

이전에도 그의 많은 작품이 영화화 되었고, 그가 직접 감독을 하여 영화로 만들어 개봉한 소설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소설의 영화화가 의심되는 와중에...

굳이 필요했을까...
싶은 주인공 일행의 위기 상황과 액션 장면 등장은 잠깐씩 실소를 머금게 하여 긴장도를 떨어뜨리기도 한다.
(자세한 언급은 안할테니 소설을 보셈~).

영화화 한다면은 너무 전문 자료의 나열과 인물간의 대화 위주라 지루할 수 있을 테니...이쯤에서 한방 빵~ 하고 터트려 주는 액션이 있어야 할 것 같은 시점에서 어김없이 주인공들은 위기를 맞이한다.

뭐, 그것이 더 큰 재미를 위한 것이니 큰 불만은 없다.

어쨌든 어느덧 글을 쓰다보니 벌써 7장이 넘서서고 있다.

이렇게 쓸데 없이 길어질 까봐 “번호 매기기 신공”을 쓰고 싶지 않았는데... ㅡ.,ㅡ

이런 만연체의 글을 누가 끝까지 읽겠냐마는...
무지 재밌는 소설이니 꼭 읽어들 보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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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4월 14일 작성된 글입니다).

나는 환타지와는 잘 맞지 않는 것 같다.
아마 세계관의 차이를 순수하게 받아들이지 못하기 때문인 것 같다.

나 같은 성질 더러운 독자는 하나하나 꼬치꼬치 따기기 시작하고, 그것에 갇혀서 소설 자체로서의 재미를 놓쳐버리는 것이다.
(심지어 나는 “반지의 제왕”을 소설로 보다가 1권에서 집어던지고, 영화관에서 “왕의 귀환”을 보다가 졸았다...물론 “해리포터” 같은 앞뒤없는 개 쓰래기는 증오한다!!!)

이런 선입견과 경험들 때문에 환타지 작품을 손에 들기 힘들었는데, 그럼 사람들은 이렇게 묻는다 “근데 무협지는 왜 봐?”

사실 무협지는 환타지와 같이 창작에 의한 허구성이 플롯을 형성하는 문학이지만 기본적으로 무협의 세계관에서는 거대한 정형성이 울타리를 형성하고 있기 때문에 아무리 황당무계하더라도 그 한계를 넘는 일은 없다.

하지만 환타지의 세계는 작가의 무한한 상상력으로 세계를 창조할 수 있지만, 그만큼 다양하고 말도 안 되는 세계들이 통일성 없이 여기저기 등장하기 때문에 그것이 웬만큼 완전하고 앞뒤가 맞지 않으면 나같은 보수적이고 깐깐한 독자에게는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이영도씨도 이후 작품인 "눈물을 마시는 새“, ”피를 마시는 새“ 등은 매우 독특한 세계관을 보여주고 있고 매우 재미있다.)

무협이든 환타지든 순수문학이 아닌 장르문학이라고 보았을 때, 나라는 개인이 싫으면 안보면 되는 일이니까 별로 좋고 나쁨을 논하고 싶지는 않다.

이번에 보게 된 “드래곤 라자”는 앞서 읽은 몇 개 안되는 환타지처럼 “안보면 바보가 되는”수준의 명작이라고 여기저기서 추천을 해서 마음이 동하고 있었는데, 얼마 전에 일본에서 50만부가 넘는 판매고를 올렸다고 매스컴에 기사로 나타났기에 마침 시간이 많은 요즈음에 읽어보기로 마음을 먹은 것이다.

사실 “이영도”라는 작가에 대해 미리 알지도 못했기 때문에 그의 첫작품인 “드래곤 라자”로 그가 창조한 세계에 첫발을 내딛는 것은 잘한 일 같다.

“드래곤 라자”는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상상이 가능한 환타지의 세계에서 나름대로 정형성을 보이는 보수적 환타지인 것 같다.

기사와 마법이 등장하는 세상과,
드래곤, 엘프, 드워프, 오크...등 그 세계의 구성원,
정의가 존재하는 스토리.

기본적인 환경은 서구권과 일본 환타지에서 만들어낸 정형성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구성이다.

