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2. 10. 1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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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2월 15일 작성된 글입니다).
한참 무협지에 빠져있던 중,고교 시절에 김룡 소설 몇 개 읽어보지 않은 사람과는 대화를 하지 않겠노라...라는 광오한 생각을 가지던 때가 있었다.
많은 사람들인 김룡의 소설을 무협지 입문용으로 권하고 있지만, 사실 그의 소설은 초기 무협소설의 원형을 완성한 문학적 의미 이외에도 너무나 훌륭점이 많은 작품들이기 때문에 첫 무협지를 읽는 사람은 2가지 난관에 봉착하게 된다.
첫째는 무척 긴 내용과 기구하게 꼬여있는 스토리로 인해 그의 소설의 훌륭한 점을 알아채지 못하고 단순히 답답하고 지루하다는 생각만 가질 수 있다.
둘째는 처음 접한 무협지가 완전한 플롯과 서사를 완비한 하나의 문학작품으로서 머리 속에 자리잡았기 때문에 이후 만나는 대만 및 한국의 단순한 영웅주의 무협지가 눈에 차지 않게 되는 것이다.
본인 또한 어릴 적에 아버지께서 사 놓으신 영웅문 3부작으로 무협지를 시작했다.
“사조영웅문, 신조협려, 의천도룡기”를 거쳐 “소오강호, 녹정기”등의 작품을 섭렵하였는데, 차후 접하게 되는 한국형 초기 무협지들의 단순하고 평면적인 인물구도와 奇緣, 奇寶가 난무하는 천편일률적인 내용에 많이 실망하고 쉽게 질리게 되었다.
하지만 또 오랜만에 한번 잡으면 그런 단순한 영웅주의 한국 무협지가 재밌는 것도 사실이다.
무협지 속의 협객에게 감정이입을 시켜 미녀들에 둘러싸여 세상의 오의하고 단기필마로 강호를 평정하는 모습을 상상하며 일상의 피곤함과 지루함을 날려버리는 것이다.
어쨌든 요즘 또 한국 무협지들을 몇질 보다가 쉬이 질려버린 와중에 예전 김룡의 소설 중에서 내가 보지 않은 “천룡팔부”를 발견하고 오랜만에 10권짜리, 4000페이지가 넘는 대작을 손에 잡았다.
이 소설의 대략은 2가지의 큰 의미로 나뉘어져서 10권의 방대한 분량을 복잡다난하게 엮어가게 되는데, 그것은 바로 “地緣”과 “血緣”이다.
1. 地緣- 국가를 위한 목숨.
김룡 소설의 특징 중의 하나는 다른 일반 무협지들의 배경이 단순히 중국 당송명청의 어느 시점 정도로만 간접 묘사되는 것에 반하여 시대적 상황을 밀접하게 소설의 내용에 적극 반영한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이번 천룡팔부의 시대적 배경은 송나라를 보여주는데, 그 공간적 배경은 거란, 여진, 서하, 대리국 등 여러 나라를 나타내어 그 시대의 역사와 이해관계를 스토리의 중요한 축으로 사용하고 있고, 이것은 이전의 작품들에서도 보여지듯이 "강호상의 일개 필부라 할지라도 나라의 국민으로서 大義라고 할 수 있는 愛國, 救國을 최우선으로 해야 한다"는 정신을 주지시킨다.
이 소설에서 주인공이라고 할만한 사람은 4명 정도가 등장하는데 그중에 대부분의 사람이 여러 나라의 황손이라던가 직접적인 연관을 맺고서 나라의 역사와 입장을 대변하고 있다.
대리국의 단예, 거란의 교봉, 연나라의 모용복, 서하국의 부마인 허죽 4명이 그 주인공들이다.
특히 단예와 모용복은 황세손과 황손으로서 중임을 맞고 있고, 교봉은 개방의 방주였지만 거란의 후예로 남원대장군에 봉책되며, 모용복은 과거에 사라진 연나라의 황족후예이고, 허죽은 우연찮게 서하국의 공주와 결혼하게 되어 부마가 된다.