하지만 그의 작품이 많은 인기를 얻었을 뿐만 아니라 칭송을 받는 이유는 “이영도”식 세계관이 그 세계를 관통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1. 소영웅주의의 활용과 배제.

이 소설의 주인공인 “후치 네드발”은 시골에서 양초를 만드는 초장이집 아들이다.
별로 잘난 것도 없고, 보통의 시골 사람들처럼 작은 세계에서 그만큼의 지식과 안목을 가지고 사는 청년이다.

그런 그가 마을의 위기를 풀어내기 위하여 영주 대리인 “카알”과, 경비대장 “샌슨”과 함께 떠나는 작은 출발이 소설의 시작이다.

하지만 그들의 행보는 전쟁의 가운데에서 국가의 위기를 구하고, 현재의 세상을 만들어낸 전설의 인물들과 만나게 되면서 세상과 인간의 앞날을 위해 거대하고 위험한 모험을 하게 되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여기서 당연히 奇緣과 奇寶가 등장하여 주인공에게 힘을 주고, 그가 성장하면서 독자의 감정을 이입시키면서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하는 것이 당연한 수순일 게다.

하지만 영리한 작가는 그러한 부분을 적절히 사용하면서도 인간과 현실에 대한 생각과 말들을 주인공과 친구들의 입을 통해 말하면서 영광의 흥분을 죽이지 않으면서도 냉소적인 현실감각을 잃지 않는다.
(카알은 전쟁영으로 남는 것이 싫어 왕궁을 벗어나려 하고, 후치는 백작이 되었으나 영지를 떠나 그냥 고향으로 돌아와 초장이가 된다.)


2. 역할 구성.

여행의 장정은 다양한 인물들을 만나면서 다양한 에피소드들을 만들어낸다.

지적인 리더 “카알”, 머리는 나쁘지만 최고의 전사인 “센슨”, 고등마법을 쓰지만 인간과 거리감이 있는 엘프 “이루릴”, 예쁘고 발랄한 여도둑 “네리아”, 과거를 회개하고 마법에 정진하는 착한 마법사 “아프나이델”, 낙천적이고 대책없는 프리스트인 “제레인트”, 손재주 좋은 300살 먹은 드워프 엑셀핸드”...그리고 여행의 로망과 의미를 부여하는 왕자 “길시언”...

“파티”라는 동료 개념으로 모인 이들은 소설의 목적 흐름에 따라 함께 여행을 해 나아가게 되는데, 이 구성은 전사,도둑,엘프,마법사,프리스트...등 거의 완벽한 구성을 갖춘 Role을 보여주기 때문에 마치 한편의 RPG 게임을 하는 느낌이 들게 한다(실제로 “드래곤 라자”는 만화, 게임화 되었다.)

이런 완전 인물 구성은 각자의 직업(맡은 부분)과 종족 구분에 따라 여행의 의미와 과정에 대해 각각 다른 시각과 의견을 나타내어 단순한 활약을 벗어난 소설의 주제의식을 대변하는 개개인으로서 존재하게 된다.

계속해서 자신이 단순하고 깊은 생각은 못하며, 싸움 보다는 요리를 좋아한다고 주장하는 우리의 주인공의 눈과 입은 매우 중요한 관점이 된다.

일종의 백지 상태와 같은 상태에서 시작한 주인공의 사고와 행동, 언행 등은 이 소설이 “1인칭” 시점 이라는 사실 때문에 소설상의 모든 일들이 비추어지는 그의 눈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렇게 누누이, 친절하게 “주인공의 역할”에 대해 설명한 작가는 그 주변에 배치된 동료들과 적들에게 애국심, 애정, 배신, 야욕...등의 색깔을 부여하는데 그 속에서 주인공에게 세상의 복잡한 일들에 대해 중용의 관점을 유지토록 강요한다.

그리고 그의 친구들은 단순한 역할 role을 뛰어넘어 그들이 대표하는, 그들에게는 일반화 되어있는 “종족 관념”을 기준으로 하여 주인공이 “인간”이기 때문에 아무리 중용을 지키려고 해도 어쩔 수 없이 넘을 수 밖에 없는 이기심이나 무지함을 지적하고 지지해 준다.

예를 들면 오래 살기 때문에 매우 관조적이며 자연 친화적인 시각을 가진 “엘프”라던가...
타 종족에 대한 이해를 원천적으로 거부하며 건설,조각,제작등 단순 소명에만 집착하는 “드워프”...

이런 종족이 다른 역할 이외에도 한 나라에서 한 가지 생각만 가지고 있는 그들을 환기시키는 외국인...(사실은 사로잡힌 간첩)...까지도 주제에 대한 균형감각을 제공한다.

3. 플롯과 서사.

앞서 말했듯이 이 소설은 “판타지”라고 불리우는 다양한 요소들이 거의 모두 등장하는 Standard Fantasy 인데 그것은 정말로 잘 배치하고 이어내지 않으면 지저분하고 복잡해지며 정리가 안되는 상황에 봉착할 수도 있는 무서운 점이다.

대부분의 소설이 중세의 기사물, 악마와의 싸움, 드래곤과 몬스터류, 전설을 쫒는 모험가와 트레져헌터...등의 한가지 소재를 가지고 가는 이유는 작가가 그 이상의 것을 엮어 내지 못하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독자들이 그 이상을 받아들이지 못하기 때문일 수도 있는 것이다.

게다가 이 소설은 구성의 면에서 치명적인 약점을 가지고 있는데, 그것은 “온라인 연재 소설”이라는 점이다.

이 소설은 요즘 같은 인터넷 세상도 아닌 아날로그 세상에서 PC통신 게시판에 연재되던 소설이다.

작가는 몇 일의 간격을 두고 주기적으로 게시판에 일정 분량의 글을 올렸고, 그것을 나중에 책으로 엮은 것이다.

이 경우 매일매일 Update 되어야 하는 연재소설의 특성상 다양한 내용을 담기 힘들고, 짧은 연재분에서 시점 이동이 힘들며, 일을 벌려 놓을 경우 수습이 안 되는 “작가의 약점” 이외에도, 매번 흐름이 끊기기 때문에 독자들이 집중력을 놓치고 앞뒤 사건의 인과관계와 현재 연재되는 부분의 흐름을 따라가기 힘들다는 “독자의 난점”이 공존하는 것이다.

하지만 내 개인적인 판단에 이영도씨는 이 양날의 검을 요리조리 잘 요리하여 짧은 연재분 안에 많은 내용을 넣으면서도 다양한 떡밥(?)들로 독자들을 잘 이끌어서 결과적으로 성공적인 장편소설을 완성한 것 같다.

게다가 이 소설은 철저하게 “1인칭” 시점이라는 부분에서 처음부터 큰 제약을 가지고 있는데도 작가의 무리함을 느낄 수 없다는 것은 그의 글솜씨가 매우 뛰어나다는 반증이 아닐 수 없다.

그렇게 등장하는 것이 드래곤과의 적대관계, 건국 전설, 마법사와의 많은 관계, 출생의 비밀, 배신과 음모, 국가 전복 위기...등 다양한 내용들이다.


글의 서두에서 언급했듯이 나는 판타지 소설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 소설은 큰 거부감이 들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재미도 있었다.

그리고 “이영도”라는 작가에 대한 강한 유대감이 생겨서 이미 그의 다른 소설들을 읽고 있다.

그럼 다음 글에서는 그의 최고의 명작이라고 평가받고 있는 “새” 시리즈 중의 첫편, “눈물을 마시는 새”로 만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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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3월 24일 작성된 글입니다).

나는 20살이 넘어서면서 자취를 시작하고, TV의 필요성을 못 느꼈기 때문에 7년 가까이를 TV 없이 살았고 별로 불편함이 없었다.

이것은 퍼스컴 오타쿠인 나의 특성상 뉴스는 “프레시안”이나 “오마이뉴스”를 이용하고, 문화적 기갈은 2시간 이내로 완전한 기승전결을 보여주는 영화를 선호하는 경향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한적한 섬의 보건소에서 근무하면서 멈춰있는 시계의 시침을 움직이기 위하여 월화, 수목, 주말 드라마를 같이 근무하는 형들과 함께 보게 되었고, 유명하다는 미국 드라마나 일본 드라마도 몇편 보게 되었다.