이들은 각각 개인적으로 의형제와 원한등 각각의 이해관계를 가지고 부딪히게 되는데, 그 중요 원인이 “국가”를 위한 충성이다.
이것은 아무리 훌륭한 대영웅이라 하더라도 자기 나라 출신이 아니면 “오랑캐, 도적놈, 살인마, 대역죄인”으로 몰아세우는 풍토에서 매우 씁쓸하게 나타난다.
그 중심에서 작가의 생각을 가장 잘 나타내고 있는 개방방주 교봉은 원래 송나라 한족으로 알고 살았는데, 어느날 갑자기 거란족 출신임이 드러나게 되어 그동안의 광명정대하던 인품은 가려지고 거란족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무림의 공적이 되어 쫒기게 된다.
그래서 찾아간 거란족에서 남원대장군에 오를 정도로 성공하고 거란 황제와 의형제도 맺지만, 결국 거란 황제도 교봉이 송나라에서 컸기 때문에 언제 반란을 일으킨지 모른다고 우려하여 교봉을 감금하고 죽이려 한다.
참...개인의 인품보다 출신 나라 때문에 원수가 되고, 자신의 인생보다는 국가의 운명 때문에 배신,살인을 태연하게 저지르고 정당화하는 인물 군상들이 슬프게 다가온다.
2. 血緣- 뿌린 씨앗 때문에 벌어지는 애증의 피보라.
이 소설의 또 하나의 키워드는 “혈연”이다.
특히 주요 등장인물이라고 할 수 있는 3명의 의형제인 “교봉, 허죽, 단예”는 모두 출생의 비밀을 간직하고 있기 때문에 주의 깊게 살펴 보아야 한다.
당시 중국 송나라에서는 一夫多妻가 흔했었고, “英雄好色”이라는 말도 있었기 때문에 소설 속의 등장인물과 많은 미녀들 사이에 雲雨之情이 난무하고, 그것에 의해 뿌려진 씨앗들이 자손의 대에서 등장하여 또 愛憎으로 얽히게 되는 과정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아버지가 강호 곳곳의 미녀들과 저지른 애정 행각 때문에 두고두고 고생을 하는데, 자식이 강호 출두하여 만나는 미녀들마다 주인공과 사랑에 빠지는데 알고 보니 모두 아버지가 같고 어머니만 다른 남매관계이고...
절정고수이지만 어리버리해서 답답함을 불러일으키던 바보는 무림의 천하제일, 태산북두 문파의 장문인의 사생아라니...
이런 일을 벌이고 뒷수습도 못하는 남자를 두고 “풍류적으로 산다”라는 한마디로 강호 중원의 영웅들은 용서하고 마는 어이없는 반응을 보인다.
그러나 단순한 치정에 얽매인 문제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이 소설은 종국에 전형적인 비극의 형식을 따르게 되는데, 극적 긴장도가 최고조에 이르게 되는 후반부 소림사에서의 영웅대전에서는 등장인물의 갖가지 얽히고설킨 혈연관계가 드러나면서 경악에 경악을 금치 못하게 하고, 그간 10권의 기나긴 내용 속에서 지나갔던 문제들이 한큐에 해결되기에 이른다.
물론 요즘 한국의 아줌마들이 보는 아침 드라마에서 “출생의 비밀”은 사골곰탕처럼 우려먹는 단골 소스지만, 옛날 햄릿이나 고전소설에서 이어져 내려오는 비극의 전형성은 잘 살리기만 한다면 그리 유치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점을 배울 수 있다.
어쨌든 오랜만에 쉬지 않고 몇일만에 10권, 4000페이지가 넘는 대작을 독파했더니 눈과 머리의 피로도가 심하다.
하지만 그만큼 재미있었기 때문에 복잡하고 머리 아픈 내용의 소설의 책장을 넘길 수 있었던 것 같다.
이제 또 절세미남인 청년고수가 수십 명의 미녀를 옆에 끼고 전설의 마교, 마왕 따위와 싸우는 한국 무협지를 보다가 지겨워지면 다시 무협의 고전, 김용을 찾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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