영화와 달리 드라마는 10~50여 편의 긴 구성을 가지고 있는데다가, 하나를 보기 시작하면 끝까지 보아야 하기 때문에 그간 멀리했던 것이 사실이지만, 따지고 보면 그것에 집중하는 동안 시간은 흘러가기 때문에 좋은 시간 때우기 수단이 될 수 있는데, 특히 일본 드라마는 다양한 소재와 10~11화의 짧은 구성으로 쉽게 접근할 수 있어서 좋았다.

그러던 와중에 일본에서 2007년 4분기에 방영된 드라마인 SP(Security Police)를 알게 되었다.

보통의 일드 팬이라면 주인공인 “오카다 준이치”(인기 그룹인 V6의 멤버) 때문에 급 호감이 갔겠지만, 영화를 볼 때도 감독과 원작,각본을 중요시 하는 습관 덕에 작가를 확인하던 나는 “카네시로 카즈키”라는 이름을 본 순간 얼어붙고 말았다.

“카네시로 카즈키”

내가 “무라카미 류”이후로 한 작가의 모든 소설을 완독하게 만든 훌륭한 소설가!!!
“Revolution NO.3", "연애소설”, "GO", "플라이 대디, 플라이”, “SPEED"까지 그의 모든 소설을 손에 땀을 쥐고 보았던 기억이 난다.

이미 그의 작품중 “GO"”플라이 대디, 플라이“가 영화와 되었고, ”SPEED"는 만화로 만들어 졌지만, 이번 “SP"가 특별한 것은 그가 소설이 아니라 드라마를 위해 쓴 시나리오라는 점이다.
(결국 2008년 3월에 소설로 발간되었지만^^).

어쨌든 그간의 그의 작품들에 비해서 경쾌함과 유머러스함이 많이 줄어들긴 했지만 사회적 갈등을 주인공 개인의 처지를 통해 비틀고 풀어내는 특유의 긴박감 넘치는 구성은 여전하다.

내가 거의 쓰지 않는 드라마에 관한 글이므로 이젠 드라마에 대해 얘기해 보자.


1. 일본 경찰 체계의 이해.

그 유명한 드라마, 영화인 “춤추는 대수사선”에서도 언급되듯이 일본 경찰체계는 “캐리어”라고 부르는 고시를 통한 관리직 경찰과 “현장”이라 불리우는 일반 형사계와 순경계가 있다.

한 집단 내에서 두 계층간의 갈등과 반목이 여러 소설, 영화, 드라마에서 소재로 사용되었는데, 그것은 사실 관료사회에서는 일반적으로 볼 정도로 만연된 문제이다.

어쨌든 이 드라마에서도 경시청 경호4과에 속한 계장 오카다 이하 주인공인 이노우에가 속한 집단 또한 일반 “현장”소속이다.

그들은 요인 경호 임무중에 능동적으로 사리 판단을 하고 상황에 대처하지만, 위에서 관리하는 캐리어들은 그들의 과잉충성(?)이 달갑지 않고, 열심히 하며 일을 키우는 그들을 귀찮아 한다.

특히 뒤로 갈수록 나타나는 정경유착이나 고위 관료, 정치권과의 연관성 때문에 밑에서 일하는 현장 요원들은 영문도 모르고 사건을 종결하기도 하고, 쓸데 없는 일에 동원되기도 한다.

사실 앞서 말했다 시피 이런 소재는 그간 많은 매체에서 소재로 다루어 왔으나 “카네시로 카즈키”가 특별한 점은 그 갈등을 전면에 부각시키지 않았다는 점이다.

진부하게 드러난 소재...특히 현실에서도 어쩔 수 없는 문제에 대해서 너무 질질 끌고 간다면 드라마는 지루해지게 마련이고, 그 심각성이 만성화되어 시청자들도 질리게 된다.

그래서 작가는 동경대 법대 졸업, 캐리어 출신이지만 현장에서 경호4과 계장을 맡고 있는 “오카다”를 등장시켜 이 문제에 대해서만큼은 이 오카다 계장에 대해서만 한정시켜 등장시킨다.

이 드라마의 연출자가 “춤추는 대수사선” “모토히로 카츠유키”여서 이런 문제를 다루는데 익숙할텐데, “춤추는...”의 “무로이”와 “SP"의 ”오카다“가 비슷한 Role을 맡고 있다고 보면 되겠다.


2. SP라는 분야의 이해와 한계.

일본에서는 형사물이 많은 인기를 얻고 있고, 많은 작품들이 만들어 졌다.

한국에서의 형사물은 “형사들이 사랑하는 이야기”지만, 미국,일본등 다른 나라에서는 훨씬 전문적으로 그 직업에 접근하기 때문에 흥미도가 급상승하게 된다.

그런 형사물 중에서도 이 작품이 특별한 것은 Security Police(SP) 라는 “경호과”의 일들을 다루고 있다는 점이다.

일반 사설 경호회사도 있지만, 국가의 녹을 먹는 경찰 공무원으로서의 SP는 국정에 관련된 요인의 경호, 중요 사건의 참고인 보호 등 주로 나라에 관련된 일을 하고 있다.

그들은 다른 경찰들과 마찬가지로 “경시청” 소속이지만 수사권과 구속권이 없다.
다만 “움직이는 벽”으로서 보호해야할 대상을 지키는 것만이 허락될 뿐이다.

이 답답한 점 때문에 SP 요원들은 임무 수행중에 많은 위험을 만나고, 권한 확대에 대해 상부에 진언하지만 묵살될 뿐이다.

이런 현실에서 눈길을 끄는 것이 바로 주인공인 신참 SP 요원, “이노우에”의 존재이다.
(아래 3번에 연결)


3. 특별한 SP, 주인공 “이노우에”

뻔한 형사물 드라마라 하더라도 뭔가 시청률을 집중시킬만한 주인공이 필요한 법이다.

“춤추는 대수사선”의 유머러스한 형사, “죠시데카 여형사”의 철두철미한 강철같은 여형사, “시효경찰”의 끈질긴 성격...

이 드라마에서는 그런 성격적인 면을 벗어나서 아예 주인공에게 “특수능력”을 부여한다.

어릴 적 끔찍한 경험을 겪은 주인공은 뇌 내의 특성물질이 과잉분비되어 일반인보다 감각이 예민해져서 시각, 청각, 후각이 무지하게 예민하고, 특히 “殺氣”에 대해 엄청난 민감도를 가지기 때문에 “SP"라는 직업을 소재로 하는 드라마에서 주인공이 굉장히 돋보일 수 있는 능력을 부여한다.

이것은 단순하게 생각해 보면 기존의 “카네시로 카즈키”의 명랑 소설에서 보여지는 소영웅적 Title Role로 여길 수도 있지만, 나는 사실 그것보다는 좀더 깊은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특수 능력 때문에 주인공 “이노우에”는 암살자, 테러리스트가 요인에게 공격을 가하기 전에 발견할 수 있다.

앞서 말했듯이 SP는 수사권, 구속권이 없기 때문에 범죄자가 요인에게 피해를 입히는 행위를 할 때 막을 수는 있지만, 미리 수사하여 범죄가 일어나기 전에 범죄자를 찾거나 잡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이노우에”는 본인의 능력을 이용해 사건이 일어나기 전에 범죄자들을 잡고, 구속시킨다.

경호과 계장인 “오카다”가 말하듯이 SP가 범죄자를 잡는 것은 “전대미문”이기 때문에 경호과에서도 당황해 하고, “오카다”는 이런 능력을 발휘하면 경호의 효율이 높아지기 때문에 “이노우에”를 방임하는 편이고, 상부에서는 이런 행동들이 SP 본연의 임무에서 벗어나는 것이기 때문에 억압하려고 하게 된다.

“오카다” 계장은 캐리어 출신이면서도 현장에서 일하면서 경호과의 발전을 위해 노력하는 인물이기 때문에 주인공이 특출난 능력으로 혼자 튀는 것을 옆에서 견제하면서 키워주는 훌륭한 상사의 역할을 한다.

결론 짓자면 “이노우에”의 특별한 능력은 일종의 초능력으로 진지한 드라마 흐름에서 벗어나 괴질감을 일으킬 수도 있으나, 이것이 이 드라마의 현실문제와 주제의식을 부각하는데 중요하게 작용하면서도 여러 장치들로 인하여 Over하지 않게 해주는 중요 소재 로 자리잡았다고 생각한다.


4. 관통하는 스토리.

1화에는 SP에 대한 간접 설명과 주인공에 대한 묘사가 필요하기 때문에 넘어가지만, 이후 드라마는 총 4개의 굵직한 Episode를 가지고 가게 된다.

이런 옴니버스 구성에 있어서는 드라마가 통일성과 구심점을 잃어버려서 시청자들이 집중력을 잃는 부작용이 나타나기도 한다.

그러나 이 드라마는 여타의 일본 드라마와 같이 11화 완결을 결정해 놓았고, 그 사이에 4개의 에피소드가 있지만 그것이 커다란 起承轉結의 흐름에 맞추어 완결되도록 짜여있다.

그리고 그 이음새는 드라마 중간 중간에 간혹 주인공인 “이노우에”와 경호4과 계장인 “오카다”의 회상 장면에서 등장하는 “아사다 암살 사건”에 대한 기억이 맡고 있다.

“이노우에”가 어릴 때 그의 부모는 정치인 “아사다”의 회견장에서 “아사다”를 노린 괴한의 칼에 찔려 죽게 되고, “이노우에”는 그때의 충격으로 초능력을 얻고 SP가 되며, "오카다“는 다 암살 현장에 있다가 사건을 목격하게 된다.

그리고 이것은 본 드라마의 Episode 4가 “총리 아사다 경호”사건을 향해 달려가서 대망의 끝맺음을 짖게 된다.

자신의 국회의원 당선을 위해 이슈가 필요해서 자신을 노린 암살기도를 스스로 주문한 “아사다”.
그것을 지켜보고 있다가 훗날 SP의 계장이 된 정의감 투철한 “오카다”계장.
그 사건에서 양친을 잃고 이런 피해자가 더 생기지 않게 하기 위해 SP가 된 “이노우에”

이 3명과 그에 관련된 많은 사람들이 맞부딪히는 것이 결말인 Episode4-3화(11화)이다.


5.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바...

이 작품은 아마 “카네시로 카즈키”가 쓴 작품중에 가장 우울한 작품이 아닐까 싶다.

물론, 결말은 해피엔딩이다(오해하지 말기를...).

하지만 현실의 찜찜함을 남기는 불편한 결말이다.


5-1. “이노우에”의 결말.
“아사다 총리 암살사건”의 범죄자는 끝까지 총리를 보호하는 “이노우에”를 보고 말한다.

“그놈이 무슨 짓을 했는지 알고 있어? 나에게 살인을 시켰고, 너희 부모를 죽였어. 그런데 그놈을 보호하고 싶어?”

여기서 “이노우에”는 복수의 대상인 “오사다”와 SP인 자신이 지켜야 하는 대상인 “오사다”사이에서 갈등하는 모습도 보이지만 결국 SP로서의 임무를 택한다.

이것이 시청자 입장에서는 안타깝고 싱거운 것이 사실이지만, 작가로서는 당연한 결말이다.

“세상은 더럽지만 나까지 더러울 수는 없다, 나는 내가 맡은 바를 다할 뿐이다.”

이것이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것이고, 경찰,범죄물에서 벗어날 수 없는 주제의식일 것이다.

5-2. 거대 권력의 손바닥.
내 생각에 “아사다”는 마지막까지도 테러를 이용한 지지율 상승을 노린 비열한 놈이다.

Episode4에서 “아사다”를 노린 테러는 3가지 방향에서 몰려오는데 곰곰이 생각해 보면 그 3가지 중에서 2가지는 “아사다”가 스스로 사주한 것임을 아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다만 3가지중 나머지 1가지가 그가 예측하지 못한 곳에서 돌출되어서 문제였지...

어쨌든 이 사건도 경시청 내에서 암살자와 연계되던 이사관이 자살하면서 억지로 마무리된다.
하지만 너무도 친절하게도 이사관이 자살한 건물에서 암살자집단의 차가 떠나는 모습이 보이므로 결국 이것도 권력의 상층부에서 이사관 한명의 사망(자살로 위장된)으로 사건을 종결지으려는 움직임의 표현일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수사하던 공안요원들도 “귀찮다”라는 표현으로 더 이상의 수사를 하지 않고 수사를 마무리 한다.

그래...조낸 씁쓸하지만 이것이 세상이고, 이것이 정말 현실적인 결말이지...

5-3. “오카다”의 결말.
경호4과 계장인 “오카다”는 캐리어이지만 현장에서 일하며 언제나 경호과의 발전과 위상 확립, 권한 확대...등을 위해 일하는 정의로운 경찰로 그려진다.

그리고 언제나 상부에게 찍히고 거부당하고 이용당하고...그런 안쓰러운 역할로 나온다.

하지만 최종화인 11화 마지막 3분...

그곳에서 또다른 음모의 꼬리가 살며시 나온다.
아무도 몰랐어야 할 움직임들이지만 주인공인 “이노우에”의 특수능력 때문에 살며시 언급되는 경찰청의 움직임...

그래, “오카다”는 바보가 아니었던 것이다.
윗선인 권력자들도 바보는 아니고...

젠장...

세상에 정의가 어디있나?
결국 다 힘있고 돈있는 놈들 손에서 놀아나는 거지, 뭐...


어쨌든 간만에 굉장한 몰입도로 주말을 투자해서 완결까지 본 드라마였다.

무척 재미있지만 우울한...
마치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 같은 느낌이랄까?

드라마이지만 작가인 “카네시로 카즈키” 때문에 쓴 글이라 연출이나 연기에 대한 내용은 생략하겠다.

추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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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3월 12일 작성된 글입니다).

나름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팬이다.

처음으로 그를 접하게 된 “타나토노트”부터 시작해서 나의 10~20대에 접한 그의 작품들은 모두 기대감을 충족시켜 만족감을 안겨 주었다.

사실 따지고 보면 그는 훌륭한 작가는 아니다.
딱히 문학적 가치가 높은 작품을 쓰는 사람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는 일정한 장르 안에서 자유롭게 망상을 펼쳐내는 재주를 가진 몽상가일 뿐이다.

그러나 약간의 과학적 바탕과 심각한 주관적 비약을 거친 그의 망상은 그만의 독특한 개성으로 뭉쳐져서 많은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마술을 발휘한다.

이런 그의 행보는 팬으로서 조금 불안하기도 하다.
말했다시피 그는 “독특한 소재”를 가지고 흥미를 유발하는 작가이기 때문에, 작품수가 늘어나고 상상력이 바닥이 날수록 독자와 평단들은 “예전만 못하다”라는 실망을 반복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3년전에 “나무”가 출간되었을 때는 기뻤고, “우리친구 지구인”이라는 영화를 만들었을 때 놀랐다.

가장 많이 지적되는 단점인 “기발한 상상력으로 일을 벌여놓고 수습을 못해서 결말이 흐지부지 되어버리는” 점을 장편소설이 아닌 단편을 씀으로써 커버할 수 있게 되어 “나무”는 베르베르의 장편소설 전질을 읽는 것 보다 훨씬 적은 시간으로 큰 재미를 얻을 수 있는 명작이 되었다.

그리고 그의 소설은 상상력에 바탕을 두기 때문에 독자가 머릿속에 소설속의 묘사와 전개를 그리는 것이 매우 큰 재미인 것이 사실이다.
그런 면에서 그의 작품들은 좋은 영화 시나리오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 왔는데, 그가 직접 영화를 만든다고 했을 때, 많이 놀라면서 박수를 보냈었다.
언젠가 그의 다른 작품들이 그가 아닌 다른 감독의 손으로 만들어 진다면, 그것 또한 매우 재미있는 결과가 나올 것 같아 기대된다.

어쨌든 “파피용” 얘기를 하려다가 베르베르에 대한 얘기만 잔뜩 하게 되었는데, 다시 본론으로 돌아오겠다.

“파피용”에 내 개인적인 평점을 주라면 ★★☆(5개 만점)이다.
이유는 앞의 다른 소설처럼 번호 라벨링으로 써 보겠다.

1. 새롭지 않은 소재.

앞서 얘기한 것처럼 그의 가장 큰 무기는 “기발한 상상력을 바탕으로 한 흥미로운 소재”이다.

그러나 이 작품에서 “파피용”이라는 거대 우주선으로 지구를 탈출하여 새로운 행성을 찾아가는 것은 너무 진부한 소재이다.

“마지막 희망은 탈출”...

전쟁, 범죄, 종교, 정치, 질병으로 황폐화 되어가는 디스토피아의 현실에서 도피하여 유토피아를 찾아가는 이야기는 많은 곳에서 존재해 왔다.

특히 “노아의 방주”같은 장치는 지구탈출류 소설에 있어서 꼭 필요한 부분이기 때문에 굳이 잘했다 못했다를 거론하긴 힘들지만 역시 식상한 존재인 것은 부인할 수 없으며, 1000년의 시간 전에 목적지로 정해놓은 행성이 공룡이 뛰노는 원시림 상태의 중생대 즈음의 지구 모습을 똑같이 닮아 있을 필요는 없었는데...라는 아쉬움이 자꾸 남는다.

“혹성탈출”이나 “the Contact"같은 놀라운 결말을 기대한 것은 아니지만, ”역시 베르베르는 끝맺음이 약하다“라는 통설을 입증하기라도 하는 듯 하여 팬의 한사람으로서 씁쓸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2. 기독교적 세계관.

특히 지나치게 의도적으로 느껴져 거부감을 유발하는 기독교적 세계관은 살짝 유치함을 넘어서서 민망하기까지 하다.

앞서 언급한 “노아의 방주” 시스템도 그렇고...

마지막 생존자인 “아드리앵(아담)”이 자신의 갈비뼈를 꺼내 신인류인 “에야(이브)”를태어나게 하는 부분...

“이브, 사탄, 천국, 지옥”등의 명명도 그렇지만 마지막에 “에야”가 계속해서 이름을 틀리게 부르면 “야훼, 아담, 이브”등의 이름을 직접 언급하는 장면에선 지나친 작가의 친절이 낯뜨겁기까지 한 것이다.
(덩달아 독자가 못 알아먹을까봐 친절히 각주까지 달아주는 멍청한 번역자의 작태는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어 주었다).

파멸해 가는 지구와 우주선내의 모습을 소돔이나 폼페이의 양상으로 그리지는 않았지만, 새로운 행성에서의 첫발을 굳이 창세기를 가져다 쓴 진부함은 도대체 어쩔 것이냔 말이다!!!

3. 삽화 삽입.

베르베르의 장점인 “상상력”의 구체화라는 점에 있어서 뫼비우스의 그림은 어느 정도 도움을 줄 수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독자로서 베르베르의 책을 읽으면서 가질 수 있는 가장 큰 재미가 바로 그의 묘사와 설명을 보고 나의 머릿속에 상상하고 그려보면서 베르베르와 교감하고 있다는 느낌을 갖는 것이었는데...

삽화는 베르베르의 감수를 받아 일종의 “고정관념”을 독자들에게 심어주어 한편의 명작소설을 애들이 보는 “공상과학 만화”또는 “동화책” 수준으로 떨어뜨려 놓은 것 같아 아쉬웠다.



뭐, 위와 같은 단점들이 내 눈에 띠어서 좋은 점수를 주진 못했지만, 역시 베르베르는 뛰어난 이야기꾼이다.

결코 짧지 않은 390페이지의 책을 손에서 놓지 못하고 하루 만에 읽게 만드는 재주는 아무나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어쨌든 오랜만에 출간된 그의 신작과 함께 한 시간은 행복했으니, 그의 팬으로서 기쁨을 느끼는 시간이 다시 올 수 있기를 기대한다.
Posted by DreamS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